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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부시-차베스 사이서 '양다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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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부시-차베스 사이서 '양다리 외교'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59> 남미은행 창설과 브라질의 외교

중남미 금융권의 독립을 목표로 추진되는 남미은행(Bancosur 혹은 Bansur)이 6월 말 창립을 선언하고 2008년부터 본격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동한 중남미 7개국(칠레는 옵서버로 참석) 경제장관들은 남미은행 창설과 운영에 관한 정관을 매듭지었다. 이 정관은 이달 말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개최되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의 논의를 거처 최종적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미국과 남미를 사이에 둔 애매모호한 양다리 외교를 펼쳐 중남미 관료들은 물론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최근까지 남미은행 창설에 비관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룰라 정부가 일단 참여를 결정하긴 했지만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있는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 남미은행의 운영방법과 내규를 협의한 중남미 6개국 경제장관들. ⓒ아르헨티나 경제부

우선 남미은행의 지분금에 대해 룰라는 소액출자만을 고집하고 있다. 나아가 회원국 전체가 동일한 지분금으로 동일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룰라 정부는 남미은행의 지분금을 3억에서 5억 달러로 해 각국이 동일하게 출자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은행 창설을 방해하는 억지주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 위원회는 남미은행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200억 달러 수준의 자본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40억 달러를 출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필요하다면 추가 지원도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현재 외환보유고가 400억 달러를 넘고 있어 35억~40억 달러 수준의 지분 참여는 무리가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브라질 정부도 이 정도 금액수준만 유지해준다면 창립자금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브라질 정부가 3억~5억 달러 이상은 출자할 수가 없으며 다른 회원국들도 똑 같은 지분으로 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 약소국가들이 브라질의 주장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콰도르는 1억에서 8000만 달러 정도를 준비할 수 있다고 밝힌 반면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1억 달러 수준의 지분도 현재로서는 버거운 형편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브라질 정부의 주장대로 6개국이 동일한 지분금으로 참여를 해야 한다면 10억 달러도 안 되는 자금으로 서방금융기관을 대체하는 은행을 설립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판을 깨자는 주장인 것이다.

남미은행 창설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남미은행은 최소한 70억 달러 수준의 창설기금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그 자본금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코레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약속한 외환보유고 10%선 출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다. 결국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의 지분규모와는 상관없이 남미은행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지분만으로도 이미 창설에 필요한 70억 달러 상당의 자본금이 확보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브라질은 은행 운영에 관한 권리행사를 문제삼고 나왔다. 그렇다면 지분금액에 상관없이 동일한 투표권을 행사하자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남미은행 운영수칙 초안에는 지분금에 따라 각국이 차별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관련기사 : "초읽기에 들어간 남미기금과 남미은행 창설" )

브라질 정부의 의견을 접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주저 없이 양보 안을 내놨다. 참여지분금액에 관계없이 각국이 동일하게 1국 1표의 권리를 행사하자고 한 것이다. 어차피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에콰도르가 베네수엘라의 의견에 표를 던질 거라는 자신감에서였다. 엎어 치나 메치나 결국 주도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쥘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인심이나 쓰자는 것이다.

남미은행에 대한 룰라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와 코레아 대통령이 브라질 끌어안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남미에서 브라질이라는 대국이 가진 대외적인 상징성 때문이다.

중남미의 그만그만한 나라들끼리 은행을 만들어 서방금융기관을 대항한다는 의미보다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3국 주도로 금융기관을 공동 운영한다는 대외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어떤 식으로든 브라질의 참여는 그만큼 대외적인 지명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깔고 있다는 말이다.

'남미은행 창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하지만 차베스의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룰라 정부가 이렇게 남미은행 창설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은 자국 경제계의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브라질 재계는 정치노선과는 상관없이 신자유주의를 택해 왔으며 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국과 밀착돼 왔었다. 따라서 보수 정치계와 경제계, 언론들이 차베스 주도의 중남미 통합과 남미은행 창설을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룰라 역시 이런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정치적인 딜레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룰라가 중도좌파라는 명분을 앞세워 우파적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현재 브라질이 베네수엘라와의 관계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오로지 천연가스뿐이다. 베네수엘라 가스를 확보해 볼리비아에 치중되어 불안했던 가스공급라인을 안정시키기 위해 마지못해 차베스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룰라가 차베스와 접근하고 있는 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외교전략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룰라가 중남미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미국과 손잡고 에탄올 프로젝트에 올인하면서 차베스를 자극하고, 천연가스 확보차원에서 차베스와의 공조를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는 이중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이런 태도와는 상관없이 이제 남미은행 창설은 어쨌거나 현실로 다가왔다. 어떤 방식으로든 곧 창립될 거라는 얘기다.

아르헨 현지의 경제전문가들은 차베스가 룰라의 입장을 고려해 각국이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한다는 명분을 살려줄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각국이 동일한 지분과 권리를 행사하는 은행이라는 명분을 세워주고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남미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을 확보해 대주주로서의 역할만 하겠다는 극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듯 남미은행 참여회원국(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들은 이 은행의 본점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 두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볼리비아의 라파스에 두 곳의 지점을 운영한다는 데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유럽은 물론 미국과 중남미 금융통이자 경제학자 출신인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차베스와 함께 추진하는 중남미 금융시장 독립과 경제통합의 꿈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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