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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이미 로마의 전철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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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이미 로마의 전철 밟고 있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44> 룰라의 '브레인' 정치학자 인터뷰

미국과 브라질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차세대 대체에너지인 에탄올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 정계와 학계에서 미국 전문학자로 알려진 루이스 M. 반데이라 박사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았다.

브라질리아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미 제국의 구성(La formacion del imperio Americano)>이라는 저서의 저자인 반데이라 박사는 브라질 노동자당(PT) 창당을 주도했고, 룰라 대통령과도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브라질 학계의 대표적인 좌파 인사다.

그런 그가 '급변하고 있는 중남미와 미국관계' 세미나를 위해 아르헨 외무부의 국제관계 정책자문 기구인 CARI와 주 아르헨 브라질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계 인사들은 "최근 미국과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국가들 간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룰라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반데이라 박사를 통해 간접적이지만 룰라의 의중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그의 아르헨 방문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14일 오후 7시(현지시간) CARI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반데이라 박사는 "미국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미국이 원하는 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은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신무기와 전쟁물자 소비를 위해 끝임없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침공이나 이란, 아프리카지역 분쟁 개입 등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중남미에 대해서도 포드나 클린턴, 부시 등 역대 정권이 지속적으로 이 중남미 전역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반데이라 박사는 최근 부시 행정부가 중남미 끌어안기에 나선 것은 경제와 금융을 통한 "새로운 침략 개념"으로서 미국의 대외전략 콘셉트가 바뀐 것뿐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들어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과 인도, 유럽연합(EU) 등 강대국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중남미에서까지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사면초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반데이라 박사의 이날 CARI 강연내용을 요약한다.
▲ 아르헨 CARI강당에서 강연 중인 반데이라 박사 ⓒ김영길

"미국은 역사적으로 어떤 제국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대서양과 태평양은 물론 인도양 등 지구 전역의 해양과 공중, 육상을 장악했다. 옛 로마 제국이나 대영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미국은 군사력을 이용해 세계를 장악한 것만이 아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금융 관련 국제기구들을 통해서도 전세계의 경제와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장악력이 약발을 잃어가자 다시 군사력을 이용해 중동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아프리카지역 분쟁에 개입을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평화적인 목적 보다는 자국의 무기산업 활성화를 위한 경제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하지만 막강한 미국의 제국주의도 길게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로마나 영국 등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얘기다.

미소 양강의 대결이라는 냉전체제를 거쳐 구 소련연방의 몰락 이후 유일한 강대국의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미국은 이제 복합적인 강대국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사방을 강적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인 것이다.

러시아가 옛 영화의 회복을 노리고 있고, 중국과 인도, 유럽연합(EU)도 저마다 미 제국에 대항해 주도권 확립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 제국은 이제 사방에 적을 둔 '사면초가' 신세가 된 것이다.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중남미 역시 시간이 갈수록 반미 열풍이 더 강하게 불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제국주의는 약탈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중남미도 예외일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중남미국가들이 남미공동시장이라는 블록을 형성해 중남미통합 논의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한층 더 발전된 의미의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양국이 통합의 축이 되어 주도적으로 주변국가들인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칠레 등의 합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미 제국과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우고 차베스는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남미권을 대표할 수 있는 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미국이 순식간에 전세계의 전자, 통신, 우주산업 등을 장악하게 된 건 순전히 제2차 세계대전 승리 후 독일의 기술과 장비 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갔기 때문이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은 독일에서 유능한 인재는 물론 모든 산업장비와 군수물자 생산설비들을 무차별적으로 약탈해갔다. 군수장비와 산업, 통신, 각종 암호해독기기, 심지어는 전화기까지 싹쓸이해갔다.

이런 전리품들이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주름잡는 전자, 통신, 항공기를 포함한 군사무기, 우주산업 등 첨단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강연이 끝난 후 CARI 회장단과 브라질 대사관 관계자들의 양해를 얻어 반데이라 박사를 따로 만나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과 브라질의 에탄올 프로젝트의 장래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관계 등 향후 전망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영길 : 부시 미 대통령이 브라질을 중남미지역 협력파트너로 선택한 것 같은데….

"미국과 브라질은 모든 측면에서 미주대륙을 대표하는 양대 세력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런 브라질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규모나 교역량 역시 다른 중남미국가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김영길 : 그렇다면 룰라가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인가?

"룰라와 부시의 경제협력 강화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브라질이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뿐이라고 봐야 한다. 룰라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룰라 스스로도 국민들의 반미감정이나 미국의 접근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브라질의 경제를 순탄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교역을 거부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차베스도 표면적으로는 반미를 외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과의 석유 교역은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룰라가 미국과의 경제교역을 강화하는 것을 두고 그의 정치노선의 변화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다."


김영길 : 최근 대체에너지로 평가 받고 있는 에탄올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화제다. 미국과 브라질이 추진중인 에탄올 프로젝트는 농민 반대 등 브라질 정치권에서도 반대 기류가 강한데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

"이 프로젝트는 실용성보다는 양국의 정치적인 선언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브라질 내부의 농민들과 정치권의 반대도 문제지만 양국이 관세문제 등 갈등의 소지도 다분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말 룰라의 워싱턴 방문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룰라는 미국의 의도대로 모든 것을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브라질은 기술과 원자재 등을 확보했고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도 에탄올 연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탄올 문제만큼은 브라질이 미국에 휘둘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룰라는 여유를 갖고 대처할 것이다.

물론 미국과 브라질 양국은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투자와 생산활동 등에서 탄력을 주겠지만 브리질 국민들의 정서를 살펴가면서 추진될 것은 분명하다."

▲ ⓒ김영길

김영길 : 룰라와 부시의 밀월이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룰라와 부시는 태생적으로 노선이 다른 정치인들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룰라와 부시는 경제협력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문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 주장한 대로 룰라가 남미권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와의 관계는 남미공동시장이라는 축과 에너지 등 경제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긴밀한 협력체제 유지가 그대로 될 것으로 본다."


김영길 : 룰라 대통령과는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 1980년 내가 상파울루의 가톨릭대학 교수를 지낼 때 알게 됐다. 당시 가톨릭대학 교수들은 룰라와 노동계 지도자들이 브라질 학계인사들과 관계를 맺는 일을 주도했고 실질적으로 노동자당(PT) 창당의 산실 역할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룰라와는 지금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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