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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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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순신은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CEO"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4/28] 원광대 사학과 나종우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의 명장이자 구국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지 4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동안 문학과 경영학 분야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성웅에서 직장인과 기업인들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고요 경상남도에서는 거북선 탐사작업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이순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이순신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원장인 원광대 사학과 나종우 교수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서 연전연승을 올린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순신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원광대 사학과 나종우 교수입니다. 나종우 교수는 1948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75년 전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92년 단국대에서 한국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1년부터 원광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원광대 박물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일관계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문화관광체육부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과 전라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이순신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먼데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에요. 여기저기서 행사가 많을 것 같은데요

나종우 : 네. 요즘 지방자치가 되면서부터 이순신의 출생은 서울 아니에요? 그 다음 아산에서 자라셨고 경남에서 활동하셨고. 어느 곳에서든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고 있죠. 좋은 일이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지난 23일부터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서울에선 23일부터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인현동 명보극장 인근에서 기념축제를 시작해서.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명보극장 부근에서 국군 의장대나 군악대, 농악대, 사물놀이, 학생 천여 명의 퍼레이드가 있었죠. 또 현충사에서도 25일부터 47회 이순신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오늘은 그 기념다례 같은 게 열렸습니다 오전에.

박인규 : 교수님께서 활동하시는 이순신 연구회란 데서도 어떤 행사가 있습니까?

나종우 : 연구회에서는 이미 지난주 세미나가 열렸고, 오늘은 또 단체로 현충사에 참배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박인규 : 이순신 연구회라는 데가 올해 창립됐다고 들었는데요, 나종우 교수님께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프레시안

나종우 :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은 처음엔 한일관계 중에서도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되느냐, 저희들 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식민사관이 남아있던 시대니까 거기서부터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을 역사 속에서 누구를 찾아야 될 것인가, 이런 걸 찾다 보면 물론 수없이 많은 분들이 있지만 이순신 장군만큼 공선사후, 여기서 말하는 공은 국가도 될 수 있고 민족, 동포도 될 수 있겠죠. 나를 희생하고 그런 것을 앞세운 인물이 참 드물다. 그런 관점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죠.

박인규 : 공선사후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최근에 보면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비롯해서 이순신 장군을 새롭게 조명하는 여러 가지 작품이나 글들이 나오면서 이순신현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군의 리더십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나종우 : 오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순신 장군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CEO라고 표현합니다. 왜냐면 그는 임명장 달랑 한 장 가지고 어느 곳이든 현지에 부임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한 인물이거든요. 함선을 제조한다거나 병사들을 모으는 일, 또는 별시무과를 열어서 장수를 기르고 염전을 만들어서 화약을 만들거나 군자금을 모았죠. 어떻게 보자면 그의 자립과 개척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또 다른 면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병사의 수도 적었고 함선의 수도 적었고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적었어요. 그런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연전연승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것은 충무공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보면, 오늘날 이 사회, 경영, 이런 것은 전쟁 이상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회현상들이. 그러하고 있는 현재 기업경영자들에게는 벤치마크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지기 때문에, 옛날 속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는 법고창신이랄까요, 그런 관점에서 이순신에 대한 부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지금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CEO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전투만 하신 게 아니라 배도 스스로 만들고 병사들도 모집하고 심지어 농사까지 지으면서 모든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결했다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국내 경영학계나 기업계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배워보자는 움직임들이 있나요?

나종우 : 상당히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 기업체에서, 특히 우리가 오늘날 조선강국이 된 것도 결국 이순신 때 만들어진 잘 알려진 일화들 있지 않습니까? 설득을 할 때... 또 현대인들에게는 왜 이순신 장군이 부각되느냐 하면 이순신 장군의 발상전환적 사고가 현대 경영을 하는 분들에게 많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명량해전 당시 13척의 배로 300척 넘는 배들을 물리쳤지 않습니까? 이런 것은 사람들은 모두 그런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순신 장군께서는 한 차원 높게 생각했고 그렇게 한 차원 높게 생각함으로써 비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고. 그의 이런 발상은 어디서 나왔느냐. 결국 배에 대한 정확한 지식, 정세, 이런 걸 꿰뚫어보는 안목도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오늘날 기업도 정세라든가 미래지향적 안목이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그런 것. 그러니까 다시 얘기하자면 발상전환적 사고, 또는 도전정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 없는 용기. 이런 창조정신이 오늘날 기업 하는 모든 분들 또는 학생들로부터 우리 국민에게 다 필요한 정신이라고 보는 거겠죠.

박인규 : 이순신 장군이 지금 말씀하신 명량해전은 물론 한산도대첩 등을 비롯해서 23번을 싸워서 다 이겼어요. 그 승리의 가장 큰 비결은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나종우 : 예를 들자면 그런 것들을 정신력이라고 하는 건 우스운 이야기라고 봐요. 비슷한 상황에서 정신력이 앞서는 거고 과학적으로 본다면 정보력이 경쟁력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겠죠. 이순신 장군이 손실 없이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는 수집 가능한 정보를 충분히 취합해서 전투에 임했다는 겁니다. 그때 그 수적 열세, 모든 것들이 한 번만 실수해도 돌이킬 수없는 패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주 치밀한, 예를 들면 적이 보유한 전투력이라든가 적의 동태, 또는 전투지역에 대한 사전답사, 해류와 기후변화, 또 발생 가능한 만일의 사태에 대한 시나리오 준비들 모든 것들이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박인규 : 광범위한 정보력과 치밀한 준비

나종우 : 네. 거기 한 가지 덧붙여서 이순신은 기술력이 곧 경쟁력이다. 이런 것을 직시했다는 거죠. 예를 들면 함선이라든가 거북선. 거북선 같은 경우도 그 당시 나대영이란 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돼 오던 함선, 태종 때 한 번 더 만들고 이때 와서 적은 배로써 많은 적의 배들을 맞이하기 위해선 그걸 고치는 기술력. 또 하나 더 그런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만 우리가 생각하지만 이 배에 탑재한 포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 포를 만드는 화포장이라고 하는데요, 화포장, 또는 화살을 만드는 전장이라고 합니다. 또는 활을 만드는 궁장, 오늘날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를 스스로 양성하고 육성했다는 거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요즘 정치하시는 분들도 명량해전 나가기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신 상유십이...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일각에선 배가 겨우 열두 척밖에 안 남게 만든 것도 문제다. 이순신 장군이 희생적으로 해서 영웅적인 노력으로 이기긴 했지만 이순신 장군을 둘러싼 선조라든가 말하자면 조정의 태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런 지적도 있는 것 같아요

나종우 : 그렇습니다. 그 시대는 당정도 아주 치열한 시대 아닙니까. 국익보도 당리당략이라는 것. 오늘날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이 있죠. 그런 속에서 모함을 당했지만 의연하게 내가 갈 길은 그런 것에 휘말리는 게 아니라 후대의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충무공에겐 있었지 않느냐, 그런 관점에서 또 우리가 높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최근에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쓴 난중일기 중에서 발표되지 않은 부분...32일치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던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나종우 : 그렇죠. 30일분이라는 건 32일분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지금까지 난중일기는 이순신 친필인 난중일기 초본이 있었고 1795년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충무공전서 목판본이 있는데 이 두 가지에 다 없는 것이 이번에 새로 찾아낸 32일치 난중일기죠. 주로 여기는 1595년 을미년 기사 가운데 29일분과 1597년 하루분, 1598년 2일분, 이렇게 해서 32일분인데 주로 개인적 기록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이 맏아들 혼인 올리는 날이니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자 인간적인 면이죠. 또는 내일이 부친의 생신인데 슬픔과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라든가. 어떻게 보자면 조정 입장이나 후대의 편찬자들 입장에선 이런 게 사사롭게 보일 수 있어요. 또 하나는 원균에 대한 좋지 않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저럴 수가 있는가, 나라가 이 모양인데 장수 된 자가 저런 전략이나 저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되겠는가. 그런 비판들이 들어가게 되면... 나중에 정조임금이 그 뒤에 탕평책도 쓰고 그런 분들 아닙니까?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감으로써 또 하나의 분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빼지 않았었나 생각이 됩니다.

박인규 : 권율 장군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말씀하셨다던데요?

▲ ⓒ프레시안

나종우 :
그렇죠.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에 따라서는 이순신 장군은 자기만이 독보적인 존재냐. 원균도 누구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고. 또 권율 장군은 후대 인물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는 인물이 사사로운 일에 매달린 사람인가, 아니면 국가라는 개념인가. 우리가 지금 높게 생각해야 될 것은 그 시대는 봉건시대라고 흔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라는 국토가 아니라 왕토라는 말입니다. 왕의 나라고 백성은 민의... 신하된 백성, 신민의 시대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이순신의 생각은 이 땅은 전부 우리의 땅이다. 국토적 개념을 갖고 있었던 위대한 인물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예를 들어 명나라나 일본과 삼각관계에서 화해문제가 생겼다거나 그럴 때에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할 때 이 땅이 우리 땅이 아닌 곳이 없는데 우리들은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이냐. 그의 관념은 이 땅은 모두가 우리의 땅이다. 임금의 땅이 아닌 여기 살고 있는 민초들의 땅이다라는.... 그러니 임금이 의주에서 압록강을 넘으려고 할 때도 이미 넘어버리면 우리 땅이 아니다. 그런 관념들 그런 관점에서 이순신에 대한 재조명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박인규 : 이번에 발견된 난중일기의 새로운 내용들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상당히 고립됐고 힘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각에선 마지막 전쟁, 노량전투에서 전사하실 때 자살한 게 아니냐. 어차피 살아남아도 예를 들면 당시 선조로부터 미움과 의심을 받았으니. 심지어는 죽은 게 아니라 은둔을 했다, 여러 가지 음모론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나종우 : 상당히 재밌는 얘긴데 역사에서는 가정을 할 수 없거든요. 그게 다른 학문과의 차이 아니겠어요? 예를 들자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낮아질 수 없는 거잖아요. 또 사자는 말이 없어요. 이순신을 불러다가 얘기할 수도 없고. 중요한 것은 장수가 사느냐 죽느냐를 따져서 내가 어디서 죽어야겠다, 이런 걸 따지고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는 이야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적의 유탄을 맞았다고 봐야지, 말하자면 내가 지금 살아봤자 또 모함을 당하고 더 치욕을 당할 바에야 근사하게 끝나는 이 시점에서 죽어야겠다. 이건 후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일 뿐이지

박인규 : 있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자

나종우 :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박인규 : 이순신 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크게 부각시킨 건 사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거죠. 일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다 보니까 정통성에 문제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부각시켰다고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도 계신데. 그런 저런 걸 떠나서 이순신 장군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학자로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우리 역사상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나종우 : 절묘하게 그게 맞아 떨어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구심점을 어디다 둬야 되고 누구를 해야 되느냐라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동북공정 문제가 나오면 광개토왕이란 분이 나오고, 또 우리가 해양강국으로 나갈 땐 장보고라는 인물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 또는 우리 국민들의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을 누구한테 찾느냐. 그 사표를 누구한테 찾느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개인... 사사로운 일이냐 그렇지 않았느냐.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은 그 시대에 자기가 출세할 수 있는 길도 있었지 않습니까? 유성용과의 관계라든가 한음선생, 이런 분들의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백성과 국가를 위해서 나아갔단 말입니다. 이만큼 사사로운 정을 떨치고 나간 분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 때 그가 부각된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 논리로 이순신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전국 학교마다 다 섰죠. 또 광화문에 있는 동상 가지고도 어떻게 이순신 장군이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있냐, 그가 패장이냐 왼손잡이냐 갑옷이 무릎 밑에까지 나왔는데 무거운 옷 입고 어떻게 싸우냐. 이순신 장군이 육군이냐 말 달리냐 배 위에서,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사실은 그런 것 하지 말고 그의 일생, 생애 전반적인 걸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또 어쩌면 우리 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갖고 있는 특성이나 장점 중에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요즘 같은 전 세계적 경제전쟁 시대에는 CEO로서의 이순신 장군이 부각되는 거 아닌가 싶네요.

나종우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작년부터 경상남도에서 이순신 프로젝트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한산도에 거점을 두시고 주로 경남에서 활약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경남에서 이순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건 어떤 내용입니까?

나종우 : 이순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박정희 대통령이라든가 또는 교과서의 국가적인 프로젝트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이번에 경남에서 하는 프로젝트는 물론 경남도가 주축이 되고 있지만 일반 민이 참여하고 가능한 한 온 국민이 이순신 정신이라는 것으로. 지금 국제화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을 한 번 터득해 보자는 논리가 됐겠죠. 다시 이야기하자면 이순신과 거북선이라는 것은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고 거북선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죠. 이러한 것들이 함축된 임진왜란 전승의 발자취를 찾아가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되살리는 역할을 한 번 해보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원래의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자. 이순신 장군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거북선인데요. 거북선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에 이순신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거북선을 바다에서 건져올려 보자는 게 추진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탐사작업이 시작된 겁니까?

나종우 : 거북선 탐사작업은 1973년도 당시 문화재 관리국에서 이충무공해저유물발굴조사단을 만들어서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거제시 칠천도 해안을 비롯한 몇 군데를 국한적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 1989년 이후에는 해군에서도 몇 차례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대로 그리 성공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수중조사 발굴 시도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우선 탐사대상지역 위치가 불명확했다는 거죠. 또 하나는 대상지역에 대한 충분한 해양학적 조사경험이나 축적된 자료가 부족했다. 또는 장비가 노후됐고 탐사현장 실정과도 맞지 않는 것이 요인이다. 다시 얘기하자면 전체적인 탐사나 발굴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급했던 거죠

박인규 : 이순신 장군이 준비하듯이 충분하게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일각에서는 말이죠. 거북선은 목선이고 규모가 크지 않아서 아마 격침됐으면 됐지 침몰은 안 됐을 것이다. 원형대로 찾기 쉽겠느냐, 부질없는 일 아니냐는 지적도 하시는 것 같아요

나종우 : 그런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죠. 그런데 목선, 나무로 만든 배의 물리적 성질은 나무 재질에 따라서 침몰 함수율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나무가, 흑단목은 바로 가라앉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배를 만드는 나무의 재질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장단은 있느나 물리적 특성상 반드시 침몰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것이나 군산 앞바다에서 나오는 배들이 전부 목선이지 철선 아니지 않습니까. 격파 후 혹시 화재 등에 의해서 상단부가 없어졌다면 수면 하부 선체는 침몰할 수 있는 함수율 이상에 도달했으므로 바로 침몰하게 된다는 겁니다.

박인규 : 최소한 아랫부분은 남아있을 거다

나종우 : 그렇죠. 또 하나는 인양 가능성이 수치적으로 몇 퍼센트 되는데 그걸 인양하려고 하느냐, 부질없는 일 아니냐고 하는데 물론 수치적으로 몇 퍼센트가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런 작업이 가공적으로 허구적인 작업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순신과 거북선이 민족정기와 자존심을 찾는 일이라면 아무리 적은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건 시도돼야 한다. 예를 들면 거기서 거북선이 아니고 그 당시 생활용구 또는 남의 적선, 또는 무기류, 어느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잃어버린 역사의 파편을 건져올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발굴할 때 파편을 모아서 붙여서 하나의 원형을 만들어내듯이 그런 작업의 일환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갈수록 국제적인 경제전쟁이라고 할까요, 국제적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런 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이순신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 될지. 혹시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종우 :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 국한시키지 말고 국민 전체가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가 사표로 삼아야 할 인물로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또 그에 대한 리더십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느 분야에서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정치적 논리로서 이순신을 부각시키거나 또는 폄하하지 말고 그의 정신 그 자체를 민족의 정기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박인규 : 지금이라도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나 활약상을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나종우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이순신 장군 탄신 364주년을 맞아 경상남도 이순신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원장인 원광대 사학과 나종우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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