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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론 정권에 대한 해묵은 오해 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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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론 정권에 대한 해묵은 오해 풀리나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32> 페론과 아르헨 군부의 끈질긴 악연

아르헨티나 정치계가 군부의 과거청산을 놓고 요동치고 있다. 군부의 반인륜적인 인권유린의 책임이 페론주의자들과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후임자인 이사벨 페론에게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아르헨 사법부가 스페인에 거주 중인 이사벨 페론의 소환을 추진하고 군정관련 인권유린 사태가 일정부분 이사벨 페론의 묵인 하에 저질러졌다는 의혹을 흘리자 현지 보수언론들은 트리플A(아르헨티나 반공산주의 연맹)가 후안 도밍고 페론의 승인을 받고 조직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관련기사)

현지 일부 언론들은 지난 1973년 오랜 망명생활 후 권좌에 복귀한 페론과, 페론당에 충성을 맹세한 호세 레가(트리플A창설자)를 사회복지부장관에 전격적으로 기용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페론은 아르헨 정계에서 약화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군부와 경찰을 장악하고 사회화합을 이뤄내려는 차원에서 호세 레가를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페론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레가가 요구한 군 수뇌부와 경찰간부들로 구성된 친위세력 창설을 허용해주고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페론주의자들과 현지 진보성향 언론인들의 주장은 다르다. 필자가 지난해 페론의 감춰진 진실을 취재하면서 안면을 익힌 페론당 인사들과 언론인들 및 역사학자들은 "아르헨 사법부와 언론들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페론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이어 "트리플A가 페론의 친위세력이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모함"이라며 "만약 그들이 페론의 친위세력이었다면 페론당 청년조직 말살작전에 앞장섰겠느냐"고 반문했다.

필자 역시 왜 페론 정권이 반대파들의 제거와 언론탄압을 일삼은 '테러정권'이라는 평가를 현지의 일부 보수언론들과 외신들로부터 받았는가 하는 궁금증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이사벨 페론 소환사태로 인해 불거진 무장 테러단체인 트리플A와 페론과의 관계를 해부해 본다.
▲ 아르헨의 인권유린의 몸통은 누구인가. 후안 도밍고 페론(왼쪽)과 호세 레가(오른쪽). ⓒ프레시안

'공포의 암살단'이라는 별명을 가진 트리플A가 물밑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 지난 1960년대 말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아르헨티나 전국 서장급 이상 전현직 경찰 간부들을 주축으로 군 장교, 주임 상사급으로 구성된 이들은 반공과 반페론주의를 행동강령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조직확산에 들어갔다. (현지 일부 언론들은 8개 분야로 세분화된 트리플A의 창립멤버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들의 구체적인 테러활동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들은 페론이 재집권하기 상당기간 전부터 국제적인 밀수업자들과 공생관계였고 강도단 뒤봐주기와 기업들의 탈세묵인 등의 대가로 활동자금을 마련해 조직원들의 정기적인 봉급과 퇴직금, 심지어는 상여금까지 지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확장한 트리플A는 지난 1973년 페론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조직의 책임자 호세 레가가 충성스러운 페론당원의 가면을 쓰고 페론의 측근에 발탁되는데 성공한다.

페론의 신임을 바탕으로 호세 레가는 자신의 경호요원들과 페론 대통령의 경호실을 트리플A 간부들로 대폭 물갈이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부와 경찰을 망라한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페론 재임기간 동안 최고 실세로 등장한 호세 레가의 비호를 받은 트리플A는 철저하게 페론당원 행세를 하면서 암암리에 페론당 청년조직과 노동당 간부들 제거작전에 돌입했다. 페론이 집권기간 동안 무차별한 반대파 제거작전을 벌였다는 설의 실제 내막이다.

이 단체는 또 청년 페론주의자들의 실종사태와 공공연한 테러 등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했던 언론인 제거작전을 동시에 벌이기도 했다. 당시 트리플 A의 위장된 실체와 만행을 추적하거나 보도하고자 했던 다수의 언론사 기자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됐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체와 페론주의 말살작전이 페론 대통령이나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이에 반발하는 언론인들을 페론의 이름을 가장해서 테러를 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이들은 당시 아르헨티나 일반사회는 물론 정치, 경제,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저승사자와 같은 공포의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들이 군정기간 동안 마치 페론의 지시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으로 왜곡됐다는 게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론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트리플A의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페론이 인지 혹은 묵인했느냐와 이들을 암묵적으로 지원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르헨 군정 당시 악명을 떨친 트리플A의 몸통이 페론이냐 레가냐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페론당 수뇌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페론 역시 피해자다. 자신이 수족처럼 아끼고 후원했던 지지세력들을 무참하게 제거하는 불법사조직의 실체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만일 페론이 이와 같은 사실을 눈치챘더라면 트리플A가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일삼도록 방치해두었겠냐는 것이다. 자신 앞에서는 충성스런 태도를 보인 이중적인 인사 호세 레가에게 철저히 속아 페론주의가 말살되고 사회불안이 가중되어 페론 사후 곧바로 군부에게 쿠데타의 명분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현재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소환조사를 결정한 사법부의 결정도 페론당 수뇌부와 노조지도자들의 반발로 무산될 공산이 크다. 군부와 측근들의 협박에 가까운 강요로 공포된 법령에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반정부 세력들의 강요로 친정부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위장된 법령의 적법성을 따지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트리플A는 페론당이라는 공권력을 가장한 불법 사조직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사벨 페론의 소환과 연계된 불법무장조직의 만행이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이냐 아니면 사조직에 의한 불법활동이냐를 놓고 아르헨 법원과 페론 측 변호인단이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 정부의 군정 과거사 청산의지는 확고하다. 네스또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최근 사법부가 어떤 유형의 압력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정 당시의 국가기밀 해제를 천명했다.

"군정 당시 국가기밀 공개하라"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지난 26일 오전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공권력에 의한 반인륜적인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라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이를 철저하게 밝히기 위해 군 수뇌부와 경찰, 공무원은 전·현직을 망라하고 군정 당시의 국가기밀을 공개해야 한다"는 대통령 특별령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닐다 가레 아르헨 국방장관은 까사로사다(대통령궁) 출입기자단들과 특별 간담회를 요청해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거청산을 위해 사법부의 독립적인 수사와 재판, 증인보호 등에 공권력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가레 장관은 이어 "이번에 새롭게 공포된 대통령 특별령은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군정 관련 사건은 물론 현존하는 무장테러 사조직들에 관한 모든 비밀사항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공권력이 개입된 테러나 인권유린 사태가 영구히 추방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으며 이는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덧붙였다.
▲ 최근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에 부착된 "페론을 희롱하지 말라"는 벽보. ⓒ끌라린 아르헨티나

한편 아르헨 노조 대표들은 "사법부가 페론을 군정의 과거사청산에 연관시키려는 음모를 중지하라"면서 "페론을 더 이상 희롱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불법적인 무장사조직 트리플A에 쏠린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된 페론을 연관시켜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지 여론이 사법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돌아서자 아르헨 연방법원은 27일 특별성명을 통해 "페론 전대통령이 극우무장조직 트리플A와 연관됐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이 확정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난 1983년부터 시작된 아르헨 군정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정권에 따라 사면령과 사면백지화, 공소시효 무기한 연기, 군 수뇌부 재수감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사법부와 언론이 정권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현지 역사학자들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군 수뇌부와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한 사조직들의 연결고리도 철저하게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정권의 의도대로 움직여준 사법부와 언론들의 책임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년이 넘게 끌고 온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이 현 정부의 의지대로 각종 의혹들을 한 점 의혹도 없이 밝혀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이 과정에서 언론탄압, 테러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페론 정권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게 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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