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진보에서 보수으로 바뀌었다고 하도 그래서 나라가 보수적으로 바뀔 줄 알았는데(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불행히도 보수세력은 찾아보기 어렵고, 가볍고 경솔한 권위주의 세력만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것 같다.
정권이 이념정부에서 실용정부로 바뀌었다고 하도 그래서, 나라가 실용적으로 바뀔 줄 알았는데(이것도 역시 말이 그렇다는 것임), 불행히도 역사교과서를 비롯해 경제정책에 이르기 까지 '가상의 좌파'에 대한 공격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새로운 이념정부가 들어선 것 같다.
무릇 보수라 하면 보수적 가치를 지니고 실천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아니면 세계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보수적 가치를 들라면 과도함을 제어하는 '절제',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신중함', 매사에 성심 성의껏 임하는 '진지함', 그리고 남을 속이지 않는 '정직'과 '근면' '성실' 등이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경제위기, 그리고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가장 중요한 덕목들이다.
그런데 소위 보수정권하에서, 아니 보수가 주류가 된 사회에서 이러한 가치를 지닌 보수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 전체가 가볍고 경솔하고 즉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의 헛발질에서 시작해, 쇠고기 협상, 대일외교, 장관 인선, 언론정책, 그리고 최근에는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와 발언을 보면서 현 정부의 가벼움과 경솔함, 무책임성과 즉흥성 등에 매일같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어제 얘기가 오늘 달라지고, 오늘 얘기가 내일 또 달라진다. 사과했다가 잡아가고, 괜찮다고 했다가 위기라고 하고, 위기라고 했다가 선제대응을 잘 했다고 한다. 국정감사장은 감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마치 국정 연예인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이 가볍다.(연예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한편 현 정부에 대한 평가와 진단이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이랬다저랬다 급변하는 소위 보수언론의 가벼움도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대통령이 전봇대 하나 뽑으라고 했다고 그렇게 칭송하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심하게 물어뜯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작년 대선 무렵 영어와 일본어로 된 해외의 자료를 읽을 수 있었다면 성장위주의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고 미국식 금융시스템이 위험하다는 흐름을 알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언론들은 당시에는 시대정신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성장을 강조하다가 1년도 안 돼서 이제는 성장위주의 정책을 멈추어야 한다는 사설까지 내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최대의 골칫덩어리가 된 '747 정책'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언론의 바람몰이에 편승한 정책이 아니었나? 이제는 언론이 앞으로 있을 책임 공방의 회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매우 강한 의구심마저 일고 있다.
진정한 보수는 간데없고 가벼운 권위주의 세력만 판을 치고 있으니, 자칭 보수세력이라는 이 집단에서 가볍고 경솔하게 만들어 낸 사회적 왜곡은 무수히 많다. 그것은 보수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 되었는데, 상당 부분 현 대한민국의 위기와 혼란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왜곡을 바로 잡지 않고는 한국이라는 배가 풍랑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항로로 들어서기 어려울 것 같다.
구별도 못하고
'신중, 정직, 진지'를 근본으로 해야 하는 보수가 너무나도 가볍게 왜곡시키는 것은 우선 엉터리 구분법이다. 최근 나타난 대표적인 것 하나만 든다면 바로 좌파와 우파의 구별이다. 이 구별은 현재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앞날을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인데, 집권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이걸 전혀 못하고 있다.
집권 보수세력은 신자유주의 정권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계속 좌파로 몰면서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성장을 멈추게 했고,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정권을 좌파라고 구별하는 곳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집권 보수세력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좌파라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자신들은 거의 무정부주의적인 요소와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혼합된 최극단의 우파 정책을 추진했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그러한 방향에 대하여 징벌을 내리고 있는데, 이러한 엉터리 구별을 가지고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으로만 가는 집권세력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다.
보수세력은 이 외에도 대북정책과 대미정책에 있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선진화와 근대화를 구별하지 못하며, 반미세력과 민주주의 세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비교도 못하고
국민의 생각을 좌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왜곡은 엉터리 비교이다. 사회과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비교가 어려운 이유는 자칫 잘못하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사기에 가깝다. 그런데 보수세력들은 한국과 싱가포르, 한국과 두바이, 한국과 중국의 경제를 비교하며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 성장이 어떻고, 두바이의 개방도가 어떻고, 중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 한국은 한참 뒤 떨어져 있다는 비교가 정치권과 언론, 경제계에서 한참 많이 나왔다. 그런데 싱가포르, 두바이, 중국은 한국 경제와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경제 구조와 경제 발전의 수준, 전혀 다른 국가의 크기와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다. 그런 제도와 역사와 발전 단계를 정확히 인식하지 않고 무작정 비교하면 그냥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한미 FTA의 반대와 찬성을 쇄국과 개국으로 비교한다든지 대북 햇볕정책과 영국 채임벌린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비교하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게 왜 엉터리인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여하튼 절제를 덕목으로 하고 신중한 보수라면 정확한 비교를 해야지 비교와 비유를 혼동해 국민을 혼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인과관계도 모르고
무엇이 무엇의 원인이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문제의 근원을 알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인과관계(causal relations)와 상관관계(correlations)를 구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둘 간에 서로 상관성은 있지만 어느 쪽이 어느 쪽의 원인과 결과가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집권 보수세력은 너무나도 가볍게 인과관계에 대한 결론을 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촛불시위에 대한 것이다.
촛불시위에 대한 원인이 좌파의 준동 때문인지, 정부의 실책 때문인지, 반미감정 때문인지, 아니면 <PD수첩> 때문인지 그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연구가 필요한 문제다. 그것이 정확히 밝혀지고 나서 법을 적용해야만 진정한 법치인데, 그냥 정치적으로 바람몰이식의 인과관계를 만들어서 구속하고 수사하고, 전 국민을 반미주의자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히 신중치 못한 언행을 집권 보수세력은 하고 있다.
멜라민 사태에는 왜 촛불시위가 없느냐는 비난은 이러한 잘못된 인과관계 분석에 의거해 상당수의 국민을 반미세력으로 규정해 버리는 결과를 만든다. 대한민국을 반미국가라고 엉터리로 규정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과관계의 분석은 너무나도 어렵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원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원인이 주된 원인인지를 밝히는 것도 어렵다. 연예인의 자살과 관련해 오직 악플이라는 단순한 요인만을 지목해 인터넷 공간을 규제하려고 한 것도 보수세력의 가벼움을 보여준다.(그렇다고 악플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양극화의 원인, 북한의 핵무장과 비핵화 프로세스에 관한 원인, 한국만의 독특한 환율급등과 관련한 원인 등 현재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에 대한 원인분석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과관계 분석을 가볍게 정치적으로 단언해 버리면 국가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두 세력
사회가 위기에 봉착하고 혼란해질 때 세 가지 중 하나의 방향을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을 잊어버리고 아무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이게 선택된다면 집권세력은 다양한 왜곡을 통해 국민을 그러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자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쾌락에 몰두하거나 자포자기해 그냥 흘러가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힘들지만 보수적인 가치로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절제와 신중, 진지함과 정직, 근면과 성실을 가지고 사회의 기초를 다지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사회적 체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세 번째의 방향은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그 원인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만들어 내 강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첫 번째 방향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두 번째의 방향은 진정한 보수세력이라면 택해야 할 방향이다. 세 번째의 방향은 진정한 진보·개혁세력이 택해야 할 방향이다. 어려움의 정도로 구별하자면 아마도 세 번째가 가장 어렵고 첫 번째가 가장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두 번째의 방향으로 가는 세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지금 대한민국에는 첫 번째의 방향만 보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큰 흐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두 번째든 세 번째든 실력과 콘텐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는 침묵과 신중 속에서 안전한 길만 택할 것이고, 진보·개혁세력은 첫 번째의 방향과 유사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판단이 섰을 때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고, 진보는 과감하게 부수고 나가기 전에 정확한 판단과 그림을 먼저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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