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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 그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43> 이들 없는 아랍 현대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

이전 칼럼에서 나는 시인이자 사상가인 '후세인 바르구티'에 대해 썼다. 팔레스타인 지성계를 뒤바꿔놓은 장본인. 그러나 그의 업적 뒤에는 많은 창조적인 인물들이 이루어놓은 배경이 있었다. 임종의 침상에서 그는 자기에 대한 다큐멘터리 '후세인 바르구티와 보낸 마지막 7분'을 찍고 있는 영화감독 '수비 주바이디'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마흐무드 다르위시, 파이루즈, 지아드 라하바니, 셰이크 이맘 같은 사람들이 사는 땅에 태어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우리도 그처럼 운이 좋고, 그와 함께 한동안 지내기까지 했으나 그보다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식민화에 저항하여 자유와 존엄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악마의 화신처럼 매도당한 사람들과 그 문화에 대해, 나는 여기 쓰고자 한다.

내가 이들을 '발군의 예술가들'이라고 표현한다 해서, 아랍 현대 예술계에 이들밖에 없었고 다른 예술가들은 한 일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이 완성되도록 도운 연대가 있었으며, 이들 또한 그 연대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각 시대 예술 현상의 봉우리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이들이 일반 대중을 감동시켰으며, 시대 예술 정신의 정수를 그들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맘 이사이
▲ 이맘 이사이ⓒ 카파 판니

'셰이크1) 이맘'으로 알려졌으며 1995년에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집트 맹인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대중적이면서도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본인은 사회주의자이자 좌파였지만 '셰이크'라고 불렸는데, 그가 성직자가 되려고 '알 아자르' 성원에서 공부를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예술과 인생을 바쳤다. 그의 예술은 그의 인생만큼이나 역동적이었다. 그가 성숙해가면서 그의 예술도 성숙해갔고, 더욱 깊어졌으며 광대무변해졌다.

노래를 듣는 우리로서는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일이지만, 이집트 시인 아흐마드 푸아드 니짐이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 대부분을 써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기가 이룬 것의 절반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노래했으며, 식민주의 침략에 대한 투쟁의 인간적이고도 초국가적인 면모를 설파했다. "떨쳐버려라. 그리고 자유로워져라. 오 인간이여. 팔을 치켜들어라.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땅이 생명으로 풍요롭게 하여라."

파이루즈
파이루즈ⓒ 카파 판니

파이루즈 하다는 레바논 가수이지만, 어떤 이들은 국적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근본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태어난 레바논 남부나 팔레스타인 북부나 실은 거의 같다.) 이것만 보아도 운이 좋아서 그녀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으로 말이다) 지역에 태어난 거의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자존심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홀로 서로 정반대인 4세대의 심금을 공히 울렸다. 패배자들, 혁명가들, 현실적 절충가들, 불신자들. 그녀 노래의 주제는 인간과 깊은 사랑, 정의와 단합이었다. 레바논인들, 팔레스타인인들, 메카의 사람들, 그리고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 모두 그녀의 노래에서 자기들의 고향을 느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어디에서나 하늘은 자비로 흘러넘친다." "사랑은 네게 부딪쳐 네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보여준다. 그리고 성스러운 불이 타오르는 자기 가슴에 너를 끌어안아 너를 눈처럼 정결케 한다."2)

파이루즈는 또한 '라하바니 집안'(앗시 라하바니, 만수르 라하바니)이라는 떠들썩한 무리의 일원으로서, 앗시 라하바니와의 사랑의 결실로 지아드 라하바니를 낳았다. 그녀는 40년 이상 아랍 노래의 우상이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파이루즈의 목소리가 없는 아랍 문화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마흐무드 다르위시ⓒ 카파 판니

시의 품위(대중성과 더불어)를 되찾는 데 지대하게 기여한 문호. 세계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10명의 시인 중 하나이며 팔레스타인의 부활을 알리는 불사조. 자기 시를 혁명으로 뒤범벅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혁명가.

"피로 시를 쓰기 전에 잉크로 쓰는 것부터 배워라." 초기에 그의 시의 강조점과 독자에 대한 호소는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구별해냄으로써 팔레스타인 민족정신을 고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그것은 '인류애'로 바뀌었다. "나는 적을 염려하는 마지막 시인이다."('함락 아래서')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상황에 소모되지 말고 상황을 창조하자고 제의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패배하고 쫓겨나던 시기에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바위에 현대 아랍 시어라는 굴을 뚫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다시 재생산하고 재생산되기 위한 새로움과 힘을 주려 했다. 그는 다음 세대에 시적 표현의 새 사전이라는 보물을 넘겨주었다.

지아드 라하바니
지아드 라하파니ⓒ카파 판니

지아드 라하바니는 못 하는 게 없으면서도 다 창조적으로 하는 드문 예술가 중의 하나다. 그는 작곡하고 가사를 쓰고 스스로 연주했다. 희곡을 여러 편 써서 스스로 연출하고, 배우로 연기했다. 그는 예술과 정치 양쪽에 대한 기가 막히게 예리한 분석가이자 평론가였다. 그의 어떤 작업은 다른 것보다 좀더 훌륭했으나, 다른 어느 것도 범작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이르고, 저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투명하게 밝힌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면 파이루즈는 그 아버지와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아랍 세계 어디나 알려졌고 어디에서나 환영받았다.

그가 살고 작업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그리고 아랍 문화계에 몰고 온 신선한 충격 때문에, 그는 여러 세대에게 개성적인 예술가의 상징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활동 연대에 따라 써보았으나, 이제 나는 고백해야 한다. 이들이 아랍 현대 문화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다루려면 각자에 대해 책 한 권씩 써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필자 주

1) 셰이크 : 이슬람 성직자 직함. '나이든 이' '현명한 이'라는 뜻.
2) 사랑은 () 정결케 한다 : 칼릴 주브란의 '예언자'에서. '예언자'를 파이루즈가 노래로 불렀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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