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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시험대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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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시험대에 서다

[기고] '정연주 사냥'이 '법치 붕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연주 사냥을 위한 희대의 각본은 이미 착착 진행되어, 어느덧 대통령의 '이사회 해임 제청안을 존중하여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한다'는 최후의 피날레만 남겨두고 있다. 그 각본은 익숙한 것이지만 정말 유치찬란하다. 몇 달 전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이다.
  
  나는 여기서 그 각본이 얼마나 유치찬란한 것인지에 대해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그 유치함은 누구나 아는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뭔가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정연주 사냥에는 감사원, 검찰, 경찰, 방통위 등 힘있는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었다. 내가 정녕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냥에서 이명박 뿐만 아니라 이런 권력기관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그동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위의 권력기관들이 정치권력,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왔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분투는 일거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신뢰와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과가 말해 준다'는 식으로 이번에도 무리하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번번이 그런 시도가 패착으로 귀결되었지만.... 이것은 이명박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의 위기이다. 국가의 공권력과 언론이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심각한 사태이다. 불신과 불복이 만연하고 이것은 결국 폭력과 강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때문에 소위 보수진영도 도매금으로 불신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보수진영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가 우리 사회의 주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보다 합리적인 보수의 지배를 기꺼이 인정하고 기대한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보수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보수진영의 지배와 권위는 치명적 손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보수는 법치를 강조한다. 적어도 방송법을 개정하여 정연주 사냥을 했더라면 법치의 원칙만은 고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의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방송법개정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개정 내용도 방송법 50조의 '任命'이란 단어를 '任免'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시에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장의 '임면'이 '임명'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되돌리기만 하면 된다.
  
  비록 '과거로의 퇴행'이라는 비판은 있고 좀 번거롭기는 했겠지만 법치주의 원칙만은 고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은 그런 번거롭지만 최소한의 원칙마저 내팽개쳤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이명박식 일처리 방식이긴 하지만....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하는 보수인사들이 왜 이번 사태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지 의아하다. 정연주 사냥이 법치에 부합된다고 감히 주장할 이가 있을까? 그런 법학자가 있을까? 물론 그런 사이비 법학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그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어긋난 무도한 짓이라 여길 것이다.
  
  수천 수만명을 상회할 법학교수와 법조인들이 왜 이런 법치주의의 일탈에 대해 침묵하는가? 아무리 정연주란 개인에 대한 증오가 사무쳐도 그것은 법조인다운 태도가 아니다. 정녕 법조인들마저 이명박과 같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말 것인가?
  
  결국 정연주 사냥은 법원 판단으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소위 힘있는 대부분의 권력기관이 신뢰에 이미 치명적 손상을 입고 말았다. 이제 사법부가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교과서에는 엄연히 3권분립이 규정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사법부가 충분히 독립되어 존재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양심과 소신에 따른 판결이 적지 않았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법부가 상식과 법치의 최후의 보루이기를 바라는 나같은 상식인들의 기대마저 무너진다면.... 그 이후의 사태는 우리 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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