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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관심이 좋은 성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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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들의 관심이 좋은 성적을 만듭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0/16] 정현숙 '2006 아시안게임' 선수단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의 기적을 낳았던 정현숙, 이에리사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2.5그램의 작은 공을 놓고 명콤비를 이뤘던 두 여전사는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지금... 두 선수가 다시 뭉쳤습니다. 이에리사 선수가 지난해 태릉 선수촌장으로 임명된데 이어 이번에는 정현숙 선수가 지난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단장으로 선임된 것입니다. 사라예보의 영웅이자 한국 여자탁구의 전설로 남았던 두 선수의 재결합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 거는 기대도 한껏 커졌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한국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여자단장에 선임된 정현숙 단장을 초대했습니다. 여성단장으로 선임된 소감과 그녀의 포부를 들어보고, 아시안게임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은 무엇인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제15회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선수단 정현숙 단장입니다

정현숙 단장은 1952년 서울출생으로 동덕여중 1학년때부터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동덕여고 2학년 때 주니어대표로, 고3때부터는 국가대표로 활약했습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 단체 금메달을 딴 데 이어, 1974년 제7회 테헤란 아시안게임 여자 개인단식 2위 1975년 캘커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대한탁구협회 홍보이사를 지냈고, 현재는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9월27일, 오는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선수단 단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큰 직책을 맡으셨는데 기쁘기도 하고 어깨도 무거우실 것 같아요.

정현숙 :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잠깐 기뻤는데 그 이후부터는 걱정이 더 많아서 부담이 됩니다.

박인규 : 여성이 단장으로 임명된 건 처음이죠?

정현숙 : 네. 아시안게임, 올림픽 여성 단장은 처음이고, 처음이다 보니 제가 이렇게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으로 선임되시고 나서, 언론보도에서 태릉선수촌 촌장은 이에리사 선수, 아시안게임 단장은 정현숙 선수니까 왕년의 명콤비가 다시 뭉쳤다고들 하던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정현숙 : 예전에 사라예보 생각이 많이 났구요. 다른 사람이 촌장으로 있는 것보다도 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놓이구요. 이에리사 촌장과는 탁구할 때 굉장히 호흡이 잘 맞았던 상대거든요. 그래서 어떨 때는 말을 안 하고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읽을 수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뭔가 서로 의견일치가 있어서 선수단을 이끄는 데 좀 쉽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어젠가 통화를 했는데 요즘 선수촌장은 태릉에서만 선수들이 훈련하는 게 아니고 촌외훈련도 하는 종목들이 있거든요. 요트는 부산에서 하고.. 그래서 지방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선수들 훈련하는 걸 살피고 격려도 하고, 지금 많이 바쁩니다.

박인규 : 이에리사 선수가 태릉선수촌장으로 선임된 것도 작년인데, 갑자기 최근 들어서 여성들이 체육행정 쪽 고위직책으로 많이 진출하신다고, 시대적 유행인가 하는 얘기도 있는데 어떤 배경이 있나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정현숙 : 먼저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반면에 체육계는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어찌 보면 체육계는 타 분야와는 좀 다른 것이, 우선 선후배가 확실하고. 예전에 여성 선수들을 가르쳤던 분들이 다 남자였고, 어떤 분야보다도 결혼하고 나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선수 지도를 한다고 하면 같이 합숙을 한다든가 외국을 나가야 되고, 이런 부분에서 육아, 가사 등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중간에 많이 포기했고.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름대로 계획을 잘 하고 있죠.

박인규 : 사실 1967년 세게 여자농구 선수권대회 은메달과 사라예보를 비롯해서 체육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은 여자분들이 이뤘는데 체육행정은 상당히 늦었어요.

정현숙 :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을 여성 스포츠인들이 많이 했구요, 그렇다고 그동안 집행부나 체육회, KOC에 여성들이 임원으로 안 들어가 있었던 건 아닌데 실질적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못했던 부분도 있어서, 한편으로 보면 여성을 뽑아 놓으면 활동이 실질적으로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어요. 그래서 요즘 보면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으로 제가 소개되면서 한국여성스포츠회가 많이 소개됐는데 그런 쪽에서 예전의 메달리스트, 선수 출신들이 모여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어떤 자리가 주어졌을 때 엄청난 일은 안 해도 우선 얼굴을 많이 보여주고 참가하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여성 스포츠인들이 움직이는 걸 보여줘야 된다. 그러면서 20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오늘까지 온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아시안게임 선수단 단장을 맡으셨는데 단장이 하는 역할은 주로 어떤 겁니까?

정현숙 : 선수단 단장은 지난 27일에 발표되고 나서 12월 1일에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시작되거든요. 선수들에게도 불과 두 달도 채 안 남은 짧은 기간입니다. 그 기간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대외적으로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의 움직임이나..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되는데 제가 선임됐다고 발표되고 나서 지금까지 한 일이, 방송을 많이 하고 인터뷰를 하는 일이었거든요.

박인규 : 아시안게임을 국내외에 알리는 게 가장 일이라면 이미 충실히 하신 거네요.

정현숙 : 그런 생각을 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단은 이미 다 확정이 됐죠?

정현숙 : 네. 매스컴에서는 842명으로 보도됐는데, 정확한 건 떠나기 전에 결정되는데 840명에서 한두 명 더 들어갈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는 규모입니다.

박인규 : 굉장히 많은데요..

정현숙 : 그렇죠. 아시안게임 종목이 39개고, 우리가 출전하는 것이 37개인데, 37개 종목의 선수단은 지난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국내에서 했기 때문에 우리 선수단 규모가 천 명이 넘었거든요. 그런 것에 비하면 줄었다고 볼 수 있는데 외국으로 파견하는 인원으로서는 많은 겁니다.

박인규 :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선수단 중에서 일부는 태릉선수촌 안에서, 일부는 밖에서 한다고 하셨는데 태릉 선수촌 안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대략 몇 명 정도 됩니까?

정현숙 : 4백에서 5백 명 정도. 태릉 선수촌 시설이, 사실 선수들을 다 입촌시킬 수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 대한체육회에서는 진천 쪽에 제2 선수촌을 계획하고 있어요. 선수촌이 좁다 보니까, 촌외 훈련도 태백이나 진해에서 하는 선수들은 좀 괜찮은데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고생하거든요. 그래서 선수촌 건립이 상당히 시급하죠.

박인규 : 우리나라가 1986년도에 처음 아시안게임을 유치했을 때만 해도 대단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면 TV에서 다 보도해 주고. 그런데 그 다음다음 해에 올림픽을 개최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시안게임은 조금 격이 떨어지는 것 비슷하게, 국민들의 관심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정현숙 : 맞는 말씀이구요,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고 월드컵,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다 보니 아시안게임은 아시아 쪽으로 축소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메달의 무게도 덜한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사실 아시아 쪽이 세계 종목인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시아 쪽에서의 우승이 결코 세계의 우승 못지않은 값어치가 있는데, 국민들께서는 우리가 올림픽을 치루다 보니 스포츠 면에서는 굉장히 우월감이 많으신 거예요. 그러다 보니 충분히 그러실 수도 있는데 실질적으로 대회가 임박하면 요즘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시니까 분명히 밤을 새워서 TV를 보신다거나 라디오를 들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선수단 단장으로서 참가 선수들의 사기를 살려주는 여러 가지 계획도 하실 것 같은데..

정현숙 : 선수단 단장이 되기 전까지는 저는 탁구인이니까 우리 탁구가 메달이 몇 개 나올 것인가, 우리 선수들은 어떤가를 고민하고 관심을 많이 가졌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전 종목을 해야 되니까 오히려 탁구는 생각을 덜 하면서 다른 종목에 메달을 많이 따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그 선수들의 사기 부분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제가 선수 시절 때.. 그런 생각들을 많이 끄집어내거든요. 제가 74년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었어요. 테헤란에 가 있을 때 국민들께서 아시안게임 선수단에게 편지쓰기 운동이라도 벌이셨는지 엄청난 팬레터, 격려편지가 쏟아져 왔어요. 그래서 하루 연습이나 시합 끝나고 들어가면 탁구, 농구, 배구 이런 식으로 편지를 나눠 주셨거든요. 나는 몇 개 왔을까 기대도 했는데 그때가 73년도 사라예보 우승을 한 다음 해니까 정말 많은 격려편지가 왔었거든요. 그때는 중국하고 1,2위 다투는 게 세계대회나 똑같은 입장이라 부담을 가졌었는데 그런 편지를 받고 생각보다는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구나.. 그런 것들 읽으면서 다시 힘내고 그랬어요. 그런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보구요. 선수들에게 편지쓰기를 권하면 많이 힘들어 하실 거구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이메일이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선수들의 격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사실 발표하고 나서 추석이 바로 있다 보니 그런 부분이 좀 지나야 되는 부분이라 지금부터 같이 움직이려고 합니다.

박인규 : 아무래도 국민들은 메달이 몇 개냐, 종합 몇위냐에 관심이 많을 텐데 이번 아시안게임 목표가 어느 정도입니까?

정현숙 : 종합 2위입니다. 2위 목표는, 중국이 워낙 많은 메달을 거의 쓸어가다시피 하고. 지난 부산 아시안게임 때도 중국이 150개 금메달, 우리가 96개였거든요. 2위였지만 차이가 많이 났어요. 이번에는 메달을 지난번처럼 따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75개 정도를 노리고 있는데, 그런 계산이 나오는 건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뭔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고, 부산 아시안게임 때 일본이 3위를 하면서 메달이 44개였거든요. 또 2,3위의 메달 차이가 엄청나죠. 그때 일본은 엘리트체육에 비상이 걸린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일본도 이러면 안 되겠다, 다시 재정비를 해왔고. 그러다 보면 사실 중간에 껴있는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메달을 빼앗길 수 있는 가능성이 제일 많거든요. 일본도 우리를 상대로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75개로 수정을 하지만 75개도 굉장히 힘든 숫자라고 판단합니다.

박인규 : 국제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남북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단체도 만들고 했는데, 핵실험 때문에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공동으로 할 수 있는 뭐가 있을까요?

정현숙 : 어떤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어도 그런 걸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오히려 그런 물결을 타지 않는 게 스포츠라고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테헤란 아시안게임 때 남북대결이 처음 있었거든요. 그때는 상당히 분위기가 험악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피해 다니고, 조금만 서로 신경이 거슬리면 우선 험한 말이 나오면서 싸우고, 그래서 저희 선수단에서 싸우지 말고 피하자고 했어요. 제가 기억나는 게, 남북이 탁구연습장을 같이 쓰게 됐는데 저희 공이 북한 선수 쪽으로 갔는데 공을 발로 뻥 차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싸움이 일어날 뻔했어요. 그 정도로 살벌했는데, 지금은 너무너무 좋은 분위기죠.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늘 종합대회는 공동입장 같은 걸 항상 생각하고 북경올림픽은 단일팀까지 논의가 잘 되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주변의 어떤 정세에 흔들리지 않고 스포츠 쪽은 잘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고. 아직 결정이 나진 않았지만 이번 종합대회도 공동입장이나 그 밖에 다른 것들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박인규 : 북한이 유감스럽게 핵실험을 강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체육계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의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좀 개인적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탁구를 시작하신 게 중학교 1학년 때인데 상당히 일찍 시작하셨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정현숙 : 그 당시에는 보편적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을 많이 시작했어요. 요즘은 초등학교부터 운동을 하거든요. 그만큼 점점 빨라지고 있는 추세죠. 제가 탁구를 하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에 탁구대가 한 대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가 뒤에서 공을 많이 주워 드렸거든요. 공을 주울 때 탁구대의 모양이나 라켓 모양, 또 재밌게 치시는 모습, 공을 주워 드릴 때 공이 굉장히 가볍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걸 눈으로,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들 하시는 거니까 저희가 할 생각은 전혀 못 했고. 그러다가 동덕여중에 들어가면서 제가 신체검사 할 때 그 당시 코치로 계셨던 분이 저한테 뭘 물어보신 기억이 있어요. 입학시험 볼 때.. 보통 탁구부를 뽑을 때는, 그때는 입학시험 때 체능검사라는 게 있었거든요. 달리기 같은 걸 잘 하는 사람들을 뽑았는데 제가 신체검사 할 때 쭉 둘러보니까 눈에 띄더래요. 그런데 제가 키가 굉장히 작아서 쟤는 안 되겠다고 해서 지나치면, 다시 한 바퀴 눈을 다시 돌려서 보면 제가 또 눈에 띄고, 그래서 저한테 어디 사느냐 물어본 기억이 나거든요.

박인규 : 말하자면 스카우트 되신 거네요.

정현숙 : 제가 작아도 눈에 띄었나 봐요. 제가 나중에 보면 탁구를 할 운명이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해서 탁구를 하겠냐고 물어봤을 때.. 제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 하시는 걸 봤기 때문에, 지금 보면 그게 생활체육이거든요. 생활체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낀 계기도 됐죠. 그렇게 해서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사라예보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시면서, 갑자기 동네에 탁구장이 막 생겨나고 전부 탁구를 치더라구요. 대단한 열풍이 불었는데, 그 당시에 출전하시면서 우승을 해야겠다, 우승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좀 있었나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정현숙 : 우승에 대한 기대가 사실 조금은 있었어요. 왜냐하면 전 세계대회, 그 때는 세계대회를 2년마다 했거든요. 나고야에서 세계대회를 할 때 저희가 단체 3위를 했었는데 그 때 이에리사 선수와 제가 같이 뛰었죠. 그러면서 우리도 잘 하면 금메달 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서 바로 그 다음 세계대회 준비를 했어요. 준비가 철저했죠.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도 잘 하면 우승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힘들 거라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막상 시합을 하다 보니,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잘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준비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금메달 확정이 되고 나서는, 요즘 보면 금메달 따면 서로 붙들고 울고 하지만 저희가 맹숭맹숭했어요. 그러다가 진짜로 감격스러웠던 건, 공산국가지만 우리나라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퍼질 때 온 몸에 소름이 끼치듯 감동스러웠는데, 그때 하나의 재밌는 일화가.. 아마 조직위에서는 우리가 우승하리라고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물론 태극기 같은 건 준비야 당연히 했겠지만 애국가라든가.. 그때도 남북한이 갈라져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준비했다고 하더라구요. 또 저희가 감격스러웠던 건, 돌아와서 시청 앞에서 환영대회를 해주셨는데 색종이 꽃가루를 무지하게 떨어뜨려 주셨거든요. 지난번 월드컵 보면서 빌딩에서 색종이 떨어뜨리는 장면 볼 때 저희가 사라예보 장면을 많이 생각했어요.

박인규 : 그 당시 정현숙 단장은 수비형, 이에리사 촌장은 공격형으로 해서 정 단장이 막아내면 이에리사 선수가 공격하는 식이었는데, 선수생활이 끝난 뒤에 체육지도자나 행정가로 가시지만 두 선수가 약간 길이 다르다. 이에리사 촌장이 엘리트 체육이라면 정현숙 단장은 생활체육 쪽이라고 말하더라구요. 특히 생활체육 쪽을 택하신 이유 같은 게 있으신가요?

정현숙 : 제가 은퇴하고 나서 거의 10년 동안은 체육활동을 안 했어요. 탁구가 너무 지겹다가 그만두다 보니, 그러다가 다시 활동한 것은 86, 88 유치가 확정되고 난 이후 제가 방송을시작하면서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거든요.

박인규 : 방송은 해설을 하신 건가요?

정현숙 : 해설이 아니고 그 당시 라디오 방송 진행자도 했고, 그래서 86, 88 대회를 앞두고 스포츠인을 기용한다는 게 있어서, 제가 또 처음으로 발탁이 돼서 그 당시 첫 국가대표 방송인이라고 해서 많이 관심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경기장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고 방송으로 북경 아시안게임을 갔을 때 저도 같이 갔었죠. 북경에 가보니까 중국이 왜 탁구가 강한지를 많이 느꼈어요. 지나가다 보면 탁구공 소리가 나서 보면 탁구대도 아주 험해요. 네트 같은 것도 없이 벽돌로 가운데를 막아놓고 공도 새까매요. 그런 데 보면 작은 공장 같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옥상 같은 데 탁구대가 있어서 종업원들이 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저렇게 아무 데서나 탁구를 칠 수 있는 게 중요한 거구나. 그게 바로 생활체육이더라구요. 그때 돌아와서 한국여성스포츠회에서 우리가 선수출신으로서 뭘 할 것인가를 많이 찾고 있던 차에, 그러면 이런 생활체육 쪽에 여러 종목이 퍼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한 번 기여해 보자. 그래서 제가 그때 여성스포츠회의 결정으로 정현숙 탁구교실을 처음 만들게 됐어요. 그것이 생활체육으로 출발했던 시작이었고, 지금 와서 굉장히 기쁜 것이... 어머니들을 주로 대상으로 많이 했는데, 우선 어머니들이 탁구를 해야만 아이들을 시킬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요즘 시합장에 가면 어머니 선수들을 많이 만나요. 그래서 왜 왔냐고 하면 우리 아이가 선수로 나와서 오늘 시합 있다는 얘길 하거든요. 그런 저변 쪽에 많이 활동했었죠.

박인규 :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이 12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데, 좋은 성적 거두리라고 믿구요. 선수단 단장의 역할이 선수단을 많이 홍보하시는 게 일이라니까 오늘 인터뷰에서 못 하신 말씀이 있다면 마지막을 해주시죠.

정현숙 : 아시안게임이 거의 한 달 하고도 15일 정도 남았다고 보는데요, 선수들이 그때까지 사실 연습할 땐 굉장히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서 국민들의 관심.. 예를 들어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면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시고, 또 현지에서도 선수들이 열심히 싸울 때, 생각보다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도 격려를 같이 보내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인규 :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 거두시고 생활체육진흥에도 좋은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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