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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키드'들만 모르는 몇 가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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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메리칸 키드'들만 모르는 몇 가지 사실

[촛불의 소리]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제대로 보라

1. 미제 쇠고기가 일찌감치 불러내버린 이명박 정부의 본 모습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갈등이 벼랑 끝으로 내닫고 있다. 두 달이 넘도록,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에서 날을 새고 거리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미안함과 불안감과 호기심에 인터넷 앞을 뜨지 못하고 날밤을 새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광우병 소 먹고 젊은 나이에 맥없이 죽기 싫다는 여중고생들의 여린 손에 들렸던 촛불이 이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국민들의 손에 손에 전달되어 온 거리를 비추고 있건만, 돌아온 건 모질고 무능한 권력의 연이은 동문서답과 몽둥이질과 며칠도 못 가서 수명이 다할 땜질 처방뿐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정부의 정책 전반과 정권에 대한 폭넓은 불신,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심화의 문제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평화적인 촛불시위에 대한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이 도리어 종교계의 양심을 깨워 종교인들의 대거 합류를 불러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그럼에도 답이 쉽게 나올 것 같진 않다. 정권과 국민 일반의 시각과 정서의 괴리가 너무도 크고, 핵심 고리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의 경우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상태인데다,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경제마저도 침체 국면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불과 6개월 전에 국민들 다수의 지지로 대권을 거머쥐었던 대통령이, 나를 따르면 나라도 부강한 선진국가가 되고 국민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 큰소리치던 대통령이 이토록 궁지에 몰려 계속 무리수를 두고 그것이 다시 국민들의 더 큰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사태가 왜 이토록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지엄하신 대통령께서 다 내 잘못이라고 국민들 앞에 두 번씩이나 머리를 조아렸는데도 왜 국민들은 마음을 풀지 못하고 더 답답해하면서 마침내는 그 자리에서 그만 내려오라고 소리를 치고 있는 걸까? 취임한 지 겨우 4개월밖에 안 된 대통령에게? 국민의 거의 절반이 지지한 대통령, 투표율을 감안해도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 전국민의 무려 30%가 몸소 투표장까지 나가서 찍어준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화여론조사에서 기껏해야 20% 선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인 반서민적 정책 등 그 이유가 어디 한둘이겠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의 분석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진보와 보수를 떠나 만인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소통의 부재, 더 정확히 말하면 소통의 거부다. 말이 통하지도 않거니와 정권이 국민들과 아예 진정한 대화 자체를 시도조차도 하지 않고 시도할 필요조차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오만과 독선이 극에 이르면서 국민 일반과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가고 사태에 대한 인식과 분석과 처방도 전혀 다르게 나온다. 대통령에게 보청기를 사다줘야겠다며 외쳐대는 국민들의 답답한 절규는 메아리도 없이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는 4년 반 전을 잠깐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한나라당이 큰 타격을 당한 직후 당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런 고백을 했다. 자기 주변 사람들은 모두 탄핵에 찬성했기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하면 전국민의 환영을 받을 줄 알았노라고.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제 10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이들은 더 완고해진 자신의 틀에 갇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쓰고서 사태를 재단한다. 그리하여 4년 반 전과 같은 상황이 그대로 되풀이되면서 건강한 보수와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은 서민들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까지도 정권에 등을 돌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발족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며 머지않아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설마하니 국민의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과 정부가 이렇게까지 세상을 모르고 이렇게까지 무능하고 이렇게까지 앞뒤가 꽉 막히고 이렇게까지 오만하고 독선적일 거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2. 아직도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한 '아메리칸 키드'들
▲ 지난 4월 방미 당시 부시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을 부시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선물로 선사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에 '한미 FTA의 조속한 처리'를 약속했다. ⓒ연합뉴스

현 정부의 핵심세력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초장부터 국민 일반의 이익과 다른 길을 가면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가고 있는 걸까?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의 핵심세력은 정부의 초기 인사에서 명명백백히 드러났듯이, 이른바 '강부자'와 '고소영'과 'S라인'이 주축을 이룬다. 여기서 고대라는 학맥은 대통령의 출신학교라는 우연적 요소가 크므로 일단 제외하면, 결국 부자와 보수 기독교와 영남 부자와 관료가 남는다. 거기에 한나라당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보훈단체들과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우익단체들, CIA 장학생을 필두로 미국유학 갔다 온 학자들, 보수 언론인들이 가세한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약간의 의견차를 보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한 무리를 지어 저들만의 세계를 쌓고 저들만의 소통구조를 만들어 상황을 공유한다. 이들의 소통 범위는 기껏해야 전 국민의 상층 10-20% 이내로 제한되고 80-90%에 달하는 국민 일반과의 소통구조는 거의 없다. 경제살리기, 집값 상승 유혹에 혹하여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은 서민들 및 중산층과의 연계고리는 선거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끊어졌다. 정권과 국민 일반의 소통은 차단되고 최고 정책결정자에게는 국민 일반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상층 10%의 여론만 전달된다.

따라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의 대다수는 한국 사회에서 수단 방법을 막론하고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상층 일부, 그리고 이들이 연계하고 있는 외국 세력들의 이익에 부응하는 정책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무한경쟁을 당연시하고 조장하는 시장물신주의자들인 동시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국가폭력기구를 동원해 저항을 억누를 용의가 있는 권위주의 옹호자들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이들과 미국의 관계는 질기고도 끈끈하다. 유학과 파견근무, 정책교류, 비즈니스, 기독교,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미군 주둔, 그리고 반백년 가까운 반공교육 등을 계기로 미국과 이중삼중의 연계고리를 가진 이들에게 미국은 거의 '아버지의 나라' '주군의 나라' 같은 존재이며, 미국도 한국에 대한 그러한 영향력을 너무도 당연시해왔다. 이들 중 일부는 여차하면 언제든 미국으로 뜰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로서, 의식적으로도 자신과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상당 부분 동일시한다. 아니, 그 대다수가 엄마 젖 떼지 못한 유아들마냥, 다 커서도 어미의 주머니를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마냥,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고 보채며 난리고 엄마가 야단이라도 치는 날에는 눈물 찔끔 흘리며 슬며시 손 부여잡는, 미국과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메리칸 키드'들이다. 그러면서도 젖은 잘 먹고 자라 몸집은 크고 힘은 세다고 갖은 골목대장 짓은 다 하려 든다.

물론 힘센 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건 어떤 사람들에겐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지혜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다. 정도가 지나치면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며, 노예가 되는 순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더 중심에 두고 고려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아메리칸 키드들 중에는 성조기를 태극기만큼이나, 심지어는 오히려 더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들에게 한국전쟁기의 백만 민간인학살은 성스러운 전쟁에 임한 미군에게 바치는 제물일 뿐이고, 미국의 정책과 이익에 대한 반대는 아버지와 주군에 대한 불경으로서 김정일 추종자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군이 신하에게 나쁜 짓 할 리 없고 설령 아버지나 주군이 조금 불만스런 행위를 한다 한들 어떤 화를 입으려고 감히 기분 나쁜 내색이나마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의식 한 켠에 굳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냉정하다. 시장물신주의가 판치는 세상, 국민국가의 장벽이 무너져 넓게 개방된 세상은 거대한 초국적자본과 거대자본의 즐거운 놀이터이며, 이들은 또한 자신의 뿌리가 있는 기반 국가(들)의 전면적인 엄호까지 받으며 더 많은 이익을 우려내는 일에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초국적자본과 거대자본들이 세계시장이라는 놀이터에서 얻어낸 수익의 상당 부분을 수확하는 기반 국가들 역시 그들의 수익 창출을 목을 매고 돕는다.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은 접어두고라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 중에서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 정부와 관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미국의 압력에 순순히 따르는 걸까?

3. ABC를 어기고도 잘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쇠고기 협상

이번 쇠고기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사회의 아메리칸 키드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실상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국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며 미국 축산자본에 커다란 이익을 안겨다주는 협상을 하고는 국민들을 끝없이 속여가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의 내용상 문제점은 귀가 닳도록 이야기되었으니 생략하고라도, 재협상을 할 경우 예상되는 통상 피해가 어느 부문에서 얼마나 될지조차 설명도 못하고 토론도 기피하면서 통상국가로서의 체면과 피해 운운하며 상황을 미봉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한 번 생각해보자. 그렇게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자국민을 설득하지도 못해 국내외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정부와 나라의 체통을 누가 존중해줄까? 다수 국민을 바보 취급하며 적으로 돌리는 나라, 그리하여 집권 4개월 만에 지지도가 10-20% 선으로 떨어진 정부와 나라를 어떤 나라, 어떤 국민이 존중하고 신뢰할까? 국민의 신뢰를 그토록 잃은 정부가 향후에 체결할 협상이 얼마나 힘을 받을지, 자국민의 신뢰를 잃은 나라가 향후 통상 과정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걸까? 어떤 체면이 더 중요하고 어떤 피해가 더 클까?

이번 쇠고기 협상을 대하는 국민 일반의 정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마디로 답답하고 쪽 팔려서 국민 못해먹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비굴하고 무능하게 구느냐는 것, 도대체 무슨 대가로 국민 건강까지 팔아넘겼느냐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수출수입업자들의 양심에 맡기는 정부의 존재이유가 무엇이고, 왜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며(OIE 기준은 사실상 미국의 기준이고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미국의 기준보다는 훨씬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므로), 물건을 사오는 나라에서 도대체 왜 도축장 선정권과 취소권, 검역조사권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처음 실수는 한 번 실수로 용서한다 쳐도 백만 촛불시위로 그 정도까지 힘을 실어주었는데도 왜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손도 못 대고 돌아와서는 추가협상 잘됐다고 염장만 긁고, 그에 대해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왜 불순한 사람 취급하며 폭도로 몰아 탄압하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무지와 단견과 무능을 도대체 어디까지 봐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번 쇠고기 수입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들이 왜 그렇게 하나같이 극소수 가진 자들과 미국만 위하는 정책들 일색이며, 서민들의 삶에는 왜 그렇게 도시 관심이 없느냐는 등의 불만이 덧붙는다.

정부와 아메리칸 키드들은 할 만큼 했다고 한편 하소연하며 한편 윽박지르지만, 민주화와 국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지난 20년 동안에 한국사회에는 백전노장들이 즐비해졌다. 현 정부의 책임자들보다도 유능하고 기민하며 국제감각도 뛰어나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탁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필요하면 저항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지와 단견과 무능을 권위주의적 폭력으로 감추고 누르며 은근슬쩍 넘기려는 정부의 의도를 꿰뚫어보며 외치고 있다.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드러내가며 한판 붙으려면 정부의 기본 책무는 좀 하면서 붙자고! 초등학생들이 봐도 옳고 그름이 분명한 판을 깔아놓고 아옹다옹하는 이 꼴이 너무 우습지 않느냐고! 기본도 못하면서 힘으로만 누르려고 하니 이게 무슨 쌍팔년도 행태냐고!

도대체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해지고 있는 미국 쇠고기의 사실상 전면개방은 국민 일반의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정부와 아메리칸 키드들은 권력에 심취하여 자신들의 세계에 갇힌 나머지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잘 못 깨닫고 계속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먹을 것에 관한 문제고, 국민의 건강권이 걸린 문제이며, 나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함께 가는 문제다. 이 정부는 나는 비록 비루한 것 먹을지라도 자식들은 좋은 것만 골라 먹이고 싶어하는 한국 에미애비들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거기에는 좌도 우도, 부자도 빈자도 없으며, 나의 이익이 곧 민족 공동체의 이익이다. 그로 인해 그렇게 짧은 기간에 남녀노소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그토록 폭넓은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미국의 축산업자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민 일반의 이익과 의사와 감정을 무시했다. 정부의 굴욕적인 통상외교와 대가도 없는 조공외교, 속속 드러나는 무능과 속임수, 안이한 자세와 안이한 판단, 문제제기에 대한 봉쇄와 왜곡과 탄압이 국민들의 뒤틀린 감정에 연거푸 불을 질러댔다. 불순세력, 통상국가 운운하는 정부의 강변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다.

4. 미국 농축산물이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다는 건 상식이다
▲ 촛불, 촛불, 또 촛불. ⓒ프레시안

이번 미국 쇠고기 사태의 본원적인 문제는, 사태의 계기가 된 광우병도 광우병이지만, 미국 쇠고기를 비롯한 미국 농축산물을 바라보는 아메리칸 키드들과 국민 일반의 현격한 시각차다. 미국 것은 뭣도 좋다는 아메리칸 키드들은 미국 농축산물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거나 믿고 싶겠지만, 국민 일반은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농축산물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세계 최대의 농축산물 수출국인 미국의 축산업자, 곡물 메이저들은 펄펄 뛰며 부정하고 그 입김에 휘둘리는 미국 정부는 그 사실을 은폐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미국 내에서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나름대로 나라꼴을 갖춘 나라들에서는 국민건강 보호와 자국 농업 보호 차원에서 미국 농축산물의 수입에 이중삼중의 제동장치를 만들어놓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 소와 유전자를 변형시킨 GMO 농산물인데, 그밖의 농축산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소의 경우, 대규모 공장형 축산에 따르는 많은 문제들,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문제, 도축과정과 검역과정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근저에는 미국 축산업자와 수출업자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의 건강을 부차적으로 여기며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욕이 깔려 있다.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하고 공장형 축산이 가장 보편화된 미국에서 그 위험성이 가장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광우병이 먼저 발생한 영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걸 금지한 게 이미 오래 전의 일인데, 광우병 통계가 정확히 나올 경우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게 분명한 미국에서는 축산업자들의 막강한 로비에 밀려 광우병 검사조차도 0.1%밖에 시행하지 않고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도 몇 년째 계속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에 널리 알려진 동영상들에서 보듯이 최소한의 법적 기준마저 어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데도 미국은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체적으로 광우병 전수검사를 실시하여 수요자의 인정을 받겠다는 업체의 요구마저도 기각하며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그 막강한 영향력으로 OIE의 기준을 낮추어 미국산 소가 마치 안전한 양 포장하고는 못 사는 나라들에게 자신들은 먹지도 않는 부위까지 끼워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다 아는 사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미국에서도 친환경 농축산물이 각광을 받으면서 중상류층에서는 풀만 먹고 자란 값비싼 고급 소의 고기를 사먹고, 일반 국민들도 24개월 미만의 살코기를 등급별로 구분하여 사먹는다.

광우병과 같은 치료 불가능한 신종 질병들은 자연의 섭리를 어긴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 소를 주는 대로 사먹으라는 건 간접살인 행위일 수 있다. 미친 미국 소 먹고 죽고 싶지 않다는 여중고생들의 항변은 가능하면 위험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기본 심리로서 그 자체로 충분히 정당하다. 지면상 생략하지만, 광우병 못지않게 큰 위험을 안고 있는 GMO의 경우도 대동소이하고, 그 위험도가 가장 높은 나라 역시 미국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농축산업이 서서히 대규모화하면서 조류독감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소의 사육환경은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목가적이라 할 정도이고 당연히 위험도도 훨씬 낮다. 국가의 섣부른 판단은 매우 위험하며, 일이 잘못될 경우 10년 전의 영국과 같은 재앙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어느 누구도 배제할 수 없다.

5.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은 한국 경제의 먹구름을 더욱 짙게 할 것이다

아직은 되돌아올 기회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지만, 일단 루비콘 강은 건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장관고시가 관보에 게재되면서 창고 재고품에 대한 검역이 시작되고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다. 극우보수언론들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고 난리들이다. 그러나 성급한 예단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시중에 나오는 것은 미국 정부의 수출보증으로 과거에 수입하여 보관중이던 30개월 미만의 살코기일 뿐이고, 이번에 새롭게 풀린, 품질보증 검인을 받은 민간업자들이 자체 검수하여 내놓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와 뼈, 곱창, 회수육 등이 풀리는 것은 이달 말께부터다.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측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는 건 그 사람의 천부적인 자유지만, 책임있는 정부와 언론, 기관들은 신중한 판단과 예측을 할 의무가 있다. 과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별 문제 없이 한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대가로 FTA는 순조롭게 추진되어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켜질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내 생각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매우 비관적인 그림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축을 따라가보면 사태가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 같다. 물론 정부가 다시 한 번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재협상 또는 그에 준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의 가정이다.

-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신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쇠고기 전반에 대한 불신, 쇠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과 식품에 대한 불신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 축산업계와 음식업계, 식품업계, 농축산물 유통업계와 수입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불황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산업들에 깊은 주름살이 패면서 자영업자들 상당수가 큰 곤란을 겪을 것이다. 선금을 주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는 수입업자들은 머지않아 파산할 것이다.

- 관광산업과 금융업이 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외부 요인에 따른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심화될 경우 금융업계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경제 전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더욱 짙어질 것이다.

- 이미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유가 폭등, 물가 상승, 경제 불황의 여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대립, 민영화와 FTA, 교육 등 정부의 다른 정책들을 둘러싼 갈등들이 겹쳐져 사회적 저항이 격화되면서 사회적 대혼란이 일 것이다. 초보적인 수준의 검역권조차도 확보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한 협상력에서 보듯이 세계의 추세를 읽지 못하고 미국 일변도 정책으로 일관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대내외적 불신으로 말미암아 한국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한국에 대한 국제 신인도는 크게 하락할 것이다.

- 미국 축산업계와 농축산물 유통무역업계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한국의 동향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미국 농축산물에 대한 전세계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미국 농축산물의 수출은 급감할 것이다.

-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농축산물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친환경 농산물의 수요가 크게 늘 것이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 전환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고 커다란 진통이 따를 것이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의 사실상 전면개방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서 한국인과 한국경제에는 커다란 짐을 안겨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책결정자의 잠깐의 안이함과 오만함에서 비롯된 실수, 그리고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된 나머지 가까운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 미국 축산업계의 욕심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과잉생산의 정리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작은 자들이며, 이들의 삶을 챙겨주지 못하는 민주정부의 존속은 불가능하다.

6. 실용주의 장사꾼은 물건을 잘못 샀을 경우 바다에 처넣을 줄도 안다
▲ "위에서 때리지 말고 낮은 자세로 섬겨주세요." 아이는 '아래'에 있는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프레시안

정부의 말마따나 한국 경제의 대내외적 환경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예고됐던 세계경제 불황에 유가 폭등, 그리고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한국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그 파장이 얽히고 설키면서 심각한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자신의 허물을 국민들의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인 촛불시위에 덮어씌우려는 치졸한 모습을 보이며 국면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거로 선출된 민주정부의 도리가 아니다. 그런다고 경제가 좋아지지도 않는다.

꼬인 매듭은 풀어야 한다. 꼬인 매듭을 가장 잘 풀 수 있는 사람은 매듭을 맨 사람이다. 지금 '촛불'로 표현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펼쳐내 사회의 동력으로 삼으려면, '촛불'을 답답한 틀 속에 가두고 있는 질곡을 제거해야 한다. 초등학생들까지도 어이없어하는 잘못된 쇠고기 협상은 백지화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협상을 되돌리자면 자존심도 무척 상하고 바다 건너 '형님'의 얼굴도 어른거리겠지만, 그것이 남는 장사다. 큰 장사꾼이 순간의 실수로 물건을 잘못 샀을 때 그것을 어떻게든 고쳐 팔아보려고 하느니보다는 아예 바다에 처넣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 나은 경우도 많다. 아메리칸 키드들 중에서는 그래도 순진해 보이는 장사꾼 이명박은 충분히 그 길을 택할 수 있고, 또 한국 국민들의 대통령 이명박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국민들의 에너지를 그렇게 소모적인 논쟁 속에 가둬두지 말고, 생산적인 논쟁과 행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위기 상황에서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는 길이고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충천하는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질곡을 걷어내야 한다. 엉터리 협상을 폐기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7. 아메리칸 키드들이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

기본이 탄탄할 때 생산적인 논쟁과 실천은 가능해진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개월 동안 너무나도 많은 미숙함을 보여왔다. 경제정책이든 사회정책이든 교육정책이든 문화정책이든 좀더 수준 높은 정책이 채택되고 좀더 차원 높은 갈등이 생성되려면, 인간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이번 쇠고기 사태와 관련하여, 대다수 국민은 아는데 아메리칸 키드들만 모르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이것은 기본이다. 최소한 이런 정도의 인식도 갖추지 않고서는 개명한 한국 국민들을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

(1) 미국은 지는 태양이다. 지나친 미국 중심, 미국 편중 정책은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각종 국제협상과 국제기준에서 미국은 이제 한 나라의 꼴을 갖춰가고 있는 유럽연합에 판판이 밀리고 있다. 정치사회제도는 물론 경제규모 면에서도 유럽에 밀리기 시작한 지 오래고,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에도 크게 밀린다. 이번 사태에서도 보듯이, 미국의 압력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정해진 OIE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나라가 세계에 한국말고 또 어디 있는가(그것도 OIE 기준에도 없는 검역권까지 다 내주면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지지하는 나라가 세계에 한국말고 또 어디 있는가?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나라, 힘없는 나라라고 해도 이제 미국에 무조건 고분고분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하나도 없다. 각기 주어진 상황에 따라 몇몇 강국들과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취한다. 미국이 아직은 제아무리 힘센 나라라 하더라도, 말 안 들으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깡패국가'라 하더라도 이젠 그렇게 막 나가진 못한다. 국제관계가 복잡해지고 국제적인 장치들도 있기 때문이다. 막장 '깡패'한테 막판에 두들겨맞을까 두려워 마냥 알아서 기다가는 자칫 세계의 미아, 세계의 '왕따'가 된다.

(2) 한미 FTA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둑이 터진 개방된 세계체제에서 FTA는 원리상 강자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물론 강자보다는 적더라도 약자도 함께 득을 볼 가능성은 있지만, 득이 많을지 실이 많을지는 뚜껑을 열어보아야 안다. 한국보다 몇 수 앞선 통상국가인 미국이 한국에 일부러 시혜를 주려고 한국에 유리한 협정을 맺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냉정히 볼 때 미국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한국의 산업이나 기업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의 일부 분야뿐이고, 다른 대부분의 산업이나 분야는 약세다.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미국에는 많이 유리하고 한국에는 유불리가 공존하는 협정이다. 잘 대비하지 못할 경우, 몇몇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이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고, 모든 체계가 미국식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자주성, 독립성까지도 심각한 훼손을 당할 수 있다. 철저한 대비 후 협정 조인은 필수고, 최소한 이번처럼 한국에 유리한(?) FTA 조인을 위해 그 대가로 쇠고기 시장 따위를 내어줄 이유는 전혀 없다. FTA의 장점만 이야기하며 협정 조인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미국의 산업이나 한국의 경쟁력있는 몇몇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3) 농축수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내수기반의 강화도 수출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은 통상만으로 살아가야 하거나 살아갈 수 있는 도시국가가 아니다. 남한만 해도 인구 5천만 가까이에 지방마다 날씨도 제각각일 만큼 어엿한 영토를 가진 나라다. 통상 올인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요즘처럼 외부적 조건이 어렵고 변동폭이 큰 때일수록 내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 큰 버팀목이 되고, 전략적 의미가 갈수록 강조되는 농축수산업도 기간산업으로 강화해가는 것이 마땅하다. 농산물 자급률 25%선은 지극히 위험한 수준이며, 상공서비스업에서도 수출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내수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트리클다운 효과가 제한적인 통상입국은 국민 일부의 배를 불릴 뿐이며, 다수 국민에게 더 필요한 건 농축수산업 및 내수 기반의 강화다.

(4) 위험 관리는 현대국가의 기본업무다. 자본과 과학기술이 맹목적으로 스스로를 확장해가면서 현대사회의 모든 면에서 위험요소들이 크게 늘고 있고 현대인은 늘 위험과 맞대면하며 살고 있다. 광우병처럼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치병 같은 경우도 그 좋은 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공장형 축산, 동물성 사료 등이 알 수 없는 질병들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위험에 대책 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견되는 위험에 민감하게 행동하며, 확률과 무관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위험에는 특히 더 민감하다. 현대국가의 정부는 위험을 대하는 이러한 인간심리와 인간사회를 잘 읽고 그에 섬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의료와 교육, 물 등 공적 서비스의 사영화, 사유화에 대한 저항의 밑바닥에도 이것이 민간에 맡겨질 경우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5) 인터넷은 현대사회의 물이요 공기요 밥이다. 인터넷은 가치와 상관없이 우리가 숨쉬고 소통하며 놀고 일하고 먹고 마시는 사회의 기반공간이다. 이번 촛불정국에서 아메리칸 키드들과 정부가 인터넷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이 언젯적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새로운 정보들이 시시각각 생산, 검색, 공유되는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면서 명백한 정파 신문인 조중동을 앞세워 여론을 이끌어가려 하고, 경찰을 앞세워 참혹한 국가폭력을 행사하고는 시치미를 떼며 오히려 촛불시위를 폭력시위로 매도하려 든다. 인터넷을 통해 시위 현장이 전국에,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시시각각 그 반응들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첨단 정보통신세상에서 이 무슨 구시대적 작태인가? 그러고는 책임을 묻겠다며 인터넷 공간을 옥죄려 든다. 사람들에게서 물과 공기와 밥을 뺏으려 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찌 살라고? 그 폐해는 어찌 감당하려고? 아니, 그 이전에 그게 먹히기나 할까?

(6) 깨어난 시민들의 의식적인 행동은 나라의 힘의 원천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나온 결집된 힘은 외부의 어떤 힘보다도 강력하다.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시민들의 말과 행동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건강한 저항이다. 이것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역동적인 사회냐 죽은 사회냐가 결정된다. 죽은 사회에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는 없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나마 모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사를 폭력으로 짓누르며 대화를 거부하는 정권은 파시스트 정권이다. 이 개명천지에 폭력으로 시민들을 다스리겠다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다. 날 때부터 민주주의를 체화한 새로운 세대는 몸으로, 피부로, 정서로 억압을 거부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이 있는 세대는 과거로의 퇴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일시적 탄압으로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현실을 직시하고서 어떻게 그 에너지를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발현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8. 21세기 국민과 20세기 정부의 간극을 좁히는 길 - 기본은 하면서 붙자

아메리칸 키드들의 계속되는 젖먹이 짓에 지금 국민들은 큰 고생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지지 여부를 떠나 대다수 국민들이 죽을 맛이다.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촛불시위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마음 편한 게 아니고 정부를 지지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런 교착 상황은 강경진압이나 여론조작, 두루뭉술 미봉책으로는 결코 타개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상황이 풀린다. 강경책이나 미봉책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내상을 입히고 사회를 질식시키거나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끝없는 투쟁에 나서게 할 뿐이다. 투쟁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조금 더 생산적이고 차원 높은 싸움을 통해 세상을 한 걸음이라도 더 진일보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21세기 국민과 20세기 정부의 간극을 좁히는 길은 20세기가 21세기로 넘어오는 것이 정석이다. 21세기 정부에 걸맞게 기본은 하라는 것이다. 오만과 독선과 단견을 버리고 세상을 좀더 넓고 깊게 보면서 무엇이 국민을 살리는 길인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는 어떤 세상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국정에 임하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이 시점에 출범 4개월밖에 안된 이명박 정부, 국민들의 선거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나도 답답한 나머지 계속 그럴 거면 차라리 그만 내려오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출범 4개월 만의 정부 퇴진은 국가의 불행이요 국민의 불행이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 거칠어지기 전에 하루 빨리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는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잘못 꿴 단추는 다시 끌러서 바로 꿰어야 한다. 국가정책 전반을 국민의 입장에서, 서민들의 입장에서 전면 재검토해보아야 한다. 작은 눈이라도 크게 뜨고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면서, 민초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기울이면서, 시대의 의미를 읽고 충분히 숙고한 연후에 행동해야 한다. 멋대로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

깔끔하게 기본은 하자. 그리고 붙으려면 제대로 붙자. 좀더 높은 가치와 방향과 정책을 놓고 제대로 한판 붙자. 어디 그런 유치한 잣대로 세상을 맘대로 재단하고, 얄팍한 간계와 폭력으로 사람들을 짓밟으며, 국민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넘치는 에너지를 가두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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