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에 참석하면서 다시 느꼈지만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이다. 컨테이너로 만든 광우장성 앞에 스티로폼을 쌓을 때, 전경버스 앞에 모래주머니로 국민토성을 쌓을 때,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내려 할 때에 나는 시청 광장으로 돌아가 그저 모니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경찰과 시민의 대치가 격렬해 질수록 첫 차 시간을 확인하려 시계를 보는 일이 잦아졌으며, 요즘에는 '나갈 만큼 나갔다'라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된다. 이렇게 겁많은 내가 오늘 28일 서울을 떠나 있게 된 건 우연보다는 무의식의 작용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시청에 나갈 수 없는 나 자신은 매체를 통해 거리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안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갑갑하다. 세상도 나도 참 갑갑한 친구들이다.
말 그대로 거리에는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좋아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체면치레를 벗어던지고 국민을 향해서 전쟁을 선언했다. 경찰에서는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겠다느니 형광액을 섞어 자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느니 불심검문을 한다느니 진짜 5공식 진압이 뭔지 한 번 봐야 안다느니 세렝게티 초원의 짐승들마냥 자신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과시하고 있다.
정말 경찰이 '시민들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고 공성전을 치를 게 아니라,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쌓여가는 시민들의 불만을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고 있는 관료로서 대규모 폭력 사태의 가능성을 염려하고 대통령과의 평화적인 만남을 보장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가? 애당초 기대도 없다만 시민의 입이 되어줘야 할 여당도 야당도 자기 앞가림도 정신없어 보이는 판에 경찰력이라도 시민들의 안전한 의사표현을 보장해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국민들이 그치들 말대로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든가 비합리적이라든가 선동당하고 있다손 쳐도 그건 지팡이로서 시민들을 도와야 할 이유지 몽둥이로서 시민들을 연행해갈 이유는 되지 않는다.
폭력,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게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위대가 전경 버스를 먼저 끌어낸 것도 사실이고 이명박 정부가 청개구리마냥 삐딱선을 타 시민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현장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지 따지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싸움이 일어났을 때 권력의 편을 드는 건 정말 손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불법 시위만을 강조하는 경찰의 태도는 비열하고 때로는 처량해 보인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며 냉소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는 권력에 붙어 자신의 이윤을 챙기는 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법'의 의미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서 사회의 다양한 권력관계를 조화롭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처절한 빈곤함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가면 혹은 권력에게 바치기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조공이다.
어디 빈곤한 자들이 경찰들뿐이겠는가. 시대의 빈곤함은 사실 이명박의 당선 때부터 예견됐다. 이명박을 뽑은 건 바로 우리 시민들 자신이다. 이제 와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고 직접행동이나 실질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들 그게 유혹에 굴복한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다. 747! 뉴타운! 경제성장! 제 명에 죽지 못해 구천을 떠돌다 이제 승천하려는 박정희의 유령을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아직 좀 있어달라고 붙들었다. 성장주의에의 장밋빛 환상이 육화되어 구현된 것이 바로 이명박이다. 자국민이 UN 사무총장에 취임했지만 세계적 운명은커녕 국가적 운명조차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한 우리의 잔인한 이기심을 거울에 비추면 대운하, 민영화, FTA 등의 정책의 목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명박 정권은 국민을 속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정직했다. 그들은 국민들의 가장 저열한 욕망을 읽었고 국민이 자장면이 먹고 싶다하니 그걸 먹고 죽든 말든 자장면을 내놓았을 뿐이다. 현 정권은 그 어떤 정치적 윤리적 책임도 짊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밑바닥을 감춘 적이 없다. 아직 책임을 저 '사악한' 정권에게로 돌리고 싶은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명박 캠프가 낱말찾기에 빈 칸 채워넣기 식으로 선거공약에 억지로 집어넣은 '선한' 정책에 속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칭 진보 세력의 전략은 어땠는가? 이명박이 성장률 7%를 부르며 정치 시장에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았을 때 진보 세력은 상상력의 빈곤을 보이며 다른 길을 가기는커녕 이를 따라 국민들에게 자신의 주권을 팔아달라며 너도나도 입찰 경쟁을 벌였다. 누구는 기묘한 계산법으로 8%를 불렀고, 누구는 7%는 안 되지만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덤으로 얹어서 내놓았다. 애당초 이길 수 없는 경기장에서 게임은 시작됐다. 나는 아직도 경쟁력, 경제적 이윤,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이명박이 가장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대로 냅두었다면 국민을 죽이든 살리든 어떻게 해서 7%를 찍기는 찍어줬을 것이다. 진보를 자임하는 이들이라면 시민들의 어두운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의 위기를 조망하며 시민들의 공생하는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었어야 한다. 그게 '정치'다.
해서 우리는 작년 대선에서 두 가지 빈곤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시민들의 빈곤이 있었고, 정치의 빈곤이었다. 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할 줄 모르고 '그냥 돈이나 벌어 줬으면 좋겠다'는 체념과 냉소주의에 몸을 맡긴 결과, 우리는 전두환을 몰아내고 21년 후, 같은 광장 같은 날에 이번에는 게다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게 저항하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거리에 나가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었다. 때문에 슬프다. 가난하고 또 가난한 시대다. 협상을 밥 먹듯이 파기하는 제국으로부터 마크 하나 받아오고선 신나서 촐랑대는 정부도 우울하지만 반복되는 역사 역시 우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우리 이제 약속을 하나 하자. 겁쟁이인 주제에 비관까지 해서 전망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차라리 퇴진을 했으면 했지 재협상까지 양보할 의지는 전혀 없는 듯싶다. 재협상이란 성장률만을 지상과제로 삼은 현 정권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반하는 일이다. 5년 동안 사춘기 소년 소녀들처럼 자기 정체성을 고민할 시간을 갖기로 결심하거나 자살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재협상에서 민영화, 대운하로 이어지는 콤보를 진심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해서 우리 이제 약속을 하자. 2008년 5월, 6월 그리고 이어질 7월까지. 오늘 의식을 가지고 이 시간과 공간을 사는 인간으로서 이 순간들을 죽을 때까지 가슴에 안고 꿋꿋이 살아가겠노라고 우리 서로 약속을 하자. 단지 들끓을 때의 추억, 술자리 안주꺼리로 2008년을 기억하지 말고 하나의 '계기'로서 껴안고 살아가겠노라고 우리 서로 약속을 하자. 지금 거리의 투쟁은 식민지 시대 반일항쟁과도 다르고 군사독재정권 때와도 다르다. 우리는 어디서 굴러들러온 외적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불러낸 악령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약속을 하자. 더 이상 치졸하게 스스로만을 위하며 뉴타운이네 뭐네 하는 더러운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로. 과거의 평촌, 오늘의 기륭전자 등등 더 이상 불의가 있을 때 나와 무관한 일이네 하며 손놓고 있지 않기로, 아니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맘편히 권력 편을 들며 저항하는 사람들의 흠집을 찾아내지는 않기로. 이명박이 퇴진한다고 해도 우리가 2008년의 기억과 함께 살지 않는 한 악령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농민들이야 평생 지어먹고 살든 땅을 갈아엎건 말건 자동차가 많이 팔릴 테니까 FTA도 통과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과 싸워 이기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약속하자. 100만 명이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거리에 나왔던, 자동차들이 점령하던 거리를 밤을 새워 낯선 사람들과 행진하든, 다 같이 목소리를 합쳐 권력을 향해 '물러가라'라고 노래를 부르든, "누군가가 사온 비옷이 안국동 돌담길 옆에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든" 2008년의 순간들을 부둥켜안고 살기로. 나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살기로.
거리에 나가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는 (그 용기에 대한) 질투와 감사의 마음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동물적 폭력성을 깨우기를 강요받는 전경분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역사는 기억한다. 그리고 비록 방패에 얻어맞을 한 방이 무서워 전경복만 보면 주춤거리는 겁쟁이지만, 나도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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