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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진보의 이데올로기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1> 계몽사상의 재조명 ④

문명과 야만

우리는 오늘날 '문명'이라는 단어에 별 주의를 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고 만들어진 단어이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다른 지역의 문화와 구분되는 독특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문명'이라는 말에 대한 그런 애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요즈음에도 즐겨 쓰는 '프랑스 문명'이라는 말은 거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지난번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양 '문명'이 이라크의 '야만'을 벌주겠다는 이야기이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 부시가 사용하는 어법에서의 문명과 야만의 2분법은 서양 사람들에게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는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법은 유럽인의 해외팽창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아메리카나 다른 지역에서 많은 다른 종족들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에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정부나 계급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의 문화수준이 매우 떨어져 보였으므로 그들을 야만인으로 부른 것이다.

문명은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156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정한 정치형태를 갖고 있고, 예술이나 문학에서 어느 수준에 이르고,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보이는 관습이나 도덕을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했다.

그것은 16세기 이후에 씌어진 많은 대중적인 여행기들의 영향도 받았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비유럽 지역 사람들의 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풍습들을 과장적으로 그린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유럽문화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이런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유럽이 최고의 문명 단계에 있고 다른 지역의 사회들은 그 수준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다 야만적인 상태에 있었다. 물론 그 기준은 각 문화에서 이성의 힘이 얼마나 작용하는가의 문제였다.

이때 야만인의 무지는 날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환경의 탓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너무 풍족한 자연환경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게 하여 정신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나쁜 기후나 아시아에서와 같이 전제적인 정부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렇게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전적으로 환경의 탓으로 인간성의 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람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다 똑같으므로 계몽되고 교화되기만 하면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문명과 야만을 보편적 인간성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리상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 원리가 현실화할 때에는 매우 달랐다.

역사의 진보

계몽시대에는 역사관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물론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은 역사를 도덕교육이나, 정치에서의 교훈을 위한 지침 정도로 생각했으므로 과거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또 역사는 주로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볼테르 같은 사람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우연적인 것이므로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역사가 반드시 아름답다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믿지도 않았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 화재 같은 참화나 범죄, 불운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어떤 일정한 변화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계절의 변화와 같은 순환이었다. 한 왕조가 탄생, 성장, 멸망하고 뒤를 이어 다른 왕조가 같은 길을 밟는 것은 그런 순환의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 1666년의 런던 대화재. 런던시의 5분의 4를 태워버린 런던 대화재 같은 사 건은 당시대인에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리는 역사의 불가측성을 잘 보여주 었다.

18세기 말에 와서 이런 태도가 달라졌다. 유럽사회에서 갑자기 기술이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며 인간의 삶이 이전 시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영국의 애덤 퍼거슨, 프랑스의 튀르고나 콩도르세 같은 사람들이 그 선구자이다.

퍼거슨과 튀르고는 인류가 사냥과 채취사회에서, 목축, 농업, 상업사회로 단계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유럽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 상업사회였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야 예술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아직 어떤 법칙에 따른 발전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콩도르세에 오면 달라진다. 그는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적 스케치를 위한 초안>이라는 글에서 인간 정신은 감각에서 오는 정보를 무한히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지식을 무한하게 축적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에 관한 한 인간은 진보하며 개인과 함께 사회도 진보한다고 믿었다.
▲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초상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믿었고 그것은 자연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엄격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제 역사는 설명되고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진보의 관념이 보다 확실해지고 그것이 진보사관이라는 하나의 역사관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산업화에 따라 물질적인 진보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고 이제 인간사회는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곳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의 이러한 진보는 비유럽사회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19세기에 들어와 아시아 정체성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이유이다.

보편사로서의 유럽사

18세기의 유럽인들에게는 문명과 진보를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 유럽이었으므로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유럽의 역사는 유럽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비유럽지역의 역사는 주변화, 파편화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한 것이 헤겔이다.

이렇게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한 진보의 운동이라는 생각은 모든 문화적 단위가 그 나름의 문화적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생각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과 사회의 문화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사에 대한 이런 주장은 비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헤겔은 '세계정신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그런 민족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권리에 비해 다른 민족의 정신은 아무 권리도 갖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이런 생각이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계몽사상의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은 당대에 이미 나타났다. 독일 철학자 헤르더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문명'에 대한 반대말은 '야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라고 생각했다. 어떤 문화도 다 고유의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헤르더 (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 초상

그는 '우리의 철학을 특징짓는 일반화의 열기가 다른 사람들이나 나라, 시민이나 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은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계몽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원주민들의 '진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럽 문화를 강제하며 식민주의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도 계몽사상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또 인간성이 역사, 지리, 기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도 반대했다. 모든 사람들의 집단은 살아있는 문화적 공동체로서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계몽사상이 다른 문화에 대해 보이는 억압성에 대해 정당한 경고이다. 그럼에도 그의 비판은 대다수의 계몽사상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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