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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도덕을 무력화시킨 기술 탓 "

[해외시각] "스페인의 금융위기 해법 따라야"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지난 1930년 발표한 <우리 후손들을 위해 가능한 경제>라는 에세이에서 "화폐를 소유의 대상으로 사랑하는 행위는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정신질환이나 범죄의 일종으로 간주될 것"이라며 당시의 배금주의를 극도로 경멸했다.

하지만 케인즈의 후손들은 오히려 배금주의에 더 경도됐다. 국제경제학자이자 경제사학자로서 케인즈의 전기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익대 명예교수는 22일 케인즈의 도덕적 경고가 무시된 현실을 개탄하며 진보성향의 일간지 <가디언>에 '도덕적 차원에서 본 호황과 거품(The moral dimension of boom and bust)'라는 기고문(원문보기)을 썼다.
▲ 세계 최대 금융기업 씨티그룹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는 이 글에서 "우리를 글로벌 금융위기에 빠뜨린 것은 시장경제학이 순전히 기술적 문제라는 그릇된 신념"이라고 갈파했다. 나아가 그는 경제 생활에 대한 도덕적 측면을 외면한 채 현재의 금융체제를 유지하는 한, 광기와 거품 붕괴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세계 최대 금융기업인 씨티그룹마저 파산 위기로 몰고간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게 한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진보의 장애물'로 전락한 도덕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허버트 조지 웰즈는 도덕과 파괴 본능의 각축전에 대해 글을 썼다. 인류가 전쟁같은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리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경제학 분야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기술이 왕이었다. 도덕은 기술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기술의 요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경제성장이 보장되고 빈곤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 발명의 산파로서 시장에 대한 믿음은 그 산물이다. 나아가 우리는 시장경제의 최대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로 나아갔다. 세계화를 위해서 지역공동체는 변질되고,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술은 끊임없이 변형됐다.

시장주의자들은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과 거래비용 축소를 위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희생되어야 한다며 다그쳤다. 이런 논리에 저항하는 도덕은 '진보의 장애물'로 낙인찍혔다.

레버리지가 제공하는 '이중의 유혹'

부채는 '레버리지'라는 용어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부채를 진다는 것이 죄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가급적 빨리 얻을 수 있고, 가진 것 없이도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이중 유혹'을 제공한다.

금융혁신은 이런 유혹을 배가시켰다. 수학 천재들이 부채에서 가시를 빼고, 절제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금융기법들을 개발한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표현한 '부채의 상인'들은 속이기 쉬운 사람들과 무지한 사람들은 물론, 탐욕스러운 기업들과 현명하다는 개인들에게까지 불량품들을 팔아댔다.

그 결과는 전세게적인 '폰지 금융'의 폭발이었다. 종잇조각 같은 것을 주택처럼 안전하고 가치있는 자산으로 만들었다는 금융기법이 금융사기로 드러난 것이다.

부채에 의존해 성장한 경제에 가장 중요한 이론적 근거는 불확실성을 리스크로 재정의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는 도덕적 문제였으나 리스크에 대한 대처는 순전히 기술적 문제가 됐다.

미래의 사건은 계산이 가능한 리스크로 분해될 수 있으며, '리스크 선호도'에 따라 누구든지 만족시킬 수 있는 전략과 기법들이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융 중개상들의 경쟁으로 인해 '리스크 가격'은 계속 내려가 이론적으로 미래는 '리스크 프리'가 되었다.

현대경제학이 보여준 이러한 기괴한 자만은 결국 이 세상을 재앙의 끝으로 몰아갔다. 부채에 기반한 금융이 없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빈곤할 것이다. 하지만 침대 머리맡에 현금을 숨겨두는 시대에서, 돈이 없어도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양극단에서 균형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스페인의 금융위기에서 배우는 '중간 지점'

1980년대 스페인 금융위기 당시 스페인 중앙은행이 채택한 감독체제는 이런 중간지점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선례가 되고 있다. 스페인 은행들은 대출에 비례해 준비금을 쌓아두어야 하며, 장부 외의 자산에 대해서도 유보금을 쌓아두어야 한다.

이른바 '구조화된 투자상품'을 판매할 유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상품들을 개발한 스페인 은행들은 거의 없다. 그 결과 스페인 은행들은 부실채권의 150%에 달하는 충당금을 쌓아두고 있다. 반면 영국의 은행들은 80~100%에 불과하다.

또한 스페인의 주택구매자들은 집값의 20~30%를 자기 돈으로 내야 하는 반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100%가 주택담보로 제공돼 왔다.

웰즈는 반만 옳았다. 도덕과 파괴적 본능의 각축전은 전쟁뿐 아니라 경제생활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처방으로 도덕적 공백을 틀어막고, 정부가 체제유지를 위해 구제금융으로 황급히 대처하는 식으로 넘기는 한, 광기와 파산, 파산과 광기 사이를 계속 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 자체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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