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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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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까닭

한반도브리핑 <89> 촛불집회와 相轉移의 정치경제학

"만약 한국의 현 상황에서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박정희와 같이 개발독재식으로 밀어붙인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 박정희 같은 인물이 다시 나와 한국사회를 권위주의체제로 되돌리려고 한다면 대국민적 반대에 부딪칠 것이고, 그러한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퇴임 하게 되거나 개발독재식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필자는 1년 전 한 책을 집필하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책을 마무리할 당시는 노무현 정권 말기였고 대권 후보자들이 저마다 노무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집권한다면 나라를 바로 잡고 경제를 부흥시키겠노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박정희 개발독재식으로 밀어붙이기 정책을 펼 것으로 우려했던 후보는 바로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 씨였다.

권위주의가 통하지 않음이 증명된 시간
▲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촛불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이명박 정부는 필자의 예견대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여중생들의 촛불시위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은 두 달이 넘게 지속되면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뿐 아니라 대운하 반대,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교육정책 반대 등 정부 정책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시위가 되었다. 또한 천주교, 불교, 개신교 성직자, 종교 지도자들도 시위에 참여하고 있어 대국민운동으로까지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안팎으로, 집권한 지 100일이 조금 넘는 것을 감안할 때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747'(연간 7% 성장해 10년 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강국으로 도약)은 사실상 정부도 포기한 상태다.

특히 국제 석유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넘으면서 성장률도 낮아지고 인플레이션도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정부 스스로 걱정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필자의 예견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예견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며 한국사회를 조금만 고려해 보면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명박 정권의 밀어붙이기 개발독재식 정책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장마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집회가 증명하듯 권위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수용되고 용납되기 어렵다.

그것은 40년이 넘게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근래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한국사회가 더욱 더 다분화, 세분화, 그리고 다양화되어 가고 있으며,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승리로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했고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마치 물과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을 정도로 필수적이며, 이것을 국민 스스로 포기하고 권위주의 체제로 돌린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역사상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되돌린 예는 전무하다. 오히려 세계역사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퇴진'으로 문제 풀릴까?

현재 진행 중인 촛불시위는 가히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chapter)을 쓴다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권력에 대한 비폭력적 견제와 저항은 대한민국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새로운 세대의 역동성과 민주시민의 참여의식은 세계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사죄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을까? 아니면 일부에서 원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퇴임한다면 문제가 풀릴까?

현재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정치·외교·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대통령 한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다고 풀릴 문제 또한 아니다. 대통령의 자질, 능력, 그리고 성향이 이 사태를 불러오는 데 일정하게 기여한 면도 있으나, 이번 사태는 현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체제로부터 기인한다.

한국사회는 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독재체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또한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과 더불어 사회 각 계층과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도 다양해지고 복잡성을 띄게 되었다.

이것을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하고 협상해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정치의 틀, 즉 새로운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제도와 체제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대통령 중심의 단극(單極)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치경제적으로는 권위적 코포라티즘(authoritarian corporatism)에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

이같은 체제는 경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치른 절망적인 상황에서 국민을 강제적인 수단으로 통제하고 통합해 권위로 질서를 잡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는 효과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또 국민 일반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였기 때문에 계속 지속될 수 없었다.

또 경제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 발전해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 국민들의 성향, 취향 그리고 요구 사항도 다양해지게 되는데 이것을 현 체제와 제도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내외적으로 도전(challenge)과 기회(opportunity)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화합을 이루고 힘을 모은다면 도전은 언제든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시련이 될 수 있다.

'화합의 촛불'은 어디에

지금은 국론을 모을 때다. 누군가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옳다면 정치는 분명 '복잡계'일 것이다. 복잡계에서는 환원주의(reductionism)가 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현재 봉착되어 있는 문제들을 어느 특정 인물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치가 복잡계인 것을 망각한 환원주의적 발상이며 지양되어야 한다.

국론을 모으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모든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같이 나아가야 한다는 공통분모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어느 특정한 인물만이 할 일이 아니고 모두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치의 정점에 있는 위정자의 역할은 그 누구의 것보다도 중요하다.

지난 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에서 수경스님은 법회연설 중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뛰어넘을 화합의 촛불을 들고 나오라"고 말했다.

수경스님 말대로 이 대통령은 경제의 촛불을 들기 전 진보와 보수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갈등을 뛰어넘을 화합의 촛불을 들고 나와야 한다. 이것이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는 정권을 구하는 일이며 한국이 직면한 도전을 기회로 전환하는 길이다.
▲ ⓒ프레시안

합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코포라티즘

그러면 사회갈등을 뛰어넘을 화합의 촛불은 무엇일까?

필자는 스위스, 핀란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强小國)들의 정치와 경제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합의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와 민주적 코포라티즘 (democratic corporatism)의 도입과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합의 민주주의는 배제적(adversarial)이기보다는 포용(inclusiveness)적이고, 경쟁적(competitive)이기보다는 교섭적(bargaining)이며, 적대적(adversarial)이기보다는 타협적(compromise)이 되어야 하고, 근소한 차이의 다수자(bare majority)를 만족시키는 통치체제보다는 통치하는(governance) 사람의 규모를 극대화하려는 민주주의 체제를 가리킨다.

민주적 코포라티즘은 민주적 협동체주의라고도 불리며 계급간 또는 조직간의 협조(concertation of class or organization)를 바탕으로 하는 이익집단간의 조정과 정책적 합의 체제를 말한다. 계급 또는 조직간의 협조는 각 조직의 대표성과 권위를 가진 대표들이 서로 지위와 자격을 상호 인정하는 바탕에서 대화와 교섭을 통해 타협을 만들어 내면서 이루어진다.

합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코포라티즘은 단극적 대통령 중심체제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정치, 경제체제의 기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번에 이룰 수는 없다.

밀어붙이기나 꼼수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는 물질의 질적 변화-편집자)를 위해 임계점(critical point)을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직시해야 한다. 상황을 그냥 돌파하려는 개발독재식 밀어붙이기와 상황을 그냥 넘어갈려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큰 후폭풍을 맞을 뿐이다.
▲ 필자 박후건 교수 ⓒ프레시안

대한민국 사회가 합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코포라티즘으로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대통령 비서진의 전격적인 교체에 이어 농림부, 교육부 장관들을 바꾸는 소규모 개각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진정으로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개각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의 사람들이나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로 다시 채우는 '친정식 개각'이 아니라 각계각층과 보수뿐아니라 진보도 함께하는 거국내각을 이루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계층이나 계파를 대표하는 장(長)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전국민을 대변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확실히 명심해야 한다.

수경스님은 시국법회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섰는데 더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라고 일갈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을 비울 것을 주문했다. 마음을 비우고 현실을 직시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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