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저명한 북한 전문가인 개번 매코맥 호주 국립대 교수가 24일 부산에서 열린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북 핵실험 이후 동아시아의 평화실험'에서 발표한 '북한문제'라는 논평문의 주요 내용이다.
매코맥 교수는 이 글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정치적 배경을 짚은 뒤 핵개발 문제 외에 위조지폐·인권 문제 등을 들이대며 북한의 붕괴를 꾀했던 미국의 정책이 결국 사태를 핵실험이라는 벼랑끝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매코맥 교수는 또 국제 핵 레짐의 부당성, 그에 따른 이란과 북한의 위기감 등이 핵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며 지구상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에 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북한문제'로 불리는 핵 및 불법행위 문제가 실은 북한을 무릎을 꿇게 하려는 미국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미국의 고립이 9.19공동성명을 가져왔다"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반응은 분노, 저항, 제재강화 같은 강경한 것이었다. 북한의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 일색이었다. 북한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취한다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북한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들이 유포됐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북한문제는 북한이라는 '불량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이고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문제이고 국제 핵 레짐의 문제이기도 하며 유엔·한국·동북아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아주 부적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루즈벨트가 1941년 당시의 '불량국가'인 일본에 대해 취했던 강경한 정책이 성공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를 돌아보자. 강대국들은 핵보유 의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국가들에게는 핵을 보유하지 말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강대국들은 핵을 보유하면서 그것은 국가 안보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북한과 이란의 무핵시대는 61년째를 맞고 있다. 이 나라들은 핵무기도 없고 핵우산의 보호도 받지 않아 스스로 취약함을 느끼고 있다. 특히 북한은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북한은 자체의 억지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핵보유국에 속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국제사회의 감시를 수용했던 1994년부터 2003년까지의 시기를 제쳐두고서라도, 그 후 보여준 북한의 태도가 불합리한 것이었나? 2003년 9월부터 2005년 9월까지 6자회담이 열렸지만 각각의 나라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다.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외에도 '징벌의 연합'을 동원해 체제 전복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오랫동안 취해졌던 제재를 극복하고 주변국 및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관심이 있었다. 일본, 중국, 한국 ,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추구하면서도 그 문제의 역사적 뿌리와 북한이 요구하는 바의 정당성을, 수준은 다르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약 2년 동안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북한은 미국이 대화에 응하기만 하면 단계적으로 핵을 동결할 것이고 대신 제재를 완화하고 관계정상화를 추구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같은 요구를 무시하고 무조건 양보하고, 'CVID(환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만 요구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국제 여론은 북한에 대해서만 비난을 하고, 북한은 비합리적이고 협박만 하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협박만 하고 고립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은 다른 협상국들로부터 들어오는 압력을 받는 동시에 도덕적·외교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징벌의 연합을 만들고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기 위해 고안된 6자회담은 반대로 한국·중국·러시아가 미국을 압박하는 구조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6자회담은 진정으로 다자적인 포럼이 됐다. 북한은 2005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진행된 6자회담에서 미국이 자신을 우호적으로 대하고 자신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만 하면 단 한 개의 핵무기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소 완화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주도권은 한국과 중국으로 넘어가게 됐다.
6자회담의 핵심 문제는 북한의 민수용 핵에너지 보유 주장이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그 권리를 보장하는데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북한 역시 그같은 권리가 있다고 봤다. 일본마저 그같은 필요성을 인정하자 미국 강경파들의 입지는 좁아졌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과 더 이상의 옵션 부재 상황이 오자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던 전권이 한중러 3개국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었다. 북한은 불법적이지도, 비합리적이지도 않았다.
강경론자들의 저항…'이중 잣대'의 유엔
하지만 9.19공동성명이 체결되자 미국의 강경론자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북한에게 민수용 핵개발을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2003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체니 부통령이 제안했던 '불법활동이니셔티브(IAI)'는 핵문제 외의 다른 문제를 제기하게 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작전계획 5030을 발표해 북한에 대한 공격을 암시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북한 정권 자체를 문제 삼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이 무기를 수출하고 마약을 밀매하고 화폐를 위조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움직임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상황을 기억해보자. 미국은 여러 가지 정보와 정찰 내용을 조작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농축도 미국이 조작했다는 혐의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화폐 위조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위폐를 만들었다고 해도 미국에 그리 큰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공격 위협도 증가됐다. 북한 인권법이 통과됐고 림팩(환태평양 훈련) 군사훈련되 시작됐다. 7대의 이지스함이 추가로 배치됐고, 1300km 사정거리의 토마호크 미사일도 일본에 배치됐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은 미국의 이같은 위협 속에서 감행된 것이다.
유엔의 역할은 어땠는가.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은 한국에 대한 유엔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나. 유엔은 지난 7월과 10월 북한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서 북한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다시 미국과 일본에게 주었다. 우호적인 국가를 확보하지 못한 북한에 대한 국제 언론의 호도는 쉬웠다.
유엔 결의안의 도덕적인 신뢰는 있었나?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한지 3일 후 인도에서, 6일 후 미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있었는데 유엔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2003년 불법적으로 자행된 이라크 공격때 유엔은 무엇을 했나. 올 여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때는 무엇을 했나. 눈을 감았을 뿐이다.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같은 국제 핵 레짐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을 공격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과 미국 중 누가 더 위협적인가. 이런 질문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영국 사람들도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북한문제는 사실 미국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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