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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페론은 '인간사냥꾼'의 후원자?

김영길의 '남미리포트'<230> '판도라의 상자' 아르헨 과거청산

최근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AAA(트리플A. 아르헨티나 반공산주의 연맹)'라는 극우 무장단체가 저지른 범죄는 반인륜적인 것으로 공소시효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트리플 A'는 페론당의 좌익청년조직 제거를 위해 조직된 단체로 당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의 묵인 또는 승인 아래 무자비한 인간사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현재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에게 소환 명령서를 발급해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것을 요청하고 인터폴에 신병확보를 의뢰했다

이사벨 페론은 1974년 7월1일 후안 도밍고 페론의 사망으로 부통령과 영부인으로서 대권을 물려받았다.
▲ 이사벨 페론 전대통령 ⓒ아르헨티나 역사자료

'식물대통령' 이사벨 페론이 부른 비극

하지만 그는 예술인 출신으로 정치감각이나 식견이 부족해 측근들과 군 수뇌부의 의도대로 국정을 수행한 '식물대통령'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사벨 페론은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기 직전 군부와 측근들의 강요에 못 이겨 '정부 전복을 노리는 좌익세력 진압작전'이라는 대통령 특별법령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수뇌부와 측근들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으며 마지못해 공포한 이 대통령 특별법령에는 "육군참모총장이 반정부 무장세력들의 진압을 수행하기 위해 각 부 장관을 휘하에 두고 필요한 작전을 취할 수 있다"는 조문으로 사실상 계엄령에 가까운 전권을 군부에 위임해준 조항이 담겨 있다.

또한 이사벨 페론은 군 수뇌부가 반정부인사 진압작전에 필요한 특별예산까지 편성해줘, 스스로 군부의 페론당원 제거작전을 합법화시켜 주고, 나아가 쿠데타 작전까지 내각의 지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던 것이다.

자칭 페론당원임을 주장하는 한 인사에 의해 조직된 무장 사조직 '트리플 A'는 이 법령을 근거로 무자비한 좌익세력 제거작전을 벌였고 그 이후 정권을 잡은 군부 역시 이 법령을 앞세워 페론당원들을 좌익으로 몰아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사벨 페론은 자신이 믿었던 측근들과 군부에 의해 축출당하기까지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자신의 재임기간 중 공포한 특별법령에 의해 군부와 극우 세력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아르헨 사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페론당 전체가 군정 인권유린에 연루된 의혹

페론 정권 하의 특정 사조직만이 아니라 페론당 전체가 군정의 인권 유린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르헨 법원의 이사벨 페론 소환 결정 이후 페론당 수뇌부는 극도의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로가 페론주의의 본류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반페론주의자인 레가와의 관계를 이용해서 상대방 제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군정 당시 '더러운 전쟁'을 주도했던 사조직들의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는 것이다. 극우파이자 반페론주의자인 호세 레가가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된 것도 의혹투성이다.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으로 페론주의 말살을 주도했던 자칭 페론주의자 호세 레가는 또다른 국제적 사조직인 P-2 (Propaganda Due)의 핵심인물이기도 했다.(반페론주의자들이었던 P-2에 대해서는 필자의 남미리포트 '페론의 손목절단 사건 의혹 풀리나'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경찰간부 출신으로 페론 집권시절 사회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조직인 트리플A를 동원해 좌익세력과 페론주의자 제거에 앞장서 온 인물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충실한 페론주의자 행세를 했지만 뒤로는 자신의 극우 무장 사조직을 이용해 공산주의 제거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페론주의 말살을 주도한 반페론주의자였다.

후안 도밍고 페론은 물론 이사벨 페론 대통령과 페론당 수뇌부가 충성스러운 당원의 가면을 쓴 한 명의 배신자에게 철저하게 놀아난 것이다.

아르헨 법조계에서는 정치 감각이 없던 이사벨 페론이 군 수뇌부들과 경찰 조직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호세 레가를 측근으로 기용해 군부와의 갈등을 잠재우고 사회안정을 꾀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 군 수뇌부는 레가를 통해 이사벨 페론의 축출을 획책했을 뿐만 아니라 페론주의 말살을 합법적으로 주도하도록 이사벨 페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레가는 민정 이후 스페인으로 도주해 은둔생활을 했으며, 프리메이슨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인터폴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조직의 실체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한 채 89년 사망했다.

아르헨의 '기억보관소(CONADEP)' 자료에 따르면 트리플A는 이사벨 페론의 집권기간(1974년7월1일~1976년3월24일) 동안 430여 명의 좌파정치인들과 페론당원들을 무차별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기간동안 납치된 인물들의 수도 700여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트리플A'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과 군 정보기관의 지원 아래 군사 무기와 폭탄 등으로 무장한 채 차량 폭파, 좌파 모임 기습작전 등을 감행했고 좌파 인사들의 무차별한 납치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 났다.

또한 '트리플 A'는 무자비한 인간사냥에 나서 사회혼란을 주도함으로써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재집권을 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후 이 단체는 군정 시작과 함께 자연스럽게 P-2조직으로 흡수 통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르헨 법원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은 이사벨 페론은 집권 당시 자신이 서명한 '좌익세력 제거 법령'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막연히 반정부세력 진압작전을 위한 법률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사벨 페론은 측근들의 보고만 믿고 국정을 처리한 것이다. 그는 "내가 군부와 측근들을 신뢰했던 게 일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르헨 군부가 세계최고의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던 '남미의 파리' 아르헨티나를 천문학적인 인플레의 대명사, '국가 경제가 거덜난 나라'로 뒤바꿔놓고 3만여 명의 사망• 실종자를 남긴 채 퇴진하도록 도와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아무튼 군정 당시의 인권유린을 주도한 군부 관련 사조직들에 대한 실체파악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거청산은 페론당 수뇌부와 군.경찰, 국제적인 사조직 등의 관계가 얽히고 설킨 '현대판 판도라 상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이 거대한 조직들의 실체를 파헤치려 했던 판사 혹은 정치인, 언론인 등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도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이 험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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