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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분 반미 열풍, 미국이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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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분 반미 열풍, 미국이 부추겼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96> 미국 성토장 된 비동맹 정상회의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14차 비동맹운동(NAM 혹은 NOAL) 정상회의가 '반미와 유엔 민주화가 개도국들의 대세'라는 입장을 확인하면서 이집트를 차기 회의 개최국으로, 쿠바를 3년 임기의 차기 회장국으로 각각 결정한 뒤 16일 폐막됐다.

세계 118개 개발도상국 대표들이 참가해 그 어느 때보다 반미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번 쿠바회의에는 56개국 정상, 90개국의 외무장관이 참석을 했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특별 초대손님으로 병상의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전격 방문해 중남미 언론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아난 총장은 카스트로와의 회동에서 "(카스트로가) 탁월한 지도력으로 쿠바를 훌륭하게 잘 이끌어 왔으며 비동맹회의에 끼친 공이 지대하다"고 덕담을 건네고 "세계 평화, 특별히 중동 국가들의 분쟁해결을 위해 비동맹회의 국가들의 활동과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요구 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카스트로를 전격 방문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쿠바<그란마>

그런데 개막과 동시에 미국과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성토장으로 변한 비동맹국가회의는 처음부터 반미의 분위기가 흐르도록 미국 스스로가 부추긴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어 내막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의 개발도상국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쿠바의 아바나 공항에 도착 러시를 이루던 지난 12일 미 텍사스 법원 발 긴급뉴스 하나가 쿠바와 베네수엘라 언론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제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루이스 뽀사다 까릴레스를 단순 불법이민자로 분류해 한달 내에 석방한다는 소식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미국과 쿠바, 베네수엘라를 외교적 분쟁으로 뜨겁게 달구었던 까릴레스 문제는 필자의 남미리포트 2005년 5월 30일자, 2005년 9월 5일자, 2005년 9월 29일자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텍사스 법원은 지난 11일 까릴레스가 테러리스트라는 확실한 증거가 미약하다며 단순히 이민법을 위반한 불법체류자로 분류해 추방을 결정했다. 하지만 텍사스 법원은 까릴레스를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아닌 제3국으로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그가 쿠바나 베네수엘라로 추방될 경우 혹독한 고문을 당할 것이라는 게 명분이었다.

문제는 텍사스 법원이 추방지로 결정한 캐나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멕시코 등이 까릴레스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다.

상황이 꼬이자 텍사스 법원은 미 이민국이 허용한다면 까릴레스를 30일 내에 석방하겠다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추방지가 확정되지 않은 외국인(불법체류자)을 오랜 기간 동안 구속할 수 없다는 미 대법원의 2001년 판례를 인용해서다.

결국 공은 다시 미 이민국으로 넘어간 형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민국은 지난 해 5월 까릴레스를 텍사스 법원으로 이송하면서 "사회공공질서를 위협하고 미 국가안보를 해칠 인물"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국 역시 텍사스 법원이 요구하고 있는 까릴레스의 석방을 허용할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언론보도를 타고 중남미 전역에 퍼지자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리까르도 알라르꼰 쿠바 국회의장은 제14차 비동맹회의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 정부가 민간 항공기 테러에 관한 몬트리올 협약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미 법원의 판결에 대해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까릴레스가 테러리스트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을 미 법원에 제출을 했지만 그 증거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알라르꼰 의장은 이어 "부시 행정부는 테러리스트인 까릴레스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미국이) 민간항공기 테러범을 보호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모순"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 피델 카스트로를 대신해 쿠바를 이끌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가 미국의 테러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쿠바<그란마>

까릴레스의 신병인도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쿠바와 베네수엘라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번 비동맹회의에서 이 문제를 국제적인 여론으로 만들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먼저 까릴레스 석방설을 흘려 카스트로와 차베스에게 반미의 목청을 높이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현장에 모인 각국의 취재기자들은 물론 각국 대표들까지 합세해 부시 행정부의 대 테러정책을 성토하는 '반미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번 쿠바 회의에는 700여 명의 외신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아바나에 모였고 그밖에도 200여 명의 수행기자단이 각국정상들과 함께 쿠바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베스의 진가 유감없이 발휘했다'

개도국들의 모임인 쿠바 회의에서는 유엔의 개혁과 민주화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유엔 조직이 강대국들에 의해 독재화되고 있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은 또 안보리에서 비토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안보리가 강대국들의 손에 휘둘리면서 약소국들의 입장이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들은 또 강대국들의 경제식민지화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번 쿠바의 개도국회의에서는 또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쿠바에 모인 전세계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6자회담에 참여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미국이 대북한의 경제제재를 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핵개발 프로젝트를 지속시키겠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비동맹회원국들은 "평화적인 목적의 핵기술을 개발할 권리는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기도 했다.
▲ 쿠바에 모인 전세계 개도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쿠바<그란마>

한편 서방 강대국들의 뉴스 독점과 중남미 실상의 왜곡을 막기 위해 텔레수르를 창설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이번에는 <AP>와 <로이터> 등 서방 통신사들을 대체할 세계적인 뉴스통신사 창설을 선언해 주목을 받았다.

차베스는 "중남미 뉴스가 <AP>와 <로이터>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의 이번 시도는 국제적인 언론매체를 다변화시켜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를 통해 중남미 뉴스의 정확한 전달과 현지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거라는 얘기다.

이는 지금까지 현지언어와 라틴권의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서방 언론사들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중남미의 실상을 왜곡해 보도하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언론계는 "이번 쿠바의 비동맹회의장에서도 차베스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카스트로와 합작으로 반미 분위기를 주도해 유엔의 안보리비상임이사국 진출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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