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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TV는 베네수엘라에 들어온 트로이 목마"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55> RCTV 사태와 '언론권력'

중남미 언론계가 시끄럽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자신과 악연을 가진 보수우익 언론재벌의 공중파 사용 면허갱신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독재자의 횡포냐 아니면 언론권력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냐를 놓고도 논란이 뜨겁다.

RCTV의 입장은 이미 외신 등을 타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입장은 한국 등 해외에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차베스가 내린 면허갱신 불허라는 극약처방의 그 내막을 짚어보자.

베네수엘라 공중파를 장악하고 8년 가까이 '차베스 정권 타도'에 앞장서 왔던 RCTV(베네수엘라 채널2)가 28일부터 공중파 언론매체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전파사용 면허 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베네수엘라 민간방송사업은 국가통신위원회의 감시를 받으며 매 20년마다 전파사용 면허기간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RCTV사의 로고 ⓒ프레시안

이 규정에 따라 RCTV측은 차베스 정부를 향해 20년간 면허기간 연장을 다시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차베스는 이를 거절했다. 언론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지난 25일 RCTV의 전파 발송에 관한 설비 일체를 정부가 접수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RCTV의 폐쇄가 헌법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중남미권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재벌언론매체들 중에서는 차베스의 이번 결정을 언론탄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스페인어권 언론들의 상당수는 차베스의 이번 조치를 베네수엘라 법률에 의거한 공권력의 고유권한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RCTV가 중남미 대륙 언론권력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관련기사 : "차베스, '정치적 언론' 숙청 나섰다""차베스와 언론, 누가 누구를 탄압하나" )

RCTV는 베네수엘라 정부 위에 군림

역사적으로 RCTV는 베네수엘라 최고통치자들 위에 군림해 왔다. 이 방송사는 차베스 집권 이전에도 몇 차례나 방송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1976년과 1980년, 1981년, 1984년, 1989년, 1991년 등 6차례나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공중파 사용이 금지된 전력이 있었다. 언론의 반정부활동 자체가 문제는 아니겠지만, RCTV는 막강한 지지세력들과 로비를 통해 매번 정부의 결정을 백지화시켰다. 베네수엘라 공권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력과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로비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RCTV 임원들은 각종 로비와 지지자들을 동원한 물리적인 시위 등으로 차베스를 압박해 면허갱신 불허 의지를 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RCTV의 마르셀 그라니어 사장은 베네수엘라 내 우익계 인사들과 자사 임직원들을 동원해 언론자유를 강한 톤으로 외쳤다. 또한 그는 평소 안면을 익힌 국제 언론기관들을 통해 차베스의 결정은 언론탄압이라는 국제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차베스를 압박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로비의 대표적인 예는 세계적인 컨설팅과 로비 전문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를 움직인 것이었다. 현지 언론인 에밀리오 게레로에 따르면 RCTV는 맥킨지에 10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지불하고 미국은 물론 유럽과 세계 각국 정치권과 언론사들을 움직여 3개월간 차베스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달라고 의뢰했다.

RCTV의 의도대로 국제적인 반(反)차베스 바람은 거셌다. 미국 정계와 언론, 유럽과 중남미 일부 언론들로부터 집중타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차베스는 362쪽에 달하는 RCTV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이들이 그동안 누린 경제적인 호황의 자세한 내막과 권력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언론매체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나 애국심이 전혀 없는 이적단체였기 때문에 부득불 면허 갱신을 취소했다는 해명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 보고서를 접한 베네수엘라의 친(親)차베스계 언론들은 차베스의 이번 결정을 두고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보낸 '트로이 목마'를 불태웠을 뿐"이라고 논평했다. RCTV는 언론매체의 외피를 쓰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제국주의 이념을 홍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라는 성안으로 들어온 트로이 목마였다는 얘기다.

이들은 RCTV 임직원들이 수시로 미 국무부가 주관하는 언론인 교육프로그램에 연수라는 명목으로 미국을 들락거렸던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 내에서 미국의 정책과 문화 등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 방법을 교육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난 25일 베네수엘라 대법원으로부터 자사 방송국 폐쇄 판결을 접한 RCTV의 실질적인 소유주 마르셀 그라니어 사장은 "차베스 대통령이 방송연장 문제를 조정해줄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현한 뒤 "베네수엘라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을 통해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이어 "이제 차베스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면서 "사실상 우리는 독재 체제 아래 살고 있다"고 말해 자사 방송면허의 취소를 현실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 (왼쪽) TVes 사장으로 임명된 릴리 로드리게스가 방송 일정을 밝히고 있다. ⓒ베네수엘라 ABN뉴스 (오른쪽) RCTV를 대신할 베네수엘라 사회 텔레비전(TVes)의 출범을 알리는 정부광고 ⓒ베네수엘라 정부

베네수엘라 정부는 27일 RCTV를 인수할 임직원들을 임명하고 28일 새벽부터 '베네수엘라 사회TV(TVes)'라는 이름으로 첫 방송을 송출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이제 반차베스계 언론매체였던 RCTV의 자리를 친차베스계인 '베네수엘라 사회 텔레비전'이 맡게 된 것이다. 국영화된 베네수엘라 사회TV는 교육, 문화, 오락 등의 프로그램을 편성해 차베스가 추진하고 있는 '볼리바리안 혁명운동' 홍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8년 동안 보수적인 언론매체들로부터 갖은 박해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던 차베스가 이제 실질적으로 베네수엘라 언론을 완전하게 장악한 형국이다. 자신의 노선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이른바 '언론권력'을 몰아낸 차베스가 베네수엘라판 트로이전쟁의 승리자로서 진정한 혁명을 이끌어낼지가 관심사다.

다른 한편으로는 RCTV사장 그라니어가 지적했던 것처럼 언론까지 장악한 차베스가 권력에 맛을 들여 독재자로 변신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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