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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한포기 이웃과 나누며…가족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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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한포기 이웃과 나누며…가족을 생각하며…

[전태일통신 51] 서울 방학동의 '한가족 되기'

북한산 아래 방학동 끝자락. 판자와 벽돌 등으로 얼기설기 만든 단칸방에 사는 70세 이 씨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는 어르신들 두 분만 사는 노인가정입니다.

자녀들이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거리상의 문제 등으로 가끔씩만 왕래할 뿐 생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큰아들은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지방으로 일을 하러 간다며 떠났습니다. 두 딸도 있으나 제 식구 챙기기에도 벅차다고 합니다.

부양의무자가 있기에 할머니는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채 자녀들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정부의 보조금보다는 매월 꾸준히 들어가는 진료비와 약제비 때문에 수급자로 선정되어 의료보호 혜택을 받길 원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퇴행성 관절염과 고혈압, 당뇨를 앓는 가운데 특히 관절염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서 집안생활이 매우 힘들었고, 할아버지는 건강하신 편이었으나 역시 고혈압으로 꾸준한 혈압관리와 약 복용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 섬들모임 정기모임 시간에 마을축제 때 장명루 만들기 마당 진행 준비 모습. ⓒ프레시안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두 분 가정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러했듯이 지역의료인모임과 아버지모임 '도우기' 대표님, 섬들모임 대표님들과 각각 만나 상의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병원을 찾아가 진료받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동네의 가정의학과 원장님이 정기적으로 할머니 댁을 방문하여 진료하고 상담하기로 했습니다.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던 약국에서는 처방되는 모든 의약품을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안부를 점검하는 동네 여성모임인 '섬들모임'의 한 회원과 연결된 뒤에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처럼 수시로 방문해 안부를 여쭙고 집안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또한 간단한 건강점검(혈압, 혈당)도 진행한 뒤 가정에 비치된 건강관리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 여성활동가는 얼마전 섬들모임의 정기교육을 통해 한 동네 성당에서 활동하는 가정방문 간호사를 초청하여 간단한 건강점검기기 사용법도 배웠고 어르신의 건강관리와 관련된 내용도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건강점검 기록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긴급상황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것입니다.
▲ 마을축제 때 섬들모임이 진행한 장명루 만들기 마당(좌), 섬들모임 정기모임 시간에 신입회원에게 선배회원이 가정용 건강점검기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우). ⓒ프레시안

얼마 뒤 동네 아버지들로 구성된 '도우기' 모임의 회원들이 어르신 댁을 방문하여 집안환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전기합선의 위험이 있던 낡은 전선, 다리 사용이 불편한 어르신 부엌의 싱크대 높이를 낮추는 일, 휠체어로 바깥 출입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진입로를 다지는 일, 퇴행성 관절이 있는 할머니가 거동하시는 것이 힘든 상황임을 파악하고 방과 화장실 등 곳곳에 안전바를 설치하였습니다. 이날 방문한 도우기 모임의 회원들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들로 설비, 전기, 페인트 등의 일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은 물론, 평범한 직장인, 은행원 등으로 구성된 아버지모임 회원들이셨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누워서만 지내는 할머니. 예전에는 하루종일 사람구경 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한 주에 한 번씩 약은 잘 먹고 있는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살펴보는 이웃 아주머니가 찾아오고 한 달에 한 번씩 아랫길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찾아와 진료도 해 주고 약도 처방해 주기에 든든하고 외롭지 않다고 하십니다. 또한 잊을 만하면 동네 아저씨들이 찾아와 떨어져나간 방충망도 손봐주고 망가진 라디오도 수리해 주고 급할 때면 큰 병원에도 데려가는 이웃이 생겼습니다. 어느날은 할머니가 중국집 식당에서 일하는 딸에게 부탁하여 자장 한 양동이를 얻어와 집에 찾아와 준 이웃들과 막걸리 한 사발씩 돌리며 맛있게 나눠먹기도 하였습니다.

몇 년 뒤 다행히도 이 씨 할아버지 가정이 수급자로 선정되어 큰 걱정을 덜었습니다. 지금도 섬들모임의 어머님 활동가는 꾸준히 방문하면서 깊은 관계를 맺어 오고 있습니다.
▲ 섬들모임 어머니들이 평상시 가깝게 지내며 이웃하는 동네 어르신들과 나들이 떠나는 모습. 이날 비용은 모두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마련한 비용으로 마련됐습니다. ⓒ프레시안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는 이처럼 이웃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친척이나 가족처럼 섬기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효플러스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모임들입니다. 의료인모임은 지역 내 의사, 약사 등으로 한자리에 모이지는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이웃을 위한 가정방문진료, 의료상담, 약품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아버지 모임 도우기는 다양한 직업과 특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동네의 아버지로서 집안의 여러 손볼 일들이 필요한 가정을 찾아 살피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섬들모임 또한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 등 가정 곳곳을 찾아 안부 전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가끔 나눔 활동을 주변 분들에게 권유하면 '내 가족들도 못 챙기는데…' 하며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 시간에 우리 어머니에게 전화 한번 더 하지 뭐' 하면서 '당신 부모님께 더 잘해'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답변이 궁색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만나 뵙는 어르신에게도 잘하면서 우리 어머니에게도 더 잘하게 되더군요. 어르신 뵈면서 그 이야기 듣고 있으면 어르신에 대한 이해도 되고 똑같은 우리의 모습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들의 생각도 이해하게 되면서 가족이 더욱 가까워지게 되지요. 요즘은 길 가다 마주치게 되는 어르신들이 다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 분들이 계신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섬들모임 대표 김수경님의 말입니다.
▲ 도우기 아버지들이 함께 모여 동네 반지하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 집수리 진행하는 모습. ⓒ프레시안

섬들모임에 참여하고 계신 이미애 님이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이웃하시던 분이 섬들모임 활동하는 것을 보고 큰마음 먹고 참석하시게 되었는데, 혼자 오기 무엇하여 그 이웃분과 두 분이 함께 오셨지요.

처음 몇 회간의 교육 후 어르신 댁 방문할 때에는 역한 냄새에 구역질도 하시고 어르신의 이런저런 말씀에 마음 상하기도 하셨습니다. 몇 달 방문하고 나시더니 곧 익숙해지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방문하시던 할머니께서 허리가 아프셔서 꼼짝을 못하실 만큼 많이 편찮으셨다고 합니다. 방문했을 때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볼일까지 보신 상태라 이미애 님도 깜짝 놀랐고 할머니도 그 모습이 부끄러워 '애기엄마, 가! 나 내버려두고 그냥 가!, 괜찮아!' 하셨답니다. 할머니 씻겨드리면서 눈물도 주르륵 흘리셨다는데요, 나중에 할머니 동생 분에게 그때 할머니도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웠었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 이미애 님이 죽도 끓여서 찾아뵙고 나중에는 남편하고도 같이 방문해 안부 전하고 했답니다.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근처 갈 일 있으면 병원에도 오가다 들러 할머니께 안부 전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이 지역사회와 늘 함께 한다는 것은 지역 안에 어려움(문제)이 생겼을 때 지역사회가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복지기관이 특별하게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스스로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이웃의 관계, 이웃의 관심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입니다.

식사를 못하시는 어르신에게 '도시락 배달 서비스'와 같은 형태의 도움도 좋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비스나 사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좋은 심성을 북돋우고 살리는 일에 힘쓰자는 것이지요.

그러한 노력의 결과들이 도우기나 섬들모임을 통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섬들모임 김수경, 이미애 어머니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는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개인들이 활동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됩니다.
▲ 도우기 아버지들이 마을축제 때 팔씨름 마당을 맡아 진행하는 모습(좌). 동네분들이 방아골복지관에 모여 마을축제 진행을 위해 회의하는 모습. 도우기, 섬들모임 대표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축제를 준비했습니다(우). ⓒ프레시안

아무튼, 이러한 작지만 소중한 풀뿌리 실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지역사회가 문제에 직접 개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system'를 만들어 줌으로써 마주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게 되고, 해결의 경험들이 꾸준히 쌓이면서 다른 다양한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결국 이런 활동들이 축적되어 지역사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받아야 할 특별한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가 일반 주민처럼 생활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일반 주민들에 대해서도 사회참여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방학동 도깨비 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도병욱 가정의학과의 도 원장은 동네 홀몸 어르신의 가정을 매주 수요일마다 방문하고 계십니다.

왕진비용을 드린다고 해도 방문 진료를 받기란 쉽지 않은 요즘, 도병욱 원장의 이런 활동은 나눔활동이란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일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도병욱 원장도 예전에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에서 '진료행사'에 참가하곤 하셨답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을 통해 얻은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그러한 활동이 오히려 봉사활동의 대상과 자신을 구분 짓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우연한 기회에 방아골 복지관과 인연이 닿아 병원이 위치하고 있는 동네의 홀몸 어르신 가정을 복지사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방문해 진료하고 안부 전하는 일을 시작했고 그 활동이 깊어지면서 점심시간을 30분이나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6년째이고 단 한 번의 쉼도 없었습니다.

도우기 모임의 신승갑 회원은 도깨비시장 중간에 위치한 작은 설비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도우기 활동을 하고 있던 다른 회원의 소개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은 봉사활동이 목욕이나 나들이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술과 자신의 일터를 통해 이웃을 섬기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합니다.
▲ 도병욱의원 도병욱 원장이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때 마다 동네에서 혼자 지내는 어르신 댁을 직접 방문해 진료하는 모습(좌). 동네 생활형편이 여의치 않은 분들의 필요한 약품이나 섬들모임 또는 도병욱 원장의 활동 시 필요한 약품을 지원하는 기분좋은 약국 장영숙 약사(우). ⓒ프레시안

이처럼, 나눔활동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과 이어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야 합니다. 부담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별한 것이어서도 안됩니다.

방학동에는 자신의 일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섬기는 일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0명 머리손질하면서 한 분 정도 그냥 해드리는 미용실 원장님, 열 명, 백 명 손님 맞이하면서 한 분 정도, 한 가정 정도는 초대하여 대접하는 식당 사장님, 그렇게 한 어르신 정도 필요한 파스 붙여드리는 약사님, 김치 담글 때 한 포기 더 해 옆집 할머니 댁 전해드리는 어머니들….

도우기는 내년에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손쉽게 고치거나 점검할 수 있는 집수리와 관련된 기술을 배우는 공방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도우기 회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동네 분들께 전수하는 '마을공방'입니다. 마을공방 1기를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열고 참여자는 지역주민들 중 관심 있는 분들을 모으고, 특히 집안 손보는 일을 힘들어 하는 한부모 여성가장, 청소년, 집안일 해본 경험이 없는 아버지들을 모아 함께 배우고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마을공방을 수료한 분들을 중심으로 신규 도우기 회원을 모집할 생각도 있습니다.

건강한 지역주민 관계란 서로가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라고 했지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 이웃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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