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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주체의 와해가 대선패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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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치주체의 와해가 대선패배 불렀다

[창비주간논평] 정치주체의 자기쇄신 시급하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거의 50%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2위 정동영 후보와의 격차를 감안하면 압도적인 승리이다. 여당 후보가 이러한 표차로 패배한 것은 한국정치사에서도, 외국의 예에서도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물론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명박 후보의 승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여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의 참패이다. 이번 선거는 63%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보임에 따라 이명박 후보의 총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겨우 30%에 머물러 역대 최저를 기록한 사실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여당 후보의 참패라는 선거결과는 결국 이번 대선이 노무현정부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말해준다. 언론보도에서 '응징' '징벌' '심판' 등 이를 묘사하기 위한 갖가지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표차보다 의미가 있는 대비는 당내 경선과정에서 형성된 각당 후보 지지표의 조직구조에 있다. 민노당도 포함해서 통합신당, 민주당 등 여권 후보는 모두 조직표를 장악한 인물이 선출되었다.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한나라당에서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른 것은 한나라당만이 유일하게 역동적이었음을 입증한다. 위장으로 점철된 이명박 후보의 비리는 물론이고 이회창 후보의 출마라는 보수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외연을 확장한 것은 이러한 표의 구조가 작동한 결과이다. 문국현 후보가 진보진영에 등장했지만 처음부터 여당 바깥에 둥지를 틀었고 단일화 거부로 정당정치와의 접맥을 회피한 데다 이러한 여권 내부의 내향적 조직구조 때문에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역동적이었던 한나라당
  
  이번 선거의 결과 이명박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지난 2005년 지방선거 이후의 표심과 일치한다. 국민들은 이후의 보궐선거에서도 거의 같은 투표성향을 보여 몇차례나 적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왜 2005년부터 잇단 선거에서 적신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던 것일까?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만큼 구조적 차원에서 정치주체 전반에 문제가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많은 전문가나 학자들이 지적하듯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에 이르기까지 시장만능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 자영업자의 침체와 몰락, 비정규직의 증가 등 서민생활의 어려움에 제대로 인식·대처하지 못했다. 민생정치모임이 만들어지고 한미FTA 반대흐름이 조성되기는 했으나 당내 소수파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심각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원인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왜 대처하지 못했는가를 정치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 국회 내 진보개혁세력 구축의 실패
  
  우선 거론해야 할 정치주체는 청와대, 내각 등 정부를 구성한 세력이 있으며, 여기에 여당을 형성한 국회의원들, 이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보좌관, 참모진, 당료 등 직업적 정치인 범주를 들 수 있다. 노무현정부하에서 유급화한 지방의원들을 포함하면 이들의 외연은 더욱 확장할 수 있다. 여기서 노무현정부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는 정권 재창출의 모태가 되었던 김대중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정부는 호남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데다 충남에 기반을 가진 김종필 구세력과의 연합정부였다. 청와대, 내각을 비롯하여 정부를 구성한 인적 자원은 일정한 진보개혁적 성격을 지녔다고 해도 지역적으로 협소화된 층이었고, 이것마저도 구세력과 분점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호남 출신 관료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권력의 구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잇점은 있었으나, 그만큼 시민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재를 충원할 필요성은 절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료제 내부에 정치적 임용의 폭을 넓혀 상당한 인원을 투입해야 했으나, 기존의 호남 관료 인맥에 의존하는 데 그친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지역편중인사가 결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관료제 내부에서 인사의 공정성을 훼손한 폐해는 그 잇점을 훨씬 넘어설 만큼 극심했다.
  
  김대중정부하의 여당인 민주당 자체도 지역주의에 보스중심 체질이란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과감하게 당내경선제를 도입할 만한 역동성은 유지함으로써 기득권화한 주류파의 대표격인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소수파인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선거 막판 정몽준 의원의 단일화 철회선언으로 단독정부란 행운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는 출범초부터 소수파로서 인적 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광범한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지닌 개혁진보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김대중정부가 지닌 청와대와 내각 구성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관료의존적 성격을 더욱 강화했다. 이른바 '씨스템 인사'를 표방했으나, 이는 주류 관료층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메커니즘이어서 그나마 지역주의적으로 권력의 구심력은 유지하고 있던 김대중정부에 비하면 훨씬 취약한 상황이 되었다. 노무현정부는 탄핵사태 같은 위기를 거치며 몇차례 인적 쇄신의 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출범 당시 참여했던 기존 인물들이나 관료들을 기용하는 '회전문식 돌려막기 인사'로 일관했다.
  
  노무현정부하의 여당은 기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진보개혁세력 구축을 지향했다. 하지만 2005년 국회의원선거는 막판까지 참패가 예상되던 상황에서 진보개혁 지지층의 대표성을 갖춘 제대로 된 공천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정체성 및 역량에 대한 인물 검증씨스템을 운영하지 못한 데다 처음으로 도입된 지역경선제도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능력있는 정치신인의 진출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비록 전근대적 보스정당에서 근대적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과도기적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잡탕식 공천'이었다는 비판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역풍으로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는 대승으로 끝났고, 이는 정부 출범 이래 진행 중이던 노무현정부의 실정에 면죄부를 주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게 되었다. 더욱이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잡다한 성향의 의원구성으로 당내 통합이 어려웠으며, 그 한계는 일련의 개혁입법 실패로 드러났다.
  
  신진 직업정치인들의 민심 이반
  
  다음으로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광범한 보좌진 및 당료 들을 거론해야 한다. 다수가 과거 학생, 재야 등 민주화운동의 경력을 지닌 이들은 입법과정에서 일정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도 있고 적지 않은 보수를 지급받으면서 한국사회에서 괜찮은 직업이 되었다. 더욱이 정권교체시에는 청와대의 비서관이나 행정관, 공기업·정부투자기관·산하단체의 이사·감사·사장, 정부 산하 위원회의 실무자 등 부분적인 권력이나 고액연봉까지 누릴 수 있는 위치가 보장되었다. 나아가 지난 총선에서 예기치 않은 탄핵돌풍으로 당료나 보좌관에 머물던 386 정치신인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실제 어느 대선캠프를 가보아도 조직과 자금, 정책을 관장하는 주요 참모직은 이들이 맡고 있으며, 이들 직업정치인 집단을 제쳐놓고 한국정치의 현실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이들이 일정한 국정경험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겉핧기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 특히 청와대에서 이들 정치엘리뜨는 실력 부족에다가 직업관료제의 제도적 벽을 뚫지 못하고 관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공기업이나 준민간쎅터에서 일정한 직위를 확보한 사람들도 다수는 시장이란 세계에 직면하면서 이를 제어할 만한 식견이나 경험을 갖추지 못했고 결국 시장에 포섭되어버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면서 중소상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지지층과 유리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어정쩡한 대응이나 농업폐기나 다름없는 농민층과의 괴리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 통합신당으로 정당재편이 진행되며 과거 보스정당 시대에는 유착관계를 통해서나마 유지되던 직능단체와의 연계도 상실되고 말았다. 분당 이전의 민주당은 지역주의의 굴절된 통로이긴 했으나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안테나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이러한 정당 자체의 문제에다가 당정분리 원칙이란 명목으로 노무현정부가 정당정치를 철저히 외면한 것도 정당의 민심파악 능력을 약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열성적인 당원집단 형성의 실패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당원집단이란 범주이다. 김대중정부 이래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은 일정하게 바람이 작용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측면이 있다. 지난 김대중정부의 정권교체에는 비록 지역주의적 폐해가 있긴 했지만 호남향우회란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지역차별주의에 한이 맺힌 집단이자 광주항쟁이란 민주적 전통의 맥락을 잇고 있기도 하다. 당시에 그들은 가치적으로 민주와 평화 지향적이고, 무엇보다도 DJ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이 어느 집단보다 강했다. 물론 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의 정치주역이 되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그 폐해도 심각한 것이었다.
  
  한편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는 노사모와 네티즌,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의 역동적 진출이 있었고, 수도권의 30~40대 개혁지지층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 집단은 개혁당으로 결집하며 민주적 정치문화와 생활정치의 싹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노령화가 진행중인 데다 보스중심 정치문화란 부정성도 지닌 호남향우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주체, 세대의 형성이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내에서 개혁당 그룹은 이른바 '노빠'(노무현 오빠부대) '유빠'(유시민 오빠부대) 세력으로 개인화하며 결과적으로 여당내 헤게모니 투쟁의 수단이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정치주체로서의 당원집단 형성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고, 거꾸로 기존 집단마저 파편화되어갔다. 이번 대선에서는 문국현 후보가 그 싹을 보여주긴 했으나 일부 지식인들과의 결합 수준에 머물렀다. 오히려 새로운 당원집단을 형성한 것은 보수세력이며, 이는 뉴라이트세력이 한나라당과 결합하면서 가시화되었다.
  
  정치주체의 자기쇄신이 시급하다
  
  이러한 세 범주의 정치주체가 지닌 한계에는 기득권화한 정부 및 당내 사정 못지않게 과거 여권 당원집단의 모체가 되었던 자영업자, 중소상인들의 몰락, 중소기업의 침체 등 서민경제의 파탄, 지지층의 피폐가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을 가릴 것 없는 지역경제 침체는 여권세력의 정치적 토대를 잠식하여 지역정치는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부동산정책 실패가 지방 균형발전정책과 맞물리면서 지방 건설업자, 토호들의 자산가치를 수십배 늘려주며 전통적 지지층의 경제적 박탈감을 거의 절망적 수준으로 키워놓는 역설적인 결과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정부하에서 지방 시민운동 차원에서 제기된 환경문제는 백전백패인 실정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전국의 지방의회를 거의 싹쓸이한 상황이 지역정치의 주체들을 더욱 무력화하고 있다.
  
  처참한 사태에 직면한 여권 앞에는 내년 4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지도부 쇄신, 정당재편에서 정계개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대응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여권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닐 것이다. 우선 수도권, 호남, 충청의 지역기반, 개혁적 시민 등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지지층을 복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지난 10년, 향후 10년을 포함하여 한국사회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에 입각한 노선의 재정립, 이에 토대를 둔 지지층의 재구성 및 결집, 정치주체의 자기쇄신 및 새로운 구축이란 중장기적 과제 해결을 지향해야 한다. 내년 총선은 이러한 과정에서 거쳐야 할 하나의 중간 지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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