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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진화(進化)시키려면…

[촛불의 소리]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촛불항쟁의 진화를 위하여

객관적 상황은 이미 분명하니 주체적 실천이 중요하다. 촛불항쟁을 줄기차게 이어가는 것이 바로 지금의 핵심 관건이다. 다른 문제들은 좀 사치스런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강경론과 온건론이 팽팽하다던데, 광우병 정국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고 또 그 입론에 따라 실천의 형태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리고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챙길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서둘러 숟가락 드는 것 같다. 그런 논의들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힘빼지 않는 것이 좋겠다. 조급하게 단판 승부하려는 것은 디지털게릴라투쟁이란 본질을 감안할 때 적절치 않게 여겨진다. 골치 아픈 문제는 각설하고....

장기 항전이 예상되는데, 달포간 이상 계속된 촛불항쟁이 메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의 화두는 오로지 촛불항쟁을 어떻게 진화시켜 갈 것인가에 있다.

물론 시민광장과 집단지성이 위의 난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나의 제안 역시 시민광장과 집단지성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고 진화될 것이라 믿으며 감히 나의 생각을 제출한다.

촛불항쟁은 대중성 자발성 비폭력성 축제성(단어가 이상하지만 대충 이해할 수 있으리라)을 겸비해야 한다. 이들은 상호간에 깊은 관련이 있고 어느 것 하나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은 여태까지 견지되어 왔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장기간 계속되고 6월 10일의 정점을 이루고 난 후 위의 4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이미 예정된 것이기도 하다.

나의 제안은 아래에서 보듯이 매우 소박한 것에 불과하다.

매번 촛불행진의 主人 主體를 달리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들이 그날의 시위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또 주인공이 된다. 가령 '몇월 몇일은 고대동문의 날'로 선포하고, 고대 동문들이 그날 촛불 시위의 주인이 되는 식이다. '고대 출신임이 창피해 죽겠다'는 식의 선정적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고대 동문들이 중심 대열을 형성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러리로 그 중심 대열을 둘러싼 형태로 대오를 형성한다. 날짜, 동원, 구호 등의 준비는 해당 주체들이 주로 담당하고 대책회의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위 방식은 4.19 당시에 교수단 데모 당시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교수단이 중심 대열을 이루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대열을 호위했던 장면에서 힌트를 받았다.

그 촛불 주체들은 무수하게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내 뇌리에는 이미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고 있다.

고대동문들이 촛불 들면 이후 수많은 대학 동문들이 경쟁적으로 촛불 들 것이다.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도 있고 초등학교 동창회도 있다. 쉽게 말하면 촛불 들고 동창회하는 거다. 법대가 촛불 들면 다른 학과도 들 것이다. 제주도 출신이 들면 다른 지역 출신도 들 것이다. 촛불 들고 향우회하는 거다.

장동건과 김태희가 개인적으로 촛불 시위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영화인들이나 탤런트들이 주인으로 설정된 날에는 비교적 부담감이 적게 촛불대열에 참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촛불 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아우성친다면 의외의 우상들을 촛불 대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조중동 지면에 광고하는 광고주들에게 영향력을 미친 바가 있지 않는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배우 가수 체육인 방송인 등등 대중적 우상들을 촛불 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양희은이 촛불을 들었듯이 가수가 주인으로 설정된 그날에는 조용필과 나훈아가 촛불을 들지도 모른다. 그날의 원조 오빠부대들도 조용필과 나훈아의 공짜 노래 들으러 촛불 들고 쇄도할 지도.... 그리고 신세대가 좋아하는 가수들(구세대인지라 그 이름들이 생각이 안남)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영희 같은 노학자가 한 손에 지팡이 짚고 다른 한 손에 촛불 들고 맨 앞장에 선 교수들의 촛불행렬을 상상해 보라. 성경을 든 목사들, 법전을 든 법조인들, 교과서를 든 교사들, 신문을 든 기자들 등등....

넓은 이마빡에 구호를 쓴 대머리들, 불룩한 배에 '임신중'이라고 써붙인 임산부들, 애견을 껴안거나 몰고 나온 애견인들, 한우를 몰고 나온 축산인들. 왼손에 깃발을 쥔 왼손잡이들, 커플티를 차려입은 동성애자들, 환자복을 입은 암환자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이명박 때문에 부끄럽다는 경주이씨들, 이명박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구별이 어려운 쌍둥이들, 노처녀 노총각들, 중학생들, 재수생들, 10대들, 방위출신들, 해병대출신들, 이문열책을 챙겨든 사람들 등등...

자전거동호회 오토바이동호회, 각종 자동차동호회원들이 주인인 날에는 촛불을 매단 수십대 수백대의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가 대열을 이룬 장관을 상상해보라.

그런데 이런 촛불시위가 실제로 가능하겠느냐고?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일상의 팍팍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촛불의 그 대의에 동의하지만 시위에 참여하기도 어렵고 또 시위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페나 동호회 등의 친목 모임을 매개로 한 시위 참여는 각 개인들에게 부담을 적게 한다.

동호회나 카페로서는 자기 존재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며, 오프라인 모임을 촛불 들고 하는 셈이다. 카페나 동호회원들은 촛불의 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그 경험을 통해 주체적 시민으로 거듭날 것이며, 나아가 곧 촛불에 중독될 것이며, 적어도 촛불 든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촛불시위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권인 촛불시위꾼의 잔치로 전락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다종다양한 보통 사람들이 촛불시위 경험을 할 수 있고 촛불 게릴라들로 나서게할 수 있는 계기들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동호회와 카페 등과 같은 모임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약간의 기획과 마당만 만들어주면 자발적 조직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는 전혀 동떨어진 동호회나 까페에서 조차 이명박을 조롱하는 말이나 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지경이 이른 것에 가끔 놀라게 된다. 대부분의 까페에서도 촛불시위 참여 경험담은 물론 참여를 독려하는 공지가 올라와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일보의 협박을 받은 82COOK 요리 모임 같은 경우에서 이를 잘 살필 수 있다. 요리 까페 아줌마들이 조선일보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고 여건은 무르익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촛불항쟁과 결합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촛불시위대를 유심히 살펴보면 동아리나 인터넷 카페 깃발을 들고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미조직된 대중들이다. 지도력의 부재와 개별적 참여는 촛불 시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도력 문제도 고민해야 하지만 특히 미조직성과 개별적 참여의 문제는 이미 조직되어 있는 다양한 차원의 대중 조직들을 촛불시위와 결합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카페와 동호회 등과 같은 대중 조직들의 대중성과 자발성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자발성을 전제해야 대중성은 제고될 것이다. 그 자발성을 존중할 때 촛불시위는 매번 풍성한 축제성(볼거리)을 창조할 것이고, 또한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이며, 촛불대열은 새로운 기운을 얻고 또한 대중적 기반은 확대될 것이며, 촛불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를 것이다.

대중성 자발성 축제성은 반드시 비폭력성을 동반해야 한다. 촛불을 드는 행위가 즐거운 것이며 결코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 촛불을 드는 것이 과거와 같이 인생과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촛불식 디지털식 게릴라식 투쟁은 어쩌면 최후의 순간에도 모험적 전면전을 택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이런 다양한 주체와 다양한 방식으로 꾸며진 촛불 퍼레이드는 이명박의 남은 임기 날들을 채우고도 날을 것이다. 그 주체들을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대단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천 몇백 일 그 모든 날들의 촛불항쟁 일정표를 이명박이 본다면 질리지 않겠는가. 대책회의나 어느 인터넷 매체가 주도하여 그 신청란을 개설하고 각 동호회나 카페 등의 신청을 받아 그 일정표를 정리하여 발표하면 될 것이다.

그 중심 대열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적게는 수십명이 중심 대열을 이룰 수 있다면 족하다. 그리고 장소가 반드시 시청광장이나 광화문 사거리일 필요도 없고 지방 혹은 각자의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어느 곳이라도 무방하다. 등산동호회라면 북한산이나 한라산 정상도 좋고, 휴가철이라면 동해안 해안가도 좋다. 북한산에서 수백 수천명이 청와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고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고,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수만명이 촛불을 들 수도 있다. 그것은 각 주체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한 날짜에 여러 주체가 설정될 수도 있고, 성화 봉송하듯이 지역별로 릴레이 촛불시위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대책회의나 지도부에서 약간의 조정이나 기획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주인 주체들이 주도하는 촛불행진은 광우병 대책회의의 하중을 덜어줄 것이다. 대책회의가 촛불항쟁의 대표성 지도성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편 버거운 하중을 감당하고 있는듯 하다. 나의 제안이 현실화된다면 대책회의는 그 하중을 좀 덜 수 있을 것이다. 대책회의는 물론 아고라와 같은 몇몇 열성 그룹과 개인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극복되어야 한다. 보다 다수가 주체인 촛불항쟁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이 지나치게 주관적 낙관에 기초한 것일까. 촛불시위 경험이 풍부한 카페 동호회가 앞서 모범을 보이고 성공 가능성이 큰 부분에서 먼저 성공적인 사례를 제시한다면 그다지 비현실적인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랄한 구호들과 신선한 촛불시위 모습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이미 경험했지 않은가?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위대한 촛불의 역사를 이미 창조하지 않았던가?

너무나 간단한 제안이지만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설명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제안에 동의하는 이들은 이 글을 곳곳에 퍼날라주고, 또 보다 구체화되고 진전된 제안들을 제출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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