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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반도 브리핑]<112> 미국인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은 까닭

필자는 지금 미국에 와 있다. 미국에서 약 20년간 생활했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매년 방문하니 미국은 결코 필자에게 낯선 곳이 아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조금은 달라 보인다.

미국에서 1년 중 가장 큰 대목은 크리스마스다. 모든 쇼핑몰과 대형 할인마켓에서는 성탄절 50~70% 폭탄세일을 하고 있지만 크게 붐비지 않는다. TV에서도 이때쯤이면 매일 성탄절 세일 광고를 귀가 따갑게 내보내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마저도 한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여느 때와 같지 않다. 금융위기의 한파를 맞고 있는 모습이 뚜렷한 것이다.

▲ 오바마 당선인과 교육장관으로 내정된 아니 던컨 시카고 교육감. 고교시절 방황했던 흑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프로농구 선수였던 인물이 교육장관이 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로이터=뉴시스
하지만 경제는 침체되어 있어도 미국 사람들의 사기는 그 만큼 저하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새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권자들이 가졌던 기대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에게 대한 기대가 유권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새로운 대통령이 무언가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한국과 미국 모두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수행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출범 전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신 행정부에 대한 예상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뚜렷하고 분명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온갖 문제점에 봉착해 있는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오바마 행정부는 다를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실용주의' 보여준 힐러리 기용

우선 오바마 신 행정부의 인사에 잘 드러나 있다. 오바마는 행정부의 수장이자 외교의 책임자로 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임명했다. 외교는 부시 행정부와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 주고 진정한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바마 당선자의 조각(組閣)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힐러리는 자신의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기 그를 도와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을 만드는데 관여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오바마 측근에는 '클린턴 3기'라고 할 만큼 다수의 클린턴 시절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어 힐러리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정황 속에서도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오바마의 포용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우 실용적인 결정이라는 게 더 중요하다.

힐러리는 개인적으로 매우 능력이 있는 인물이고, 과거 8년 동안 영부인으로 외교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남편을 따라 각국을 방문하는 등 외교 현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무장관으로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정적이지만 이러한 사람을 주저 없이 국무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포용력을 떠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적인 인사다.

선거운동에서 오바마의 구호는 변화였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나 부시 행정부 정책으로부터의 변화가 주된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의 언행과 행보는 매우 다르다. 오바마는 더 이상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을 비난하고 모든 문제를 부시에게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시 대통령과 협력해 지속성이 필요한 정책을 이어가고 현재 닥친 문제,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문제를 풀기 위해 초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같은 성향과 코드를 가진 인물들 일색으로만 인사를 한 이명박 정부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는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유색인종이건 백인종이건 모두가 직면한 문제이며 모든 미국인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오바마의 초당적인 행보는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고 통합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국가적 위기를 국민의 통합 없이 해결하기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자의 초당적인 조각은 정치통합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는 도한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 경제위기를 풀어 갈 수 있다는 수 있다는 기대 심리를 갖게 해 주어 위기를 돌파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배경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며칠 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1면에는 잠긴 의회의 문을 망치로 부수는 한국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실렸다. 국회는 국민의 뜻을 통합하는 화합의 공간이 아니라 당리당략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정배들의 욕설과 고성, 그리고 날치기가 만연하는 시장의 둿골목과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격변 예고하는 동북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나?

이제 2008년도 1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가 깨어졌으며, 경제학에서 주류(mainstream)라고 일컫던 신자유주의(neo-Classicalism/Liberalism) 역시 미국 경제 헤게모니와 함께 몰락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무대를 옮기고 있으며 동북아시아는 그 중심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세기 넘게 변화가 없었던 북미관계도 2008년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2009년에는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또한 동북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구도가 불가피해 보인다.

어떤 학자는 2008년이 근대화의 끝이고 2009년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는데,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인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2009년에 더욱 급변할 것이며 복잡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고 더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 정치적 화합과 통합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 신문에 실린 국회의 사진은 이런 모든 것이 요원하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말해 준다. 동북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고, 한국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망치 세례와 소화기 난사로 대변되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기회는 위기가 될 것이며 한국은 동북아의 모델이 아니라 낙오자가 될 수 있다.

▲ 미국 서부 지역의 유력지 <로스앤젤러스 타임스>에 실린 한국 국회의 모습 ⓒ연합뉴스
오바마는 발굴되고 양성된 인물

오바마 같은 인물이 한국에 있다면 통합적인 정치가 가능할까? 문제는 오바마와 같은 인물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만약 오바마 같은 인물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바마는 정적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할 만큼 포용력이 크고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능력은 발굴되고 양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바마는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소년기를 보냈고,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해 자카르타로 따라 갔으나 잘 적응하지 못해 다시 하와이 외할머니에게 보내져 고등학교까지 하와이에서 생활했다. 오바마는 이때 술, 담배, 그리고 마약까지 하는 일종의 문제아였다.

그러던 그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고 고등학교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었다. 방황 때문에 고교 성적이 안 좋았다면 아마 대학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의해 캘리포니아 소재 명문 옥시덴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이어 아이비리그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으로 전학갈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최고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 로스쿨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실력도 없이 어부지리(漁父之利)로 하버드에까지 갔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하버드에 가서 실력을 인정받아 <하버드 로 리뷰>라는 법률 저널 중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의 편집장이 되었으며, 결국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한때 방황했던 오바마가 자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을 가능하게 한 환경과 제도가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와 같은 배경을 가진 인물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야말로 아무런 기회를 가지니 못하였을 것이며 그저 사회 저변에서 맴도는 부랑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 그리고 정치의 변화가 없다면 국회에서 벌어진 소동은 미래에도 재현될 것이며 한국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모두의 지혜를 모우고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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