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어떤 이들은 '정보의 바다'라는 낯익은 수사를 떠올리고, 어떤 이들은 편리한 생활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쌍방향 미디어라 하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약속된 비즈니스의 장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참여와 자유의 열린 공간이라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온갖 유혹과 일탈이 난무하는 혼돈의 공간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터넷은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얼굴로 다가와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세계의 한 단면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치 "장님 코끼리 더듬는다"는 속담처럼 말이죠. 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은 지금도 계속 자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계가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으며, 이것이 다시 인터넷 바깥의 오프라인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이슈,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란 거대한 코끼리를 여기저기 더듬는 우리의 행로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물론 이제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 안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새로운 이슈와 변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과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오랜 세월 익숙해져 있고 당연시해 왔던 것들이 인터넷이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면서 요동치는 일들도 점점 늘어갑니다. 이것들은 때로는 인터넷 문화와 충돌하기도 하며, 때로는 예기치 못했던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과의 결별을 강요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민경배의 사이버 리뷰"는 이렇게 인터넷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이버문화 현상 그리고 온라인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의 접점이 빚어낸 사회 이슈들을 차근차근 진단해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때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터넷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구석구석을 조명하고, 또 때로는 참여하는 네티즌의 일원이 되어 개방과 공유 그리고 자유가 충만한 사이버 공간을 만들기 위한 모색을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들과의 소통이야말로 이 작업에 가장 큰 기쁨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필자>
사이버 범죄의 특사경 수사권 타당한가?
며칠 전 법무부에서 법률개정안 하나를 국회에 제출했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법률은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특별사법경찰관' 제도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보통 특사경이란 약칭으로 불리는 특별사법경찰관이란 법률로 지정한 특정 분야에서 행정공무원이 수사권 등을 포함한 사법경찰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제도이다.
이미 195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특사경은 주로 대민 접촉이 많은 분야에서 발생하는 위법행위를 다룬다. 일선 공무원들이 즉각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함으로써 생활범죄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이다. 특사경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소방공무원들이 관할구역 내의 소방시설 설치나 안전관리에 대한 단속을 하는 일, 세관공무원들이 공항이나 항만에서 밀수품 단속을 하는 일, 산림청 공무원들이 불법적인 벌목이나 수렵 행위를 단속하는 일 등이 모두 특사경의 활동이다.
이번에 제출된 법률개정안은 특사경의 활동 영역을 새로 추가하거나 기존 직무 범위를 보다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법률개정안을 보면 정보통신부가 사이버 범죄 관련 특사경 운영 권한을 갖는 내용이 들어있다. 정보통신부 소속 공무원이 개인정보 침해와 불법 스팸에 관한 단속권 및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통신부는 지금 인수위에서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가 된다면 새 정부의 다른 부처가 이 역할을 대신 맡게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사이버 범죄가 날로 증가되고 있는 마당에 이에 대한 수사권을 확대하는 것은 타당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간단히 넘길 사안은 아니다.
첫째, 행정기관이 과도하게 사법권까지 행사할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이 아니어도 이미 정통부는 많은 준사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인터넷 음란물이나 명예훼손 관련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폐쇄 명령권을 갖고 있었으며,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 단속권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정통부가 이러한 준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많은 논란과 반발을 낳았다.
한 미술교사가 전혀 야하지 않은 자신의 누드 사진을 게재한 홈페이지가 음란 사이트라며 정통부로부터 폐쇄 명령을 받아야 했고, 성적 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역시 같은 이유로 강제 폐쇄 조치 당했다. 또한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명목으로 진행된 정통부 공무원들의 대대적인 컴퓨터 압수 수색이 인권 침해 문제를 야기했던 적도 있었다.
이같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사이버 범죄에 대한 행정기관의 수사권 행사 역시 우려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실 정통부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4년에도 한 차례 거론된 바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청의 반대 의견이 있었고, 여러 시민단체들도 행정기관의 권력 집중화 문제를 들어 강력히 반발함에 따라 무산되었던 사안이다. 지금이라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된 것이 아닌데 새삼 이 일을 다시 추진하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둘째, 과연 사이버 범죄라는 것이 특사경의 활동 대상으로 타당한 영역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특사경 제도는 한결같이 그 활동 범위를 소속 관할 구역이나 특정한 공간 내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범죄는 특정한 물리적 공간 내로 한정시킬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누군가 어느 웹사이트의 회원 정보를 빼내거나 스팸 메일을 발송할 때 특정한 관할 구역 내로 한정해서 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 범죄의 행동 반경은 전국에 걸쳐 있으며, 때론 국경을 넘어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사이버 범죄를 경찰이 아닌 행정기관이 담당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혹시 특사경의 관할 구역을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공간으로 설정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특사경을 무슨 인터폴 같은 국제기구로 운영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행정기관이 사이버 범죄에 대한 수사를 감당하려 나설 때, 과연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도 검토해봐야 할 문제이다. 특사경이란 것이 이미 1956년부터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매우 저조한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공무원에게 특사경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 업무 이외에 덤으로 부가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정보 침해나 불법 스팸을 단속하고 수사하는 일은 특사경 권한을 가진 공무원들이 팔뚝에 완장 차고 목에 호각 걸고 관할지역 순찰 도는 것과는 차원이 아주 다르다. 고도의 장비와 숙련된 전문 인력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막대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사경 활동만 전담하는 별도의 인력을 두고, 이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예산과 훈련을 제공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기존 경찰 조직 이외에 또 하나의 경찰 조직을 구성하는 셈이며, 따라서 경찰청과의 중복 투자 문제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특사경의 기본 취지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는 특사경의 사이버 범죄 수사권 부여가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정권 교체기를 틈타 슬그머니 처리되려 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인수위는 이 사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사이버 범죄는 특정 관할 구역, 특정 집단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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