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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벌레'들과도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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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벌레'들과도 소통하라

[김제완의 '좌우간에']<17> 상식으로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문재인은 서울 망원시장의 상인들을 만나 대형마트 입점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꿔 재래시장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수원 못골시장을 방문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먼저 상인들이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지대 신율교수는 두후보의 발언을 비교하며 안철수의 말에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후보까지 포함해 세 후보 모두 일자리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방법은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과 성장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가 있다. 진보와 보수의 방법론이다. 정치인들은 두 패로 나뉘어 제각기 자신의 방법이 옳다며 다툰다. 선진국 정치도 다름이 없다. 그런데 안철수는 진보 보수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다툼도 보기 싫다며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그의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 책의 대부분의 지면에 우리 사회의 현안문제들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런데 진보 보수 이념등의 용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념에 대한 언급은 한번 나온다. 그의 뿌리깊은 편견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는 이념으로 편을 나눠서 자기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공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51쪽)

이 책에 언급된 우리사회의 주요 과제들 몇가지를 뽑아봤다.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민주화 산업화,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적 불공정, 의료의 공공성 의료의 민영화 등이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사안일지라도 늘 대립되는 두가지의 입장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문제가 진보 보수라는 패러다임 안에 놓여있지만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을 다시 되새겨보자.

가족문제는 보수 교육문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이면 진보, 보수이면 보수여야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진보 보수 구분은 효력을 잃었다. 진보 보수를 굳이 나누려는 사람은 그 구분으로 어떤 이득을 보려는 벌레같은 사람이다. 진보 보수가 아니라 상식 비상식이 중요하다. 이런 요지의 말을 반복했던 안철수가 저서에는 이 주장을 게재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의 비판을 듣고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닌 것같다. 여러 말로 논란을 일으킬 필요없다, 직접 보여주면 된다 이런 타산인 것같다. 그는 실제로 이 책에서 진보 보수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사회 문제를 설명한다. 진보 보수 용어조차 찾기 어렵다. 이 책을 통독한 끝에 아래 구절을 가까스로 발견했다. 이것도 소통을 말하다가 사례로 든 것이다.

"사실 보수, 진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저는 이 두 진영이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라는 것은 그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새롭게 도전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세력이죠. 양쪽이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도전과 발전의 기회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90-91쪽)

진보 보수 자체를 부정했던 때와 비교하면 진전된 변화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같지 않다. 이어지는 글에서 여전히 상식과 비상식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확충, 경제 민주화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1쪽)

비상식적 세력이 진보 보수 간의 소통을 방해한다고 했는데 이 세력의 정체가 무엇일까. 복지확충과 경제민주화를 반대해온 사람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보수파이다. 그중에서도 색깔공세를 가했다면 강경보수 극우파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극단세력이 건전한 진보 보수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좌우의 연장선에 있는 극좌 극우를 이용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좌우 구분을 기피하는 그는 비상식적 세력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한다.

상식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교양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덕목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사안의 핵심에 쉽게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이 염려가 된다. 상식은 그를 엉뚱한 길로 이끌 수 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대형마트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먼저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다니. 그가 돌아간 뒤에 상인들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앞에서 그가 제기한 과제들로 다시 돌아가 보자.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민주화 산업화,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적 불공정, 의료의 공공성 의료의 민영화 등의 이항적인 문제에서 어느 것이 상식인가.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가 개입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문제들을 상식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박동천 교수가 며칠전 프레시안에 올린 글에서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기업의 경우에는 자신의 "상식"과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회사에서 쫓아내거나 거래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반면에 한 나라의 제도와 정책을 관리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나와는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상식"만이 유일한 상식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안철수는 당선되더라도 대통령으로서는 실패할 것이 뻔하다. (박동천, "안철수, 이런 식이면 새 시대 꿈 접어라")

박동천은 이어서 "자기가 뜻하는 '상식'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상식이 있다는 사실을 지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상식에도 이런 상식과 저런 상식이 있다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자본가의 상식과 노동자의 상식이 있다. 일하지 않은 사람은 먹지 말라며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는 것은 자본가의 상식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두배나 차이가 난다. 이런 불합리를 철폐하자는 주장은 노동자의 상식이다. 상식으로는 이런 문제들의 진실을 분별할 수가 없다.

ⓒ뉴시스

상식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멘토로서 강연할 때는 통용될 수 있겠지만 정치지도자의 철학이 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그의 인식적 한계는 앞으로 여기저기서 드러나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안철수는 지난 7일 "문제가 아니라 답을 주는 정치"등 정책비전 일곱가지를 발표했다. '안철수의 생각'을 발전시킨 정책이다. 그는 이날 발표의 미흡함을 인식한듯 "이번 선거의 과정에서 거창한 약속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신 정치의 과정을 공유하겠다. 솔직히 말씀드리고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겠다"며 '진심의 정치'를 강조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정치의 세계는 더 그렇다. 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발전한다. 정치개혁이란 한 사회가 오른쪽으로 편향됐을 때 왼쪽으로 이끌어내고, 왼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오른쪽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좌우를 통해 정치개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개혁은 왼쪽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틀에서 벗어난 그 무슨 "거창한 약속"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었다.

안철수가 상식을 고집하는 것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탓이 크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좌우를 충분히 이해하고 상식을 말해야 한다. 그가 내세우는 소통은 방법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가 진심으로 소통을 지향한다면 상식 비상식만으로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진보 보수로 세상을 보는 "벌레"들과도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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