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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 유보…'살얼음판'…한숨 돌릴 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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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 유보…'살얼음판'…한숨 돌릴 때 아냐

미국 입장 여전히 완고…한국이 힘 보탤 때

20일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을 매개로 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간접대화'는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얼마나 완고한가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는 계기였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원칙은 다음의 6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핵개발·핵실험 등 악행(惡行)에 대한 보상은 없다. 둘째,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한다. 셋째, 북미 양자회담은 6자회담 내에서만 가능하다. 넷째, 금융제재는 법집행 차원의 문제로 6자회담과 무관하다. 다섯째,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철저히 이행돼야 한다. 여섯째, 안보리 결의안 이행에서 중국과 한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라이스 장관은 이 원칙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냉정'과 '신중'을 주문했고, 탕 국무위원은 "미국이 더 적극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길 희망한다"고 요구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최고위 인사들과 만나 중국 측의 당부를 들었을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을 만나서는 "대북 금융제재 해제는 할 수 없다", "중국이 (북한과의) 국경을 빈틈없이 통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암시하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 유보 약속에 대해 "놀랄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연합뉴스

라이스, 북한 핵실험 유보에 "놀랄 것 없다"

김정일 위원장은 19일 평양을 방문한 탕 위원을 만나 "추가적인 핵실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6자회담을 계속 하고 싶지만 금융제재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점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 핵실험을 안 하는 '양보'를 하겠으니 금융제재를 풀면 6자회담에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의 전형적인 대미 협상 전술이다. 벼랑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밑에 전선을 그은 후 그 선을 기준으로 양보와 타협을 논하자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그은 기준선은 추가 핵실험이다. 따라서 그 선을 넘지 않겠다는 것을 양보로 삼은 이상 그간 서로에게 양보를 요구해 왔던 금융제재는 기준선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졌으므로 당연히 풀어줘야 한다는 계산법이다.

하지만 그런 계산법이 통하던 시절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던 6년 전에 이미 끝이 났다. 라이스 장관에게 '추가 핵실험은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은 양보가 아니었다.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당연한 일'이고 기준선은 여전히 금융제재에 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앞쪽에 있는지도 모른다.

라이스 장관이 "북측으로부터 특별히 놀라울만한 것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AFP통신의 보도는 미국이 북한의 추가 핵실험 유보 입장에도 불구하고 어떤 전향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또 한번 확인된 북미간의 불신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먼저 해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6자회담에 나오기만 하면 '잠들 때까지' 양자회담을 할 수 있다"며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양자회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제재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혹은 체제 붕괴 시도라며 반발하는 북한이 6자회담 틀 밖에서의 회담만 고집하는 것은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기 힘들다. 6자회담 틀 자체를 무시하지 않아 왔고 최근에도 '6자회담은 우리가 더 하고 싶다'고 말해 놓은 마당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 역시 양자회담을 할 수 있다면서 왜 굳이 6자회담 틀 내에서만 가능한지에 대해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미 양측이 이같은 고집을 부리는 데에는 서로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가로놓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계산법으로 핵실험까지 내달려 온 북한과 자신들의 원칙에서 어떤 유연함도 보이지 않는 미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그 동안 불신의 골은 계속 깊고 넓게 패여 왔고, 이번 '간접대화'를 통해서도 그 골을 좁힐 방도 또는 우회로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추가 핵실험 유보는 한국이 움직일 공간

이 불신의 골을 메워주는 역할은 한국과 중국의 몫이었고 이번 핵실험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무가 두 나라에게 지워졌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말 그대로 '핵폭탄'을 맞은 한국은 안보리 결의안 채택과 라이스 장관의 동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별다른 외교적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개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라는 3대 이슈에서 한국의 입장을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북미간 중재를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안보리 결의에 찬성하며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발을 맞추는 한편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제한적인 제재 시행이라는 원칙을 세운 후,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워싱턴과 모스크바, 평양에 파견해 중재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

중국은 이를 통해 비록 극적인 타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추가 핵실험 유보 약속을 받아내면서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성과는 얻지 못했고 따라서 이제는 한국도 힘을 보탤 때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대북 제재 쪽으로 조금씩 발을 담그는 대신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외교적 창의성을 발휘해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추가 핵실험 유보 약속으로 그같은 노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선례에 따라 북한에 특사를 보내거나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안하는 등의 방법으로 우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핵실험 이후 잠정 중단한 수해복구 물자 북송을 재개하는 등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를 하나씩 취해가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유도할 수 있는 전향적인 내용이 담기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일도 긴요하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문제라면 한국이 '접근방안'의 이행을 보증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안도하기엔 촉박한 시간

15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 후 일본과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했던 라이스 장관은 21일 러시아 방문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번 순방에서 보여준 라이스 장관의 태도로 미뤄볼 때 미국은 곧 구성될 유엔 제재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북 제재 조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PSI 참여와 중국의 안보리 결의안 전면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유엔 등 외교 채널을 풀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북한의 핵실험 유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고 "미국의 동향을 주시하고 그에 따라 해당한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밝힌 17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 따라 행동할 게 분명하다.

이렇게 핵실험 유보 약속이 깨지면 그 때는 중국도 운신할 여지가 사실상 없어진다. 한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도 그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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