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미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힐러리 의원의 '출사표'가 아닌 그의 '시간표'였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께에는 가급적 정치적 일정을 삼간다는 워싱턴의 불문율을 깨고 토요일 아침에 출마선언을 한 힐러리 의원의 속내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오바마 불' 끄자…다급한 출사표
미국의 시사주간 <네이션>은 20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힐러리의 적수가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던 민주당 대선후보 담론이 어느 순간 '바락 오바마가 선두를 탈환할 것인가'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여론조사 지표상으로는 여전히 힐러리 의원이 20% 포인트 가량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앞서며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제의 중심에서는 오바마 의원에게 밀려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16일 오바마 의원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며칠간 미 언론의 초점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가능성에 맞춰졌다.
<폭스TV> <CNN> 등 보수 성향 언론들이 '진보성향의 흑인 후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하고 나선 것이 오바마 의원 측에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공격이 오히려 오바마 의원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기제가 돼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의 인기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힐러리 의원이 토요일 오전에 공식 출마 선언을 한 것, 그것도 정식 기자회견이 아닌 웹 사이트를 통해 출사표를 던진 것, '한 주에 두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지 않는다'는 워싱턴의 관례를 무시한 것 등은 이처럼 온통 오바마 의원 쪽으로 쏠려 있는 여론의 관심을 돌려세우기 위한 '응급조치'로 풀이될 수 있다.
'확고한 선두주자'는 옛말
'선두주자 힐러리'를 조급증에 빠뜨린 것은 비단 오바마 일색인 신문 지면만이 아니었다.
지난 주 여론조사기구 콘코드 모니터가 내년 1월 14일 민주당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주에서 민주당 지지자 6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 의원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불과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오바마 의원은 22%의 지지를 얻어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과 공동 1위에 올랐다.
민주당 내에서 단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던 힐러리 캠프로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 내 첫 프라이머리(국민참여 예비경선)가 개최되는 뉴 햄프셔주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힐러리는 22%를 기록, 21%를 획득한 오바마에 불과 1% 포인트밖에 우위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코커스, 첫 프라이머리(국민참여 예비경선) 결과가 최종 경선 결과와 직결된다는 가설은 존 케리, 앨 고어 등 앞선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검증된 것이니 만큼 이상 두 가지 여론조사 결과는 힐러리 의원의 대선 가도에 적신호로 여겨지는 것이다.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더 큰 걱정"
이에 21일자 <뉴욕타임스>는 힐러리 의원 측근의 입을 통해 "힐러리는 본선 경쟁력에 대한 걱정보다는 민주당에서 후보로 지명 받을 수 있을지를 두고 더 초조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힐러리 의원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 8년 간 백악관 안주인 자리를 지키며 뛰어난 업무 수행능력과 '전투력'을 보여줬으며 작년 11월 본인의 재선을 위해서만 500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를 모금하며 자금력도 입증해냈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성추문에 휩싸였을 때에는 "남편을 믿는다"며 남편 편에 서 전 국민의 호감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고정된 '극단적인 자유주의자' 혹은 '무례한 야심가'라는 이미지는 스스로 극복해야 할 장애다.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보여준 '관대'는 역으로 공화당 진영으로부터 "도덕적으로 느슨하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강점만큼 약점도 많은 힐러리 의원에겐 본격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까지 400일이 넘게 남은 앞으로의 기간 자체가 변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명확한 소신을 내보이지 못한 것을 두고도 민주당 내에서 불신을 사고 있으며 오바마 의원과의 승부 외에도 고어나 케리 등 '어제의 용사들'의 재출마 여부 또한 잠재적 변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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