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구 6만이 넘는 큰 마을이 되었고, 제법 도시의 기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송동에는 살벌한 요즈음 세상과는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반송 주민들은 결속력이 강하다
반송 지역주민들은 마을일에 한 마음으로 모여서 일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고, 문화 행사나 지역 행사에도 많은 수의 주민들이 참여합니다. 주민자치센터 또는 지역단체에서 주관하는 마을 가꾸기, 지역 환경개선 활동, 장산 해맞이, 어린이날 행사 등에 항상 뒤로 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적극 참여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주민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방 본래 마을 주민과 어울리게 되고 고향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반송의 원래 잘 뭉치는 기질 때문이기도 하고 주민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이웃끼리 만나는 기회가 잦아서 타 지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지역에 적응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송동은 1968년에서 1975년까지 부산시내 수정동 고지대와 철도변, 조방부지의 철거민들이 집단이주함에 따라 현재와 같은 큰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고창권, 『반송사람들』 2005) 반송동은 동부 경남권을 연결하는 국도 14호선(반송로)를 끼고 있으며 기장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지요. 일반주택지, 저소득층 주민 집단거주지, 아파트 택지개발지역으로 중산층과 영세서민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정이 넘치는 주거지역입니다.
이 마을에는 해마다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가 있습니다. 이 날에는 7000~8000명의 지역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모여 잔치를 벌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전에는 꼬방동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지역에서 이렇게 거의 모든 가정에서 나와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주민들이 마을에 대한 애정을 갖고, 결속력을 갖기까지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오래전 대규모 인구가 사는 반송동 인근 석대와 고촌지역에 생활쓰레기 매립장, 산업쓰레기 매립장 등 혐오시설 설치 계획이 잇따라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지역주민은 반송마을을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하나로 뭉쳤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산업쓰레기 매립장 설치 백지화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이를 달성했습니다. 주민들은 함께하면 할 수 있고, 여럿이 함께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스스로 깨치게 되었습니다.
반송 주민의 가장 큰 관심은 아이들이었다
이 마을에는 10년 전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희망세상'(구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NGO가 있습니다. 희망세상은 매년 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힘을 모아 앞에서 말한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벌써 8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어린이날에도 쉬지 못하고 일터로 가야 하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 이 행사는 7000~8000명의 지역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모여 벌이는 마을의 큰 잔치가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학교와 주민단체, 복지관, 나눔의집, 지역공부방 등이 힘을 모아 별같은 반송아이들을 위한 '별난 축제'를 엽니다. 이 행사도 올해로 4회가 되었습니다.
또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의 좋은아버지모임은 한달에 두 번 목욕을 하며 정을 나눕니다.
지난해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 중에 교복구입이 어렵다는 아이들에 대한 소식을 접한 지역주민들이 3000원, 5000원씩 성금을 거둬 50명의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반송동 아이들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
반송동 주민들은 지역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밤 늦은 시간이라도 함께 모여 고민하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2003년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복지 투자우선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교육복지 재정과 학교 안에 교육복지 인력이 투입되었고,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지역 주민의 노력들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2005년 12월 학교와 교육청, 복지관, 나눔의 집 등의 지역단체들과 함께 정부의 지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교육복지 사각을 매우기 위해 스스로 교육복지공동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희망의 사다리 운동입니다. 보잘 것 없는 나무토막도 엮으면 사다리가 되듯이 마을의 여러 단체와 주민들이 손을 잡고 일하면, 아이들이 딛고 오를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담은 말입니다. 이 이름도 지역사회복지관과 학교,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하면 잘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스스로 깨친 결과였습니다.
<희망의 사다리 운동 슬로건>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 밥 굶어 건강을 잃지 않게 ○ 치료받지 못해 아파하지 않게 ○ 사랑받지 못해 외로워하지 않게 ○ 공부하지 못해 꿈을 포기하지 않게 "출발선 평등"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자! |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
돈이 없어 한번도 캠프를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지원방법을 찾았고, 학교와 교육청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마을 공동 캠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학교 선생님들과 주민들이 정기 후원자로 300여 명이나 참여했습니다.
작은 음식점은 저금통에 모인 성금을 희망의 사다리로 기부하겠다고 했고,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아닌 다른 가정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어 장도 보고, 음식도 함께 나눕니다.
지역의 병원도 동참하여 저소득층 소외아동에 대한 건강지킴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폭력피해 학생에 대한 긴급 의료지원과 소외아동 주치의가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152명의 아이들이 무료검진을 받았고,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소율이는 치료비가 없었지만, 병원에서 치료비를 감면받고, 지역주민이 희망의 사다리 운동으로 적립한 성금을 통해 다시 건강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17개나 되는 마을단체들이 모여 방과 후 청소년 생활지도 순찰대를 조직해 학생 폭력 및 탈선 예방을 위한 보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어머니들로 구성된 녹색어머니회, 학부모회 등이, 밤늦은 시간에는 아버지들이 주축이 된 청년회, 자유총연맹, 좋은아버지모임 등이 아파트 주변 놀이터, 오락실 등 아이들의 비행이 잦은 으슥한 마을 곳곳을 순찰합니다. 가출한 아이들을 위해 주민들은 따뜻한 밥과 함께 쉼터로 가정을 내어주기도 하고, 주민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지역의 동사무소와 복지기관의 힘을 빌려 해결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가출한 영철(가명)이의 경우는 그 한 사례입니다. 영철이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가정경제는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어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회의를 열어 친구집을 전전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영철이를 일단 마을 주민 가정에 5일간 긴급보호하고 안정을 취하게 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경찰지구대는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력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복지관은 지속적인 경제적 후원 책을 강구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집으로 들어간 영철이는 아버지의 거듭되는 폭력으로 다시 가출했고 결국 영철이는 아동학대예방센터를 통해 장기 쉼터로 생활터전을 이전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희망의사다리운동으로 모인 성금을 영철에게 일시생활비로 지원하고 동사무소의 협조를 통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도록 했습니다. 반송 지역주민의 힘으로 영철이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지역사회의 학교와 복지기관, 공부방들도 식사지원과 학습지도를 병행하는 방과 후 공부방 사업의 운영규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식사와 학습지도 외에도 다양한 공동체 활동과 문화체험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역사회의 '우리마을 잘알기'라는 학부모 동아리에서는 아이들이 반송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체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집을 제작해 학교수업에 보조교사로 참여합니다.
또 미용실, 음식점, 목욕탕, 주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이 반송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지역주민의 관심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과 작은 쉼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이 일도 지역주민의 힘으로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다들 무한 경쟁 시대라는 변명을 하며, 제 자신과 아이의 성공만을 위해 노력하는 무시무시한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우리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전통 공동체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일류대를 나와 돈많이 받는 일류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돈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삶을 살지, 과연 행복한 삶을 살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벌한 경쟁의 사회에서 불행한 패배자로 키우기보다 서로 나누고 아껴주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소박하지만 희망을 꿈꾸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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