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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는 '흡혈형사 나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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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는 '흡혈형사 나도열'?

[전태일통신 44] 방송사들의 비정규직 실태

<흡혈형사 나도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루마니아로부터 날아온 흡혈모기에 물린 다음부터 나도열이란 형사는 색기 흐르는 여자만 보면 천하무적 흡혈귀로 변해 슈퍼맨처럼 활약한다는 '웃기는' 희극영화다.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요소도 적당히 가미하고 요즘 영상물에 신물나도록 넘쳐나는 여자벗기기도 볼거리로 끼워넣어 솔찮은 사람들이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위원회의 조사연구 프로젝트를 받아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가 실시하고 있는 방송3사의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그 흡혈형사가 떠올랐다. 사실 방송3사는 흡혈형사 나도열과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방송3사는 각종 고발과 심층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고발한다. 천하무적까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지나쳐 이른바 언론권력이 된 지 오래이다. 거기다 드라마나 오락연예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을 앞세워 시시때때로 여자들 옷을 벗기고 선정성 시비까지 일으킨다. 분명히 방송사 주파수는 만인이 향유해야 하는 공공재임에도 연예인들 신변잡담이나 어이없는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소수를 즐겁게 한다. 그 바람에 텔레비전에 바보상자라는 명칭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기업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 골치아픈 정치와 사회 문제에 무지몽매한 우중(愚衆)이 인기 연예인들이 입고 쓰고 먹는 상품은 미친 듯이 사주니까 말이다.
▲ 드라마 야인 촬영현장 ⓒpropersona@naver.com

모든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 일하는 사람들이다. 농산물이건 옷이건 자동차건 그렇다. 마찬가지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외계인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들이다. 기자, 피디, 작가, 촬영피디, 미술 음악 의상 등 각종 전문인력, 기술인력 등등과 이들을 보조하는 에이디, 에프디, 심지어 경비, 운전, 청소에 종사하는 분들까지 수많은 직종의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협력해야만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좋은 내용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헌신이 녹아들어 있는지 안다면 프로그램을 보는 맛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송 프로그램이 사실은 수많은 방송 종사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3사는 사실 흡혈 형사가 아니라 진짜로 흡혈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외딴 섬에 팔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방송 뉴스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낸 바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방송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 그같은 비참한 반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믿기는 일일까.

한 국회의원이 KBS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KBS에는 정규직이 5400명, 비정규직이 33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맨 처음 방송사에 들어와 일하는 자료조사원, 에프디, 행정보조원 등등은 아예 근로계약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은 최고 1주일에 137시간이나 일하고 받는 평균임금은 60만~90만 원 정도다. 그나마 시간외수당으로 받는 돈이 절반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라.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최저임금도 못받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있다면 이것이 지금 21세기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들은 방송사의 생리상 절대 권한을 휘두르는 담당 피디에게 항의조차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일할 뿐이다. 피디의 한 마디면 그걸로 해고되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바로 방송업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강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사의 하청구조라고 할 수 있는 독립프로덕션으로 내려가면 실상은 더욱 심각하다. 사실 방송3사의 정규직 피디가 이들 독립프로덕션에게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사용자다. 그러니 이 착취의 사슬 아래 온갖 비리와 부정의 독버섯이 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aviddv@naver.com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방송 일에 부나비처럼 뛰어들어 이런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화려한 내일을 꿈꾼다. 이들 가운데 얼마나 정규직이 되고 얼마나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방송3사 정규직들과 피디들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송3사 노조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진실로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과감하게 몸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 않는 어떤 노력도 솔직히 공범자의 생색내기와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방송3사가 내거는 '국민의 방송', '세상을 향한 넓은 창', '함께 가요 희망 코리아'라는 구호가 참으로 낯간지럽기만 하다.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제도조차 아예 무시하는 방송3사가 어찌 법을 운위할 수 있으며 이런 구호를 버젓이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로마의 노예선은 갑판 아래 어두침침한 곳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을 에는 채찍질 아래 노를 젓는 노예가 있기에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로마의 노예선이, 루마니아의 흡혈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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