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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신페론주의' 꿈꾸는 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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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신페론주의' 꿈꾸는 여장부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83> 아르헨티나 대선 현장 (3)

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진 2007년 아르헨티나 대선이 당초 예상대로 현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집권여당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제48대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는 오는 12월 10일 남편으로부터 대권을 인수받아 2011년까지 아르헨티나를 이끌어 가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언론들은 아르헨 대선을 여성대통령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현지분위기는 진정한 신페론주의의 부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 환호하는 키르츠네르 부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크리스티나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던 순간인 지난 28일 저녁 여당의 대선 본부 주변에 모인 지지지들은 에비타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페론에게 영광"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른바 '21세기 형 신페론주의'의 부활을 원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페론주의에 심취되어 정치를 시작한 크리스티나 당선자는 남편은 물론 자신까지도 페론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을 잡아 페론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나 당선자는 페론주의라는 기본틀 안에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통치모델을 선보일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티나는 당선이 확정된 후 현지 언론들과의 첫 대면에서 국정의 제일목표를 "독일형 산업국가 건설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지난 1940년대 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후안 도밍고 페론이 독일의 기술을 무작위적으로 받아들여 자동차, 의학, 첨단무기산업과 우주정복산업 등에 주력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당선자는 내수시장에 주력했던 페론 정권과는 달리 수출시장 확보와 해외투자 유치에 전력할 것이라고 사족을 달았다. 페론주의의 이상은 추구하겠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순응하겠다는 것이다.

실용주의에 가까운 크리스티나의 이같은 국정목표가 알려지자 사회 각계각층에서 요구사항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기업인들은 아르헨티나가 1차 산업에 안주하지 않고 공업국가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크리스티나의 의지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신정부 정책 입안 과정에서 기업인들의 입장을 대폭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반해 노조는 노조대로 페론주의의 이상에 맞게 노동자들의 권익향상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 대표들은 우선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 20%에서 최고 40%까지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지 기업들은 대폭적인 임금 인상은 인플레의 요인이 될 것이라며 10%대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아르헨 최대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실업자연맹은 극빈자들과 실업가정의 정부보조금을 대폭적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고 에비타 형 복지국가를 다시 건설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집권여당 상하 양원 장악 강력한 통치력 발휘할 듯

이처럼 상반된 요구와 입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의 대통령으로서의 변신은 별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집권여당은 이번 대선을 통해 대권은 물론 정치권을 장악했다는 것을 최대의 수확으로 꼽고 있다.

의회는 상하 양원제를 택하고 있지만 의회활동의 지속성을 위해 매2년마다 선거를 통해 절반씩 의원들을 물갈이하고 있다. 이른바 중간선거 제도다.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진 양원의 중간선거에서 여당은 양원을 거의 싹쓸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257석의 하원에서 153명의 의원을 거느려 과반수를 확보했고, 72석 정원의 상원에서는 44명의 의원을 여당소속으로 채웠다. 명실 공히 여대야소 정국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중심제를 선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권력이 까사로사다(대령령궁)로 집중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빈부간의 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 노동자들과 기업들과의 해묵은 대립관계, 주류와 비주류로 양분된 페론당의 봉합, 물렁한 법 집행으로 인한 사회불안 요소 등은 크리스티나 당선자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크리스티나 당선자도 이런 고민을 의식한 듯 대통령 당선인사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단결을 강조하고 "계층간 앙금이나 증오를 해소하자"고 호소했다.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무기로 아르헨 정계의 여장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크리스티나 당선자가 남편을 능가하는 통치력을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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