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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서워 받아 적을 수 조차 없었다"

피살된 러시아 여기자의 생전 인터뷰

한 러시아 여기자가 모스크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지난 달 7일 무참히 살해됐다.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Anna Politkovskaya·48)라는 이름의 이 여기자는 체첸(Chechenya)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러시아군의 잔학 행위를 있는 그대로 자신이 소속한 신문 <노바야 가제타(Novaya Gazeta)>에 보도해 서방 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살해 동기는 수사가 진행돼 봐야 알겠지만 최근의 체첸 보도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기자연맹(IFJ: 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은 성명을 발표하고 범인을 조속한 시일 내에 붙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라고 러시아 당국에 촉구했다.

러시아 정부군에 의해 저질러진 광범위한 민간인 인권유린을 고발하다 살해당한 폴리트코프스카야를 기리며 지난 2001년 영국에서 발행되는 <프레스 가제트(Press Gazette)>에 실렸던 생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미디어월드와이드> 11월 호에 실린 글을 재단 쪽의 양해를 얻어 다시 싣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받아적을 수도 없도록" 끔찍한 체첸 상황을 증언하면서도 자신이 취재를 위해 겪었던 갖은 고초들에 대해서는 "나는 기사를 쓸 따름"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편집자>

<"나는 기사를 쓸 따름이다"> - 살해된 러시아 여기자의 마지막 인터뷰

이안 리브스(Ian Reeves) 기자는 지난 2001년에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를 인터뷰했었다. 당시 그녀는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저지르고 있는 잔학 행위를 충격적으로 보도해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녀는 2년 전에도 베슬란(Beslan) 학교의 포위 공격을 취재하러 가는 과정에서 수상한 독극물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국제적인 분노와 함께 노바야 가제타 신문의 용기 있는 보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그녀를 살해했다는 공포가 일고 있다. 다음은 그녀와 리브스 기자가 했던 인터뷰다.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했던 현장

"내용이 너무 무서운 것이어서 취재 수첩에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묘사한 체첸 마을 주민들의 비참한 처지였다. 전쟁으로 찢긴 먼 도시 체첸은 이렇게 러시아군에 의해 감금당하고, 고문당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취재를 시작할 당시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체첸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폴리트코프스카야의 <노바야 가제타>는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신문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치열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 같은 원칙에 따라 코투니(Khottuni)의 90가구가 겪은 비참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편집 간부들은 독립적으로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기사를 보류했다. 자체적으로 알아본 결과 사실이었다.

러시아군은 시골 마을을 정기적으로 습격해 '아치스트카(Achistka)'라고 알려진 소위 소탕 작전을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작전의 목적은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체첸 전사들을 색출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지역 주민들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약탈하고, 집에서 몰아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을 때는 가족 중에서 남자나 여자를 데려가 인질로 삼았다. 잡혀 있는 동안 체첸 주민들은 짐승 같은 고문을 당했다. 많은 경우 좁은 구덩이에 2주 정도 갇혀 있었는데, 구덩이는 무거운 통나무로 막아 똑바로 설 수가 없도록 했다. 인질들은 병으로 맞기도 하고 손톱을 뽑히기도 했다. 많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벙어리장갑'이라는 것이 있다. 한 쪽 손의 손가락은 전선 끝에 부착돼 있고, 다른 쪽의 전선은 오른손에 부착돼 있다. 전선을 통해 전기가 흐른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지난 2월 이 지역의 방문 허가증을 받아냈다. 인간성이 있어 보이는 지역 사령관은 그녀를 데리고 구경을 시켜 주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의 명백한 증거들을 볼 수 있었다. 지역 사령관은 구덩이는 체첸 반군을 붙잡아 둘 때만 사용하고 마을 사람들을 가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려 깊었고 내가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내 팔꿈치를 붙잡았다. 나는 묘사된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포로들은 소변과 함께 대변도 구덩이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생전 모습.ⓒ뉴시스=로이터

주재기자 없는 체첸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곧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사실을 강력하게 입증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구덩이를 몇 분 동안 둘러보는 사이 다른 일단의 군인들이 접근해 왔다. 그녀는 1시간 이상 동안이나 행군하는 군인들 가운데 갇혀 있었다. "그리고는 전투병들이 가득 탄 장갑차가 도착했다. 그들은 나를 붙잡아 개머리판으로 윽박질러 태운 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녀는 그 다음 며칠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 "혐오스러웠다", "아주 추잡했다"라는 말 이외에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체첸 주민들이 나에게 들려준 고문과 비참한 대우 등 모든 것에 대한 주요 증거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러시아군은 그녀의 아이들 사진을 발견하고 그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기까지 했다.

중령 한 사람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음악을 틀면서 그녀에게 "좋아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거부했다. "그러자 그는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나가자. 너를 쏴 버리겠다.' 그는 나를 텐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칠흑같이 어두웠다. 짧은 거리를 걷고 나서 그가 말했다. '준비됐는가? 나는 준비가 됐다.' 갑자기 큰 소음이 나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찢었고 불꽃이 일었다." 그녀 옆에다 박격포를 발사한 것이었다.

세계언론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초 런던을 방문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아직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잊는다고? 아니다. 두려움을 없애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당신이 사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날 밤,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한 장교가 걸어 들어와서 말했다. '유명인사인지 몰라 봤다.'"

"내가 돌아와서야 무엇이 나를 구했는지 알게 됐다. 내가 군인들에게 체포됐을 때 마을 주민들이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실히 보았다. 그 다음 그들이 한 일은 정말 영웅적이었다. 그들은 군대 초소 몇 곳을 걸어서 통과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전화기로 사태를 알릴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타의 모스크바 사무실에 상황을 전달할 수 있었고, 신문사는 즉각 당국에 압력을 넣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더라도 체첸에 주재하는 기자들이 없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첫 전투 때 많은 기자들이 사라졌지만,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그녀와 지난 해 투옥됐던 안드레아스 바비츠키(Andreas Babitsky)에게 그랬던 것처럼 군인들이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겁을 주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한다. 군인들은 항상 똑같은 말만 한다. 그들은 같은 말을 나와 바비츠키에게도 했다. '우리에게 협조하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주민들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비판 언론에 항상 위협

그리고 그것은 단지 군인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에 2번, 70만 부씩 발행하고 있는 그녀의 신문은 특히 체첸을 포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로 인해 항상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정부 당국의 압력 가운데 많은 부분은 광고주들에게 가해진다. 예를 들어 최근 벌어진 러시아 텔레비전 <NTV>와 정부와의 갈등에서 <노바야 가제타>는 기자들을 지지했다. 그 결과 많은 <노바야 가제타>의 광고주들이 영업 정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광고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그들은 결국 광고 계약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세무 공무원도, 이 신문을 견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인데, 경리 장부를 수시로 점검한다. 일 년 내내 세무 조사원이 <노바야 가제타>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무 관계 서류를 뒤적이면서 앉아 있다. 결국 회계업무는 마비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기자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양심의 선택 문제다. 우리는 어린이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력과 개인 생활에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강도를 이해하고 있다."

"충격적인 불법행위", IFJ 성명

어쨌든 그녀는 상황이 항상 완전한 흑과 백은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군인도 있고 나쁜 군인도 있듯이, 좋은 장관도 있고 나쁜 장관도 있다는 것. 체첸 지역 러시아군 기사가 나간 몇 주 후 그로즈니(Grozny)의 한 광장에 그녀는 서 있었다. 한 장교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의 기사를 읽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 따라 가보니 바로 한 장군이 다가왔다. "당신 기사를 보고서 당신을 쏴 죽이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핵폭탄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는 기사를 쓸 따름이다. 이런 행동은 기자 업무에 대한 과장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국제기자연맹(IFJ)은 모스크바의 여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Anna Politkovskaya)의 살해는 "전 세계의 기자들을 경악시키는 충격적인 불법행위"라고 비난했다. IFJ는 이번 살해가 러시아 언론을 압살하기 위한 위협으로, 무법천지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IFJ는 또 살해범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하라고 촉구했다. "러시아 당국은 신속하고 강력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우리의 동료를 누가 죽였고, 그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애이던 화이트(Aidan White) IFJ 사무총장은 말했다.

<노바야 가제타> 기자인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체첸에서의 러시아군 인권유린 보도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명성과 신랄한 보도는 러시아 당국에게는 목의 가시였다. 2004년 베슬란 학교 포위공격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발생한 식중독으로 건강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목숨을 노린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녀는 저물어가는 소련 연방에 나타난 가장 용감한 기자였다"고 화이트 사무총장은 말했다. "그녀는 사방으로부터의 위협에 맞섰고 국내와 해외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의 죽음은 전 세계 언론을 놀라게 한 충격적인 불법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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