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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 정부는 실용정부였다

[진단] 이명박 정부 어디로 가나 <상>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다.

이에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대선 이후 3개월 남짓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이론적으로 검토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근 교수는 세 편의 글을 통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각종 정책과 행태를 비교·분석함으로써 현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의 허상을 파헤쳤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과도한 실용노선으로 인해 지지기반의 이반을 가져와 몰락한 반면, 현 정부는 겉으로만 실용을 내세울 뿐,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그 어떤 정부보다 강한 이념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

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일까? 중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 다닐 때까지 '국가 공인 정답'은 바로 공산주의였다. 한참 배워가던 시절, 그 어느 것에도 확신을 못하고 자신이 없었던 학생 시절에는 의아해 하면서도 왜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인지에 감히 따져보고 다른 생각을 가지려 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권위주의 독재가 아닌가 의심하긴 했지만 다들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소위 비판의식, 의심을 갖는 사고에 대한 훈련이 없었던 탓이었다. 너무나 오랜 기간 '정답'의 학교교육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좀 더 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접하게 됐는데, 당시 민주화 이론을 말하는 그 누구도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민주화를 논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모두 권위주의, 혹은 관료권위주의,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가는 길을 연구하고 이론화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시일이 지난 후 냉전이 종식되자 역시 서구의 학자들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민주화라는 용어 대신 '체제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처럼 공산주의(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던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알았던 정답은 오답인 것이었다.

너무 뻔한 진실이지만, 용어의 사용과 그에 대한 '정답화'는 매우 정치적인 의도를 그 뒤에 감추고 있다. 예를 들어 냉전기간 동안 언론과 주류 담론에서는 '공산세력'과 '민주세력' 간의 대치를 얘기했고, 공산세력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는 그 국가가 실제 민주주의 국가건 권위주의 독재 국가건 자연히 모두 민주세력으로 분류되는 마술을 우리는 보았다. 군사독재의 시절 대한민국은 그리하여 민주세력으로 분류되곤 하였다.

필자는 한동안 수많은 서구의 민주국가에서, 그리고 일본에서도 공산당이라는 정당이 존재하고, 때로는 사회주의 성향을 띤 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곤 했다. '정답'을 말하는 세뇌교육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따지는' 교육을 안 받고 정답을 알려주는 교육을 받아왔다. 제도권의 정규 교육뿐만이 아니라 소위 '운동권'의 '학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답을 모르거나 쉽게 이해하지 못하면 왕따를 당하는 야릇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결국 잘 몰라도, 이해가 안 되도 마냥 외우는 길을 택하는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가 가진 생각 속에서 엄밀성과 창조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지는 토론식 수업은 불편하고 정답이 전달되는 학원식 수업이 편안하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한국의 정치 및 경제 담론에서 강요된 부정확한 정답들은 무수히 많았다. 주로 정답 교육에 익숙한 소위 보수 언론과 학계에서 생산한 담론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조선과 21세기의 한국을 비교하는 것, 한국의 햇볕정책과 1930년대 영국의 채임벌린이 폈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비교하는 것, '전쟁을 준비해야 전쟁을 막는다'라는 매우 단순한 주장,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부'였다는 주장, 한미FTA를 하면 개방이고 그렇지 않으면 쇄국이라는 주장,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주장, 시대정신이 성장이라는 주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는 쉽게 와 닿을지 모르지만 따져 보면 결코 제대로 된 정답이 아니다. 비교의 방법을 모르거나, 비교와 비유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비유와 이론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특정 조건 하에 형성된 주장과 이론을 조건을 무시하고 사용하거나, 개념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들이 나왔다.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방법론상 대부분 F학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들이 언론을 통해 정답처럼 국민의 여론을 형성하고 세뇌하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 이명박과 노무현 누가 실용이고 누가 이념인가 ⓒ연합뉴스

노무현 실용주의 정부

그러한 배경을 뒤로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소위 '좌파 이념정부'인 노무현 정부와 대척점에 서서 '실용'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의해 정답화되어 있다. 실용정부라는 말 뒤에는 쓸데없이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행동으로 결과를 보여준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숨어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러한 정답화는 현 정부에 매우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번 따져 보아야 한다. 과연 노무현 정부는 이념정부였던가?

실용주의(pragmatism)라 하면 그 철학적 개념의 연원과 정의가 간단한 것이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현재 한국적 맥락을 고려해 한국의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실용주의에서부터 이야기를 하겠다.

실용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장한 이른바 '흑묘백묘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즉 원하는 목표와 결과가 있고, 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념에 상관없이 가장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용주의가 진정한 실용주의이기 위해서는 수단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경험적으로 증명된 수단의 효용만을 따져야 한다. 그래야만 원하는 목표를 위하여 이념을 뛰어 넘는 다양한 수단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떤 경우에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자유방임적인 경제정책을 쓸 수 있고, 상황이 바뀌면 전략무역,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총수요 창출 등 정부의 시장개입이 채택될 수도 있어야 실용정부이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 북유럽과 같은 복지주의, 조합주의 모델을 원용할 수도 있고, 상황이 바뀌면 영미와 같은 신자유주의 모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좌든 우든, 흑묘든 백묘든 효용이 검증되었고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과 같은 길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미국과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어야 실용적이다. (단순히 힘센 쪽에 붙어서 힘센 쪽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면 가장 실용적인 한국 정부는 미국의 52번째 주 정도로 편입하는 정책을 쓰는 정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부를 실용정부라고 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상대적으로 분배를 강조하고, 과거 기득권 세력을 역사 바로세우기 이념으로 공격하고 또 북한에 대하여 퍼주기를 한 것 등으로 인식되어 (좌파)이념정부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무현 정부는 이념정부이기보다는 오히려 실용정부라고 불리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노무현 정부가 다분히 개혁 지향적이고, 과거보다는 좀 더 사회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며, 또 주류세력을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하려고 한 점에서는 개혁세력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정책의 내용을 보면 좌파이기보다는 우파의 내용이 매우 많이 들어간 우파 실용정부에 가깝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부터 국민소득 2만불 달성이라는 성장지향적인 국가목표를 세웠고,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법인세 인하, 특소세 인하, 재벌규제 완화 등을 허용했다. 임기 말에는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였다.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한 것을 보면 노무현 정부 자신이 스스로를 흑묘든 백묘든 가리지 않는 실용정부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경제문제뿐만이 아니라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진보적인 이념에 매달리기보다는 실용적인 대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해법이 미국과 다를 때에는 미국과 각을 세웠지만,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미군기지 재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에서는 미국의 요청을 거의 완벽하게 들어 주었다. 해외파병도 지지기반의 이반을 감수하면서 미국의 요청을 들어준 셈이다. 반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나 미사일 방어(MD)의 문제는 끝까지 거부하는 고집도 보여주었는데, 이는 친미냐 반미냐의 이념을 넘어서 실용적으로 대미관계를 풀어나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다른 문제다)

국내정치도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시도하기도 하고, 내각에 삼성 인맥의 장관과 신자유주의 철학의 재경부 관료를 앉히기도 하였다. 출발은 호남에 기반을 둔 정권이었지만 핵심 요직의 상당수가 부산 경남의 인사로 채워진 것도 어찌 보면 매우 실용주의적인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목표를 위해 이념과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유연하게 수단을 활용한 것이라고 본다면 노무현 정부는 실용주의 정부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무현 정부가 너무 실용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결국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실용적인 활용은 지지기반인 서민에 대해 참담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며 정권을 마치게 했다. 정권 말 노무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은 여론을 주도하는 보수 언론의 힘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지나친 실용성을 반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실용주의 정부가 주류 언론과 보수학계에서 좌파이념정부로 규정되는 것은 아마도 한국만의 기현상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공산당이 존재하고 사회당이 집권하는 유럽, 사회복지의 수준과 국민의 조세부담율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북유럽적인 정부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들 정부는 좌파이념정부가 아니라 아마도 원색적인 빨갱이 정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 유럽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들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만 보지 말고 유럽도 공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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