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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몰려오는 삼각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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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몰려오는 삼각파도

[다산 칼럼]<24>

일본 극우정권의 재등장

지난해 연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시작된 지구촌의 정권교체 행사들이 12월 19일 한국 대선을 끝으로 일단 마무리되었다. 프랑스, 멕시코, 이집트 같은 나라들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된 것도 세계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나름의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래도 미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등장한 것은 당연히 우리 현실에 중대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복귀한 것이나 타이완에서 마잉주 총통이 재선된 것도 동아시아 정치지형의 변화에서 무시하지 못할 변수일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선거 결과, 즉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백중지세의 싸움 끝에 적잖은 차이로 승리한 사실이다.

미국·중국의 정치변화 못지않게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곳은 일본이다.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불과 한 달여 전에 갑작스레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여 12월 16일 총선에 돌입했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자민당의 압승, 민주당의 대패로 나타났다. 고이즈미에 이어 잠시 집권했던 극우 성향 아베 신조의 새 내각이 바로 어제 출범했다. 1885년 내각책임제가 실시된 이후 일본 총리대신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3개월 정도라 하는데, 최근 20여년 동안에도 이름을 익힐 만하면 바뀌기를 거듭해, 아마 일본인 자신들도 누가 현임 총리고 누가 전임총리인지 헷갈릴 것 같다. 독특한 개성과 파격적인 행보로 일본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던 고이즈미가 유일한 예외일 텐데, 그 고이즈미의 5년 5개월도 이젠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혼란 중에도 어떤 일관된 흐름이 있음을 간취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보호와 지도 아래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이른바 '55년 체제'의 점진적 붕괴라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자민당의 일방적 장기집권과 중간급 반대정당으로서의 사회당의 보조적 역할로 특징지어진 안정적 정당체제(소위 1.5당 체제)가 1990년 이후 종말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당·정파들 간의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가운데 1996년 진보적 내지 리버럴을 자칭하는 다양한 그룹들의 연합체로서 민주당이 탄생하고, 2009년 9월 그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하여 역사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은 바로 '55년 체제'의 붕괴과정에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출범했던 민주당 정권은 하토야마 유키오(2009.9.16 ~2010.6.8), 간 나오토(2010.6.8~2011.9.2), 노다 요시히코(2011.9.2~2012.12.26)로 이어지는 정치적 지리멸렬 끝에 몰락하고 아베의 자민당에 대승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자민당 집권체제의 붕괴라는 대세는 역전되는 것인가. 일본 정치의 이런 혼란스런 변전 내부에 감추어진 지속적 논리는 무엇이고, 그것은 동아시아 내지 한국의 현실변화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이런 관심을 가지고 먼저 손에 든 책은 최근 번역된 테라시마 지쯔로오(寺島實郞)의『세계를 아는 힘』(김항 옮김, 창비 2012)이다. 다음에는 그 책과 일면 상통하는 바 있으면서도 외부자의 더욱 비판적 관점을 보여주는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의『종속국가 일본』(이기호·황정아 옮김, 창비 2008)을 잠깐 살펴보려고 한다.

친미입아(親美入亞)의 실험

『세계를 아는 힘』의 저자는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고도성장기에 거대상사의 외국주재원으로 오래 근무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 상사의 전략연구소 회장, 대학 학장, 재단법인 회장을 겸하면서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한 활동적인 인물이다. "경영기획과 정보분석이라는 일을 하면서 산(産)·관(官)·학(學) 사이의 앎의 네트워크 속에서 마지널 맨(경계인)으로서의 의지를 나선형으로 확충시켜왔다"(p.184)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듯이 그의 지식과 관점은 철저히 경험적이고 실용주의적이다. '지식의 프레임으로 보는 일본의 세계전략'이라는 책의 부제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이론적 저술로 알기 쉽지만, 읽어보면 실은 이 책은 긴장할 필요 없이 대할 수 있는 수필집 같은 저서이다.

저자 테라시마가 보기에 전후 대다수 일본인들은 일종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인은 종전후 오직 미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세계를 바라보는 데 길들여져왔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나라와 지역을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과 접촉하는 동안 자신의 세계관이 '전후라는 특수한 시공간'(p.20)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령, 러시아의 쌍뜨뻬쩨르부르그 대학에 갔을 때 그 대학 일본어학과의 모체인 일본어학교가 1705년에 설립된 사실을 알고 대경실색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러일관계는 미일관계보다 역사적으로 깊고 긴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p.37) 즉, 일본의 근대가 페리의 흑선 내항으로 시작되었다는 인식은 전후에 만들어진 편향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 일본인의 몸속에는 중국 등 아시아·유라시아를 기원으로 하는 2천수백년에 걸친 역사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한편, 1945년부터 시작된 전후는 겨우 60년에 지나지 않는다. 2천수백년을 하루로 환산하면 60년 따위는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60년 남짓한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의 몸속에 축적된 방대한 역사시간을 망각할 정도로 과도하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다.(p.47)


한편 테라시마는 세상을 연관성의 관점에서, 즉 네트워크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권한다. 가령, 그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후진타오 주석이 공로자들을 표창하는 자리에서 "중화민족의 역사적 성과"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에 의문을 가진다. 왜 "중국 인민의 노력"이라든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성과"라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그는 후 주석의 표현에 이중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1912년 쑨원(孫文)의 '오족공화'(한족·만주족·몽골족·위구르족·티베트족의 합심협력)를 상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이완·홍콩·싱가포르 등지에 사는 여러 중국인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그는 오늘날 우리의 세계인식과 지식구조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며, 그런 전환이 지식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산업의 영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했던 대규모 집중형 문명체계에서 분산형 네트워크 사회로의 전환"(p.106)이다.

그가 보기에 1990년 전후 냉전의 해체와 소련의 붕괴는 사회주의의 존립근거를 무너트렸고, 21세기 들어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는 '미국 일극지배'의 만능시대를 끝장냈다. "미국 자신이 '체인지'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라 불린 시장원리주의와 결별하려 하고 있다."(p.119) 그런데도 일본은 냉전 이후의 이런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거의 20년 동안표류를 거듭하면서 사고정지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테라시마가『세계를 아는 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 제시되는데, 그는 고이즈미식 구조개혁과 시장주의·경쟁주의를 벗어나야 하며, 그와 더불어 미군이 일본에 주둔해 있는 것과 같은 냉전시대적 상황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안정을 위한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와 한반도로부터 하와이와 괌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동아시아 안정을 위한 긴급파견군을 유지하는 구상을 일본이 미국에 제안하고 거기에 필요한 경비를 일본이 응당히 부담하는 등, 새로운 안전보장체제를 꾀하는 방향도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139~140)

이것은 우리 한반도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제안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에게 전후체제의 청산을 뜻하는 것일 뿐더러 한반도에 있어서도 냉전체제의 극복을 위한 결정적 한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의 소유자인 테라시마가 반미주의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일군사동맹의 유지를 찬성한다. 다만 그는 위의 인용문에 제시된 바와 같이 새로운 세계상황에 맞는 유연한 발상의 안전보장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정책의 방향을 그는 '친미입아(親美入亞)'라는 슬로건으로 요약하는데, 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고립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아시아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p.141)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커다란 방향전환이 바로 '민주당정권 탄생이 의미하는 바'(p.119)라고 그는 설명한다. 민주당 내각의 첫 총리 하토야마를 자신의 친구라고 부른 데서 짐작되듯이,『세계를 아는 힘』을 저술하게 된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민주당의 정치철학과 정책방향을 대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일본의 정치적 자기분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을 넘어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애초에는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공정사회' '시장과 복지의 양립' '사회개혁과 분권사회' 등의 구호가 서민들에게 어필했을 뿐더러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미국의 과도한 압력에서 얼마쯤 벗어날 수 있을 듯한 가능성도 엿보였다. 특히 중국이 크게 부상하는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여 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정립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21세기 일본의 국가적 진로에 획기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들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책목표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실제의 정책수행에서 민주당 정부는 무능과 미숙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말만 앞세운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외교였을 것이다. 이 경우 아시아란 구체적으로는 중국을 가리키는데, 일본이 '동맹국' 미국과 미국의 '잠재적 적국'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자처한다는 발상은 미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의 처리에서 보여준 불투명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는 때맞춰 발생한 한국에서의 천안함 사건(2010.3.26)과 연결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하토야마를 강하게 압박할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어떻든 민주당 정권의 몰락과정을 통해 새삼 입증된 것은 일본국가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미국은 여전히 부동의 거부권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이 미국에 얼마나 종속적인 국가인가 하는 점을 극히 신랄하고 냉소적으로 묘사한 책이 매코맥 교수의『종속국가 일본』이다.

이 책의 영어판 원본이 출간된 것은 2007년이고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되는 것은 2008년인데, 그 이태 사이에 일본에서는 두 명의 총리가 새로 취임하고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코맥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책의 머리말을 시작하는데, 그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정치적 위기의 근본원인이 "전후 형성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혼란"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의 일본인 정체성은 미 군정기에 미 정부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오늘날 일본인의 내면을 지배하는 정치적 자의식은 일본에 대한 미국 전후정책의 치밀한 계획적 산물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설적 상황이 나타난다.

첫째,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셔널리스트'라고 자칭하는 반면, 미국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비(非)일본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보수적'이라는 단어가 헌법개정을 포함하여 전후 일본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전후 형성된 일본의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진보주의 혹은 급진좌파로 분류되고 있다.(p.4~5)

일본에서의 이런 이념적 전도(顚倒)현상은 '평화헌법' '자위대' 등과 관련된 몇 가지 특수한 사안을 제외하면 한국현실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코맥은 전후 일본과 한국의 국가형성 과정과 형성의 조건이 똑같이 '미국과의 관계 맺기'에서 이루어졌고 그 조건에 아직 본질적 변화가 없다는 점은 같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치열한 민주주의 혁명이 전개되어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반면 일본에서는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여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을 넘어설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연 일본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 민주개혁 정권의 등장은 적어도 이 책이 출간된 2007년의 시점에서는 가망 없는 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의 정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약진이 가시화될수록 이 책의 주된 분석대상인 고이즈미 정권에서처럼 모순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양태를 드러낸다.


중국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남한에서 성숙하고 역동적인 시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사태에 직면하여 고이즈미 정권의 일본은 모순적이며 심지어 분열증적인 전략을 추구했다. (고이즈미가 이따금씩 평양을 방문한 데서 보이듯) 어느 순간에는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적 제도에 토대를 둔 지역공동체 건설에 참여할 듯하다가도, 결정적으로 미국이라는 군사화된 세계제국에 의존하는 종속적 대리인 노릇을 하는 식이었다. 고이즈미는 매년 야스쿠니를 방문하여 아시아의 이웃들을 격분시키고 이라크와 다른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협력하는가 하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개인적인 정치임무로 받아들이고 공동체로서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p.169)

그러나 이 종잡을 수 없는 정치적 자기분열은 고이즈미 개인의 병리적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 절정기를 지난 서구문명과 회복기에 접어든 아시아문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치약소국이자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아시아 공동체의 꿈

오늘날 일본과 한국(한반도)은 향후 국가진로의 모색에 있어 본질적으로 동일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양국은 근대전환의 경로가 달랐고, 따라서 오늘의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지난 100년, 150년 동안 공히 부국강병 노선을 추구해온 점에서- 성패를 떠나-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노선 자체의 정당성과 유효성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도 확실하다. 일찍이 근대 초기에 일본인들이 설정했던 탈아입구(脫亞入毆)라는 목표 가운데 '아'와 '구'의 역사적 비대칭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그 '아'와 '구'를 포함한 지구현실 전체가 이제 팽창의 한계에 다다랐음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생존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찾아볼 시점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한편, 냉전의 종결은 동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소련은 해체되었으므로 논외로 하고) 유일패권국 미국의 영향력 바깥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정당하며 협력적인 질서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종속국가 일본』, p.196)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에서도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중국·일본·한국 및 북한과 타이완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역적 협력조직 필요성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였다. 그는 1990년 7월 동아일보사와 아사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서울의 한 심포지엄에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가 평화적으로 상호협력하며 살 수 있는 공생의 형태"로서 소련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유럽 공동의 집'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후 와다 교수와 그의 학문적 동료 강상중(姜尙中) 교수는 그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각각『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 이원덕 옮김, 일조각 2004)과『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2)를 간행하였다. 그중 가령, 강상중 교수는 일본 중의원 제151회 헌법조사회(2001.3.22)에 출석하여 발표와 토론을 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저서에 전재하였다. 그의 발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들은 강 교수가 테라시마의 '친미입아' 슬로건을 벌써 여러 해 전에 선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는 현재 일본 국민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친밀감과 동시에 반발심 또한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이 미일관계를 반석처럼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어떻게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참으로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반자관계를 구축해갈 것인지가 21세기 일본의 진로에서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p.33)

이제 일본이 처음으로, 싫든 좋든 한국과 일본의 동반자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한반도 전체와 일본의 동반자관계를 통해 미일관계의 왜곡을 조금씩 바로잡아가는 다극적인 관계로 축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워싱턴과 월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미일 안보체제를 기축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와 다극적인 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21세기 일본의 요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같은 책, p.46)

그러고 보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도 발상의 뿌리에 있어서는 '친미입아'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터인데, 각국 정부들의 미숙한 대응은 미국의 압박을 돌파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국내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도 실패함으로써 오늘과 같은 거대한 반동의 시대를 열고 말았다.

그런데 매코맥 교수는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 개념이 해결해야 할 현실적 모순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종속국가 일본』, p.197~199) 첫째, 표면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순은 일본 내셔널리즘과 중국 내셔널리즘의 대립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의 지역적 정체성과 전지구적 패권국가로서의 미국 사이에 있는 모순이다. 세 번째는 "아마도 가장 감지하기 힘든 것으로, 일본의 국가정체성 의식에 배어 있는 고전적 모순"이다. 즉, 일본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신을 어떤 국가로 규정할 것인가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이 모두 깊은 고뇌와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국가적·세계사적 과제라 하겠다.

2012년 말에 나타난 한·중·일(및 북한) 3국(4국)의 정치적 선택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조차 희화적으로 느껴질 만큼 퇴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초의 발설자인 와다 교수부터 강상중, ·매코맥 교수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 저서에서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건설과 정착에 있어 한국(한반도)의 역할이 중심적이고 결정적임을 입을 모아 강조한 바 있는데, 그 출발은 다름아닌 남북한 간의 교류와 화해이다. 그런가 하면 남북한 화해구조의 성립에는 미·중의 우호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양대 국가로부터의 협력만 가능해진다면 2013년의 현안 즉 아베 정권의 경거망동을 제어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길을 열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의 모든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유일한 당사자가 한국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라는 점이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 포럼(www.edasan.org)> 12월 2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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