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진보세력은 맥이 빠졌다는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진보세력은 맥이 빠졌다는데…

[남재희 칼럼]<16> <水滸誌>的에서 <三國志>的까지는 돼야

이른바 진보 세력이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이, MB가 압승하여 집권하고 각 분야에서 보수 세력의 판쓸이가 서서히 그러나 철저히 진행되고 있어서, 한국에서만 그러리라 하였다. 그런데 외신을 보니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한국일보>의 '뭉치는 보수·무기력 진보'(12.18)라는 제목의 양면에 걸친 특집이 눈을 끈다.

"낡은 아젠다, 도덕성 추락, 정책적 대안 부재 등의 자성과 함께 진보 진영을 재편·재정립해야 한다는 쇄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수적 인사가 뒤섞인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지역적 기반만 다를 뿐인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인상을 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자신들의 이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다 보니 정책적 대안도 불투명하다."

"진보 진영이 대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경제적 불만이 폭동화하거나 파시스트적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 걱정이다(한 교수의 말)." 등등의 구절들이 있다.

<조선일보>는 김창균 차장의 '약체 정권이 최약체 야당을 만났을 때'(12.17), 김민철 차장대우의 '자체 상품 없는 민주당'(12.18)이란 칼럼을 잇달아 실었다.

<한겨레>의 '앞으로 4년 무엇을 할 것인가'(12.17)라는 성한용 선임기자 칼럼은 "물신주의가 판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최근의 경제 위기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공동체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걱정하였다.

다시 <한국일보>의 장명수 칼럼 '보수도 진보도 싫다'(12.19)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아무리 내려가도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에 대한 인기는 바닥에 머물러 있다. 대다수 국민은 진보 세력을 아예 대안으로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 지난 여름 촛불집회에 나란히 참석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 ⓒ뉴시스

진보 세력에게는 혹독하게 들릴 말이다.

한 가지 더 인용해보자. 박원순 변호사는 지난 17일 한 포럼에서 시민운동을 돌아보며 "내년까지 이어질 위기의 계절이 왔다"면서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여러 화두들을 시민 사회가 통찰력 있는 눈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점"을 들었다고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합리적 온건 보수파를 대변하는 세계 정상급 언론이라 하겠는데, 거기에 '좌파의 단념 노트-왜 유럽의 좌파는 경제 위기를 활용, 득을 보지 못 하는가'(12.13)란 칼럼이 실렸다.

"유럽의 중도·좌파는 그들의 20세기에 있어서의 존재 이유가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발버둥치고 있다. 만약에 그들이 세계화의 과제를 분명히 포용하는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번의 경제 위기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구절이 그 칼럼의 끝 결론 문장이다. '유럽 사회 모델'이라고 우리가 부럽게 이야기하는 그 모델이 흔들리는데, 유럽의 통합에 따른 후진 지역에서 선진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노동자 문제가 당면한가장 큰 난제인 것 같다.

보수파인 부시에 이어 진보파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의 경우는 이야기가 약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부시 8년이 지난 다음의 시계추의 원리, 이라크에 대한 막무가내 침략, 금융위기 등이 작용한 것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나왔었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승리하였을 것이란 판단이다. 물론 오바마의 특출한 능력과 그 진보성이 낙승을 가져왔지만 말이다.

위에서 인용하여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진보세력(개혁세력·좌파 등 여러 용어가 있고 친북좌파라는 악담도 있다)은 금융·경제 위기에 얼떨떨한 상태인 것 같다.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밑으로부터 힘을 받아 생겨나는 반격에는 1, 2년의 시차가 있기는 하다.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DJ·MH(노무현 시대는 약칭이 없었는데 요즘 MH란 영어 약칭이 등장하였다) 10년의 감점 요인들이 진보파 쇠락의 배경이다. 또한 역사의 시계추 현상 원리의 설명도 덧붙여야겠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한 것이 햇볕정책을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운 진보 정권에 일대 타격이었으며, 그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서 햇볕정책의 '실패'라고 하느냐 '차질'이라고 하느냐는 언어유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매우 중요하다. 심각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을 포용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큰 집인 우리의 위치이기에 '실패' 대신 '차질'이라고 하겠다.

DJ·MH 시대의 진보는 준비가 아주 덜 된 진보였고 집권이었다. 정책에 있어서도 두터운 축적이 없었다. 인적 구성에 있어서도 우리가 <수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은 호협들의 집합은 있었으나 정권을 담당할 짜임새 있는 인재 풀은 없었다. 더구나 정책과 인물이 상호침투·융합하는 정당의 정체성 같은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본래 보수란 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주류이다. 거기에 대안을 갖고 도전하는 것이 진보로, 처음에는 소수파로 출발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때로는 주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래 인간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시장원리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벌거벗은 자본주의가 생래의 것이다. 거기에 말하자면 이타적 유전자(?)에 따라 공공적 제어를 하고 '유럽 사회 모델'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류의 체제를 이룩하는 일이란 엄청나게 힘든 일이고 후진적 상황에서는 '시지프스의 신화' 같다고 해야 할 일이다.

하기는 아주 높은 차원에서 보면 정책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보수당 노동당 간에, 또는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간에 이상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얼마간의 차이도 직접 통치를 당하는 서민들의 형편에서 볼 때는 엄청난 차이로 느껴질 것이지만 말이다.

한편 제대로 된 보수는 보수 나름대로의 진보성을 갖기도 한다. 보수 자신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도 그런 자기 유지의 지혜를 발휘한다. 흔히 인용하여 말하는 대로 독일 제국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오히려 개혁적인 사회정책을 실시한 게 아닌가. 성장이나 경력에서 굳이 완미한 보수파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MB가 놀랍게도 비스마르크와 같은 지혜를 발휘 못할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희망적 관측의 버릇인가.

그밖에 진보의 쇠퇴에는 노동조합세력의 약화를 말해야겠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특수 사정으로 지역적 분열이 진보의 마지막이라 할 발판이 된다는 그런 실상도 무시하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정치를 <수호지>와 <삼국지>의 세계에 빗대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써 보기도 한 적이 있다. 쿠데타 후의 정치 상황은 정말 <수호지>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얼마간 세월이 지나면 점차 <삼국지>적으로 진전한다.

유방이 한나라의 황제가 되고, 주원장이 명나라의 황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본래 건달패에 분류될 인물이었다. 그런 건달 또는 호협의 긍정적 측면을, 정치를 말함에 있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 날의 야당 가운데 다수는 <수호지>적이었다.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수호지>의 호협에 비유하여 글을 쓴 일이 있다(그때 <삼국지>적인 예로는 정래혁 전 국회의장을 대비시켰었다). 근래의 진보세력도 <수호지>적인 면이 강하다. 거듭 말하지만 나쁘다는 이야기만은 아니고 그 긍정적 측면도 인정하면서의 관찰이다.

다만 이제 <수호지>에서 <삼국지> 단계쯤으로는 최소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더 발전하여 훌륭한 현대 정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위에 말한 표현을 되풀이해보면 정책과 인물이 상호 침투·융합하는 정당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보 세력에 관해 의견을 이야기하다 보면 두렵게 기억되는 비판이 있다. 진보이론가인 오건호 씨가 <창작과 비평> 2008년 여름호에서 노동 문제로 좌담한 것을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보 진영도 이제 평론가나 계몽가의 자리에서 대중의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 '하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찰이 방관자의 절박성 없는, 헛도는 말이 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