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낮 12시 18분, 문산역을 출발한 경의선 열차가 도라산역을 지나 군사분계선(MDL)에 다다르자 열차 안에서는 반세기 만의 비무장지대 통과를 축하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사적인 순간에 노래라도 불러야 하지 않겠냐"는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의 즉석 제안에 남측 내빈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소절이 흘러가자 북측 내빈들의 입에서도 노래자락이 따라 나왔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아예 열차 내에 비치돼 있던 소형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권호웅 북한 내각참사도 함께 일어났다.
꼬리를 물고 계속되던 노래는 "이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통일부 김기혁 남북기반협력팀장의 말에 박수와 함께 끝이 났다.
○… 고은 "돌아가면 감격스러운 날 노래하는 시 짓겠다"
북녘 땅을 향해가는 경의선 안에서 시인 고은 씨는 "꿈이 실현되는 첫 출발"이라며 감격에 겨운 미소를 띄었다. "돌아가면 오늘 같은 감격스러운 날을 노래하는 시를 지을 것"이라 다짐하기도 했다.
고 씨의 맞은 편 자리에는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인 박용길 통일맞이 명예이사장이 앉아 감격을 함께 나눴다. 고 씨가 "열차가 민통선 구간에 들어왔어요. 남쪽 마지막 구간이에요"고 알려주자 박 이사장은 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권호웅 "94년 NPT 탈퇴때, 리영희 선생 글 인상에 남아"
경의선 7435 열차를 타고 문산역∼개성역 간 27.3㎞를 달려 개성에 도착한 남북인사 150명은 자남산 여관에서 북측이 베푼 오찬을 함께 나눴다.
오찬 도중 북측 단장인 권호웅 북한 내각참사는 남측 대표단 중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테이블로 다가와 백로술을 권했다.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상황이 복잡할 때 리 선생이 민족적인 선의의 글을 쓰신 것을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리 교수 같은 지조 있는 분이 늙지 않아야 하는데 남측 잡지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을 봤습니다. 붓을 놓으면 안 됩니다. 말로 해서라도 후손들에게 남겨야 합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리 교수는 "20~30년 길러낸 후배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 내 건강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술을 받았다.
○…명계남 "나는 '바다이야기' 이후 죽은 사람"…취재진 피해
통일운동과는 연관성이 불분명하면서도 노사모 대표 출신으로 이번 열차시험운행 탑승자 명단에 포함돼 '코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원칙과 상식 대표인 명계남 씨도 이날 예정대로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에 참가했다.
명 씨는 이날 동해선 열차시험운행 행사장인 북측 금강산역으로 향하기 전 남측 출입사무소(CIQ)에서 취재진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 기자들이 접근해 "최근 친노 인사로 탑승자 명단에 포함돼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 이후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계속해서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행사에 참여한 취지를 묻는 질문에도, 열차시험운행 소감에 대해서도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뒤이어 그는 "나는 바다이야기 대표로 온 사람이다. 나는 바다이야기 이후 죽은 사람이다"라며 취재진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탤런트 고은아 "외할아버지 한 풀었어요"
"북한에서 태어나신 외할아버지는 끝내 북녘 땅을 못 밟고 돌아가셨는데 외할아버지의 한을 제가 풀어드리는 것 같아요."
경의선에 탑승한 유일한 연예인인 탤런트 고은아 씨는 "외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북한에 가보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 못 가셔서인지 가족들이 내가 북한에 간다니까 난리였다"며 북녘 땅이 고향인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감회에 젖었다.
고 씨는 작년부터 통일부 홍보에 참여하고 있는 인연으로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고 씨는 "젊은 세대들은 갈수록 통일에 대해 무관심해지는데 저를 통해 제 또래들이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북에도 더 많은 사랑을 줬으면 좋겠다"면서 "통일부 홍보에도 더욱 많은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 한준기 옹
"아휴, 역사(驛舍)가 이렇게 달라졌네.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경의선을 타고 북한 개성역에 내린 한준기 옹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개성역전을 둘러봤다. 한 옹은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31일 마지막 경의선 열차를 몰았던 기관사였다.
한 옹은 "과거에 있었던 역 주변 건물은 하나도 없다"며 "목조건물이던 개성역도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의 손을 잡고 "참,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너무 감격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옹은 "전쟁통에 열차를 몰고 북한에서 내려올 때 선로변에 즐비했던 피난민들의 시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며 "당시 피난민들이 열차 지붕까지 올라갔다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는 그런 동족상잔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측으로 돌아오기 위해 개성역을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한 옹은 "어릴 적 최초의 기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결국 최후의 기관사가 되고 말았다"며 혼잣말처럼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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