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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 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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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 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전태일통신 57] 임용고사에 대한 한 교대생의 생각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네가 정말 원해서 교대에 들어왔느냐'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점에 끌려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진 상황에서 아마도 이런 질문은 '교직 선택의 진정성'을 묻는 것일 게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교대에 진학했다'고 답하지만, 솔직히 나는 투철한 사명감만으로 교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여성으로서 안정적인 직장과 교사들의 시간적 여유에 매력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비교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 온 지난 2년 동안 나는 '교육'이라는 것, '교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년 임용교사 경쟁과 관련한 교대생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논란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지식만 가르친다면야…

초등 교사는 혼자서 모든 교과를 가르쳐야 하고, 생활지도를 포함한 학급경영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여러 교사가 자기 전공과목만을 가르치는 중등과 달리 초등에서는 담임교사 한 명의 영향력이 아이에게는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교대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엄격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생 시절에는 초등학교 음악책에 실린 동요를 다시 배우고, 고등학교 때도 하지 않던 물구나무서기를 익히면서 스스로 한심하게 느낀 적도 있었다.
▲ ⓒ프레시안

일년 뒤, 첫 번째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등 교육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를 지도하신 선생님은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1학년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학교에서는 식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발표 하나를 시키면서도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효과를 계산해서 지명해야 하고, 동기유발 없이 그저 아이들에게 상투적인 방법으로 수업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만큼 우리 초등교육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환경이 어려워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취업 때문에 걱정하는 주위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초등학생 가르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말하곤 했다. 나는 친구들의 의견을 부정하면서도 조금은 동조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은 매우 그릇된 것임을 나는 느꼈다. 지식만을 가르친다면야 초등학교 정도라면 누가 못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교사는 '아이'라는 깊고 무궁무진한 세계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말 못하는 고민을 먼저 느끼고 함께 생각하면서 거기에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학업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교재연구를 하고 교구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살려주어야 한다.

교생실습을 다녀온 후, 초등교육에 대한 나의 시선은 확연히 달라졌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보였다. 장구를 치고 뜨개질을 배우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내 시범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무어든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경쟁으로 교사를 뽑는다는 것

작년 초겨울, 우리 사회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던 초등교원 임용과 관련한 투쟁을 겪으면서 스스로 많이 반성하고 새로 깨닫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이전까지는 교원양성 체제라든가 임용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학생회에서 교육정세나 교육운동에 관한 교양을 하곤 했지만, 빡빡한 커리큘럼을 핑계로 빠지기 일쑤였고 신자유주의니, 교육개방이니 하는 주제들은 나와는 머나먼 일로만 느껴졌다.

그런 차에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고, 결국 4학년 선배들의 임용인원이 예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지방교육재정' 문제와 연관된 '학급총량제-학급총량을 기준으로 교육재정을 분배함으로써 저출산으로 인한 1인당 교육비의 자연스러운 증액을 억제하고, 교원을 감축하려는 제도-와 같은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학교 내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학생총회가 수차례 열렸다. 투쟁에 대한 당위성에서부터 그 시기에 맞물려 있었던 3학년 실습문제까지 매 학생총회마다 전교생이 5~6시간이 넘도록 토론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합의점을 찾아 나갔다. 그러면서 나는 그저 짜여진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하고, 과제물 내는 데 정신없었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게 되었다.
▲ ⓒ프레시안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초등 임용시험 경쟁률이 중등과는 비할 수 없이 낮은 데도 수업 거부, 임용 거부를 결의하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거기다가 '교대, 좋은 시절 다 갔나'라는 식의 선정적인 기사들을 실어 나르는 언론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친구들도 많았다. 전국 교대 동맹 수업 거부라고는 했지만 언제 누가 먼저 '살 길을' 찾아 떠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동맹이었고, 내부에서는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공부해서 어떻게든 임용에 합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솔직한'(?) 의견도 있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초등 임용마저도 중등과 같이 엄청난 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었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신뢰받는 사회분위기를 개탄하지만, 임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임용고시 학원으로 몰리는 것도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학원의 도움을 받아 교사가 되면, 결국 교사도 아이들에게 '학교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니, 학원에 다녀보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권하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을까.

한국은 1990년 이후 교사양성과 임용을 분리하는 임용고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교사는 노량진에서 양성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임용시험에 응시할 생각이 있다면, 딴 거 다 제쳐두고 일찌감치 학원에 등록해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교육적 이상을 논하기에는 경쟁이 너무 살벌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행정당국은 교사는 그저 시험 쳐서 점수 높은 순서대로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극심한 경쟁 속에서 당락은 대개 소수점 이하에서 결정난다. 0.1점이 더 높아서 합격한 교사가 0.1점이 모자라 불합격한 사람보다 더 훌륭한 교사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0.1점의 변별력을 위해 모든 예비교사들을 경쟁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철학의 부재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않고 결정되는 교원수급정책으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결정권은 교육부가 아닌 기획예산처와 행자부가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때그때 예산 따라 교원수급을 결정하고, 그래서 그 해의 임용 교원 수는 공고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들 한다.

교사도 최소한 4년 전에 교원 채용 규모의 윤곽이 잡혀야 원하는 수준의 교사를 필요한 만큼 양성해서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교원수급이 가능해진다면 궁극적으로 임용고사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경쟁'으로 뽑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교육은 결국 '아이'를 잘 알아야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살벌한 경쟁 체제는 결국 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 즉 깊이 있는 교육 공부와 아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오직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 방법만을 체득하게 하고, 거기서 이겨야만 인간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발상인가. 그렇게 경쟁하고 거기에서 승리해서 교사가 되면 아이들에게도 경쟁을 가르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경쟁해서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그 논리 자체가 너무나 싫다. 그런데 이제는 사범대도 모자라서 교대까지도 이런 경쟁의 올가미로 옭아매려 한다. 서서히 그렇게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교대도 사범대처럼 임용시험을 위한 입시기관이 되어버릴 것 같다. 그리고 이 경쟁 속에서 우리는 모두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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