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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테러리스트'와 '악한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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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테러리스트'와 '악한 테러리스트'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51> 미 법원 쿠바민항기 테러범 석방

지난 1976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발 쿠바행 민항기(Cubana Flight 455편)를 폭파해 73명 탑승객 전원을 사망케 한 테러리스트 루이스 뽀사다 까릴레스가 미 법원의 판결에 의해 석방됐다. 남미의 빈 라덴으로 불리던 쿠바민항기 폭파범 까릴레스는 35만 달러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최근 풀려 난 것으로 전해졌다.

까릴레스는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으로 쿠바민항기 폭파 외에도 쿠바의 수도 아바나 호텔 폭파, 파나마 이베로 아메리카 정상회담에 참석한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해 회담장에 폭약을 설치한 혐의로 체포되어 형을 살기도 했다.

파나마 정부의 배려로 석방된 그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의 추적을 피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불법 입국,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소재가 중남미 언론들에 의해 밝혀지자 까릴레스는 할 수 없이 미 정부에 망명을 요청하고 나선다. 그때가 2005년 3월이었다. (필자는 그의 행적과 재판과정,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반발 등을 5회에 걸쳐 설명한 바 있다. 하단 관련기사 참조)
▲ '쿠바 국민들은 정의로운 재판을 요구한다'는 피켓을 들고 시위중인 쿠바 국민들. ⓒ쿠바 일간 <그란마>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가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미 텍사스 법원은 까릴레스를 단순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추방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추방지는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아닌 캐나다, 멕시코,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등의 국가였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까릴레스의 신병 인도를 거부한다. 테러리스트라는 그의 신분이 아무래도 꺼림직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자 미 법원은 최근 까릴레스가 테러리스트라는 증거가 빈약하다며 보석금을 조건으로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 좌파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미국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의 테러정책이 이중적인 잣대라는 것이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향해 무지막지한 테러를 저지른 까릴레스는 '선한 테러리스트'이고 미국을 향해 테러를 저지른 빈 라덴은 '악한 테러리스트'냐는 항변이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는 까릴레스가 테러리스트라는 증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지난 1998년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 언론들에 쿠바민항기를 폭파했다고 고백했으며 지원금까지 받았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재판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까릴레스의 석방소식이 전해지자 쿠바 국민들은 미국 정부를 향해 "쿠바 국민들은 정의로운 재판을 요구한다"며 까릴레스의 석방 반대 시위를 시작했다.

쿠바 정부와 언론들 역시 까릴레스 석방의 최종 결정은 워싱턴이 내린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 까릴레스를 석방한 건 그가 가진 중남미와 관련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밀을 누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린 조치의 일환일 거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까리레스는 오랜 기간 동안 미 CIA의 중남미 담당요원으로 활동을 했으며 남미의 콘도르 작전과 쿠바와 나카라과 등에서 벌어진 '더러운 전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시 행정부를 향해 "당신들이 테러리스트를 보호하고, 지원해주며, 먹여준다면 당신들이 바로 테러리스트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 역시 유엔의 테러방지위원회에 까릴레스의 신병인도를 공식 요구하는 방안을 타진하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2001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테러방지협약과 테러범 인도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따라서 국제 사법기관에 까릴레스의 신병인도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하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군 정보장교 시절의 까릴레스 ⓒ쿠바 정부 자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며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인 까릴레스의 신병인도를 국제인권기관들에 공식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정부는 호세 뻬르띠에라 국제법변호사를 까릴레스 신병인도 전담변호사로 임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뻬르띠에라 변호사는 "테러리스트인 까릴레스가 저지른 죄값을 치르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 정부가 그를 지원했던 증빙서류들에 대해 법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미국 법원이 까릴레스 석방을 결정한 법 적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뻬르띠에 라 변호사는 "미 법원은 까릴레스의 석방을 대법원의 2001년 판례를 인용했는데 이는 9.11이후 발효된 법 1373조항으로서, 이 조항은 모든 국가들은 테러 행위자에 대한 편의제공이나 보호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 대법원이 만든 판례를 미 법정이 스스로 위반했다는 얘기다.

3년 이상을 끌어온 미국과 쿠바-베네수엘라간의 지루한 법정공방이 까릴레스의 석방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상호 불신과 법적인 논쟁 등으로 대결구도만 부추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로서는 가뜩이나 좌파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자신들의 뒷마당에 까릴레스라는 휘발성이 강한 인물을 내팽개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까릴레스의 석방을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는 부시 행정부를 몰아붙일 구실을 하나 더 잡은 셈이다. 이 국가들 간의 대결구도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중남미 언론들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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