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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적대적 안보개념' 벗어던져야"

한반도 브리핑 <17>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한국의 안보개념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공방의 성격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로 정부와 보수언론 및 제 세력 간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8월 9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전시 작전통제권을 2009년까지 환수해도 안보 상 큰 문제가 없으며, 한국군의 전력은 이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일단 여당과 진보적 여론은 정부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사태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8월 14일자 <한겨레>의 여론조사는 대상자의 반수 이상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지지하지만 60% 이상이 안보불안을 느낀다고 답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러한 상충되는 반응에 대해 지휘권을 환수할만한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는 보수층의 불안감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에 따른 진보층의 불안감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했다.

이미 정부의 반론이나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보수언론이나 수구세력의 반응이나 논리는 90년대 초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당시와는 전혀 달라진 이중적 잣대를 지니고 있으며, 안보불안을 부채질하는 얼토당토않은 측면도 있다. 이러한 상충된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앞뒤가 뒤바뀐 정부의 협상 자세나 국방정책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어떻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6.25전쟁에서 비롯된 군사주권의 상실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고착화되었다가 탈냉전시대를 맞아 우여곡절을 거치며 회복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이 쟁점이 정치화되어 국민들 사이에 안보불안을 야기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자칫하면 군비증강을 부채질하며, 거꾸로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을 환수 이전보다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사태를 한미동맹의 불화로 보는 논리는 물론이지만 주권문제로만 단순화시키는 논리에도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이번 사태는 정부와 보수여론 간에, 여야 간에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으나, 그동안 안보 분야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되지 못했던 측면을 공론화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국방개혁과 관련된 문제점,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관련된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좀 더 심층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살려갈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는 남북한 간의 군사력 평가방식, 안보개념 설정 등과 관련해서 그동안 냉전시대 이래 유지되던 전통적 방식을 바꿔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군사력 평가의 문제

노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한국군 전력이 작전권을 환수해도 충분한 수준이라고 하며 "북한의 안보위협을 부풀리는 경향은 아직도 민주정부가 세 번 들어섰지만 여전하다. 북한의 군사위협을 부풀리고 한국의 국방력을 폄하하는 경향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야말로 한국군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군사력 평가를 뒤집어엎는 '획기적' 발언이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러한 평가를 내린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부 하에서 국방부가 가장 최근에 간행한 2004년판 국방백서는 남북의 군사력 대비에서 여전히 북측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2004년 국방부의 싱크탱크인 국방연구원의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연구에서도 한국군의 전력지수를 북측의 약 88%로 평가한 바 있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도 지적했듯이 80년대 이후 군사비 통계만으로 보면, 남한의 군사비는 1980년을 경계로 북한 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해 90년대 이후는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이 본격화되는 96년 시점에 한국의 군사비는 북한의 약 3배였고,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약 5배로 잡은 바 있다.
▲ 남북의 군사력을 비교함에 있어 '단순개수방식'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도 기준으로 남한의 국민총소득은 북한의 33배에 달하고 있다. 현대전에서 군사력은 경제력에 비례하며, 주민들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 북한에 대해 거의 20년 이상에 걸쳐 압도적인 군사비를 쓰면서도 여전히 남측의 군사력이 북측에 열세라면 남측은 군비정책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결과가 된다.

여기에는 남측의 군사력 평가 방식이 냉전시대의 전통적 방식에서 바뀌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연구로는 <프레시안>의 박인규 기자가 요약·정리한, 함택영-서재정 교수의 논문을 참조할 것. ▶ 관련기사 바로가기) 즉 '단순개수' 방식이라 해서 북측이 남측보다 우세했던 60년대 이래 거의 모든 군사장비의 수를 합하여 남북 군사력 평가를 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설비나 마찬가지로 기술수준이나 가동률을 도외시하고 낡아버린 무기를 단순 덧셈해서 군사력을 측정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식일 수 없다. 이미 기술적으로 폐기되었을 수 있는 무기를 그대로 인정하는 문제뿐 아니라 90년대 이후 전자화, 정보화의 기술혁신에 따른 무기체계의 고도화는 거의 군사력 평가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식적인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남측은 북측의 군사력 위협에 대해 언제나 '약하다, 약하다'고 말해 온 것이다. 지금의 전력평가 방식을 따른다면, 전직 국방장관들뿐 아니라 국방부의 견해도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어야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다.

이러한 남북군사력 평가의 문제점은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했던, 입안 과정 중이던 국방개혁을 위한 국방자문회의 석상에서 이미 일부 전문가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으나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은 국방백서나 국방연구원의 연구결과 등 그동안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사전 정지작업 없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불거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내놓은 논리로 생각된다. 경위야 어떻든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발언이 갖는 무게를 감안할 때 기존 군사력 평가 방식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번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이 일자 국방부와 청와대 홈페이지에 8월 11일자로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홍보자료로서 게재된 한 연구논문의 일부를 인용만 해보기로 하자. 이것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국방백서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이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2005년 북한 전체 에너지 소비가 1990년 대비 반감하였고 탱크 등 기갑장비 유류소비량은 1997년 대비 10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비행을 거의 갖지 못하는 등 북한군은 극심한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전면전시 북한의 항공기나 함정은 1주일도 못 되어 유류 부족과 부품 결핍, 기술적 한계 등으로 작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북한의 전면전 수행 능력은 약해진 상태이다. 이러한 여러 측면에서 현재 국방부 지도부는 전면전 발발시 우리 역시 큰 피해를 입을 것은 분명하지만, 미군의 도움이 없더라도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다."

(홍현익, '전작권 환수는 한-미가 다 좋은 일', ▶ 관련 글 바로가기 )

용산기지 이전 협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나 마찬가지로 정부가 부실협상이나 준비부족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남북군사력 평가에 대하여 국방부는 새로운 공식자료와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내놓고 여야 및 시민단체, 언론, 전문가들에게 공론화할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이번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미국 측이 2009년으로 앞당기려고 하고, 오히려 한국 측은 2012년으로 늦추려고 한다는 데 기본특징이 있다. 한국이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이 싫다는데 억지로 이를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보수언론은 한국이 자주국방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미국이 이에 반발해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을 서두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역사적 경위를 무시한 일방적인 매도로 생각된다. 이 문제는 정부도 설명했듯이 20년 이상에 걸쳐 한미 간에 쟁점이 되어 오며 협상이 단속적(斷續的)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한국군의 전력 증강, 주한 미군의 감축에 따라 휴전선 방위를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담당한다는 방향에서 협상이 이루어져 오던 것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이후 그 성격이 바뀌었던 것이다. 바로 용산미군기지 이전이 노태우 정부 당시는 서울 한복판에 미군기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의 민족적 자존심 문제에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서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전략에 따른 문제로 그 성격이 전환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지난 1월 전략적 유연성 합의 당시 정부 당국자가 이 합의가 한군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유리하다는 설명을 덧붙인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는 무관하게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라는 주권적 성과를 확보해 낸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나아가 올해 안에 환수 협상을 매듭짓겠다고 자신 있는 어조로 밝힌 바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은 7월 19일자 <조선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미국 측이 한국 언론에 조기이양 방침을 흘린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프레시안> 박인규 기자 ▶관련기사 바로가기, 황준호 기자 ▶관련기사 바로가기) 작전통제권 환수를 앞당기려는 것이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측이었음을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가 뒤늦게 시인하고 나온 셈이다.

미국은 당연히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전후해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통제권 행사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도다.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계획에 따른 주한미군 성격의 전략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이에 맞추어 한미 군사관계의 위상 변화를 꾀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미 신속기동군화 하는 작업을 2008년까지 마치게 되어 있는 주한미군이 한미연합사 체제에 구속받지 않고 '프리 핸드'를 갖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문구에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이 주한미군의 운용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사전에 한미협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시 작전통제권이 돌아왔다고 이를 군사주권의 확대로서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측의 제어력은 작전통제권 환수로 한국군에 대한 자체 통제력이 증대된 만큼 오히려 축소될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한미동맹의 수평적 재편이란 '협력적 자주국방'의 대의가 내실을 갖추기 위해서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중국-대만 분쟁에 주한미군이 개입하거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미군이 독자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실제 군사작전 운용체계 내에서 어떻게 제어해 낼 수 있을 것인가도 작전통제권 확립 문제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국방개혁과의 관련…작통권 환수는 군비증강의 트로이 목마?

노무현 대통령은 2012년을 환수의 적기로 보는 이유로 "우리 군의 눈이 높고 미국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어서 미국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으로 "군의 욕심은 차제에 최고 A급, 최고수준의 장비와 시스템을 갖춘 군대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국방개혁의 중기국방계획이 완성되는 시점을 기다려 작전통제권 환수를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미 사전에 국방개혁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결부시켜 입안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제 두 가지 사안은 서로 결부되는 결과가 되었다. 다만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이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되고 있다. 이 중기계획으로 충분하다고 하면서도 대부분은 전력구조 개편에 투입되는 것이며, 여기에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른 예산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보자산은 한미동맹에 따라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도 충분하지만, 앞으로는 이 부분을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3일 국방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중기 계획은 5년 간 161조 원, 국방개혁 2020이 완성되는 2020년까지 621조 원이 투입될 예정으로 이에 따라 매년 한국의 군사예산은 8~9% 증가하게 되어 있다. 현재 GDP의 2.6~7%에 머물고 있던 군사비 비중도 GDP대비 3%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토대가 되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전통적 방식의 남북군사력 비교 평가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주한미군 수준의 정보전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막대한 재원이 투입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미군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이만한 군사정보전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없다. 특히 첨단정보 전력에서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북한을 상대로 얼마나 재원을 투입해야 하느냐는 문제와 관련해 '미국 수준', '세계최고수준의 시스템과 장비를 갖춘 군대'라는 기준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철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으로 GDP대비 군사예산 비중은 꾸준히 감소해 왔으나 여전히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군사비 비중은 15%라는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계기로 막연한 안보불안이 확산되어 군비증강론이 힘을 얻는다면 보수층 주장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수도 있다.

이는 무엇을 위한 작전지휘권 환수냐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자주국방 정책이 이른바 '합리적 충분성'에 입각한 '적정안보'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된다면 이는 냉전시대보다 더욱 첨예한 군비증강의 트로이 목마가 될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 자주국방 정책이 군사적 기득권과의 타협책이라는 우려 섞인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아직도 경제적으로 위기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남한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메우려 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군사대치 상황은 한미연합군의 육해공 전력의 압도적인 우세에 대해 북한이 핵, 미사일의 대량살상무기와 휴전선에 근접 배치된 장사포로 맞서는 비대칭적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등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미 협상도 포함하여 다분히 정치적·심리적 군사효과를 노리는 바가 크다고 얘기된다.

그런 점에서 남한의 군사력 증강은 북한의 안보불안 및 반발을 더욱 촉진하며, 거꾸로 한반도 안보불안을 가속시킬 수 있다. 더욱이 남한의 군사력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대국에 맞서는 군사강국을 지향한다는 것은 자체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된다. 통일된 한반도를 시야에 둔 군사력 건설을 지향하면서 전략무기 보유를 주장하는 논의도 있으나, 현재의 군사력도 북한에 열세라고 평가하는 한에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정부의 '자주국방' 구상에서 취약한 점은 장비나 무기 등 군사력의 하드웨어보다 독자적인 전략 및 전술 운용능력, 대미 군사적 의존자세 등 소프트웨어에 있음은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는 바이다.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미군과의 일체화에 벗어나 자신의 전략적·경제적 조건에 적합한 최적의 무기체계, 군사력 구조를 갖추는 일이 핵심적 과제가 된다. 이는 군비증강이 자동적으로 자주국방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력 증강은 이미 박정희 시대로부터 30년에 걸쳐 진행되어 왔으며, 90년대 이후 북한에 대한 군사비의 압도적 우위가 실현되고 있으나 여전히 국민 다수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군사력 증강이 의거해야 할 안보개념이나 전략개념이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데에 있다.

새로운 안보개념의 필요성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안보 딜레마' 논리를 동원할 것도 없이 힘의 우위에만 입각한 일방적 안보는 한쪽의 위협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거꾸로 상대방의 위협 인식이 증대한다는 반비례 관계에 서게 됨으로써 결코 안정적인 상호관계를 수립할 수 없게 됨을 뜻한다. 따라서 자기만 일방적으로 힘의 우위를 추구하는 '적대적 안보'보다는 상대방과의 신뢰를 중진시킴으로써 서로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켜 가는 '협력안보'(cooperative security) 내지 '공통의 안보'(common security)를 실현하는 것이 안보를 증진시키는 길이 된다.

이러한 안보개념의 진화는 한반도평화체제를 지향하는 남북관계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지향점을 염두에 두면서 냉전적인 안보를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적 안보(alternative security)을 구상해 볼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안보현실은 남북 화해·협력의 지속적 진전에 따라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부전선에 개성공단, 동부전선에 금강산관광특구가 설치되어 이미 남북이 공유하는 광범한 평화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두 지역 모두 북한 입장에서는 중무장한 군사지역이었고 비록 경제적 필요에 쫓겨 내놓은 것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안보위협의 부담을 무릅쓴 결정이었다. 중부전선의 경의선 철도연결은 아직 남북 간의 최종 실시 단계에서 중단되어 있으나, 이미 제도적으로는 남북 간의 공동관리구역으로 합의한 바 있다.

이는 남북 모두 군사적으로는 서로 상대방의 군사적 진격로를 열어 주었다는 의미에서 개통이 된다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특구보다 한 단계 진전된 평화지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세 지역은 경제협력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것이지만 남북 간의 협력안보, 공통의 안보의 실험장인 셈이다. 비록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단행되어도 남한 국민들이나 주식시가 총액의 50%에 육박하는 외국인투자가 동요 없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그 이면에 남북화해-협력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의 대북 안보개념은 냉전시대 이래의 적대적 안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김대중 정부 5년, 노무현 정부 3년 반을 지나면서도 이 안보개념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남한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아직도 남한의 북한에 대한 경제력, 군사력, 도덕적 가치 등 체제 역량 상 압도적 우위에 입각해서 추진되고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로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적·군사적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다수 국민들은 이에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체제 비교에서 볼 때에도 남이 북보다 세계사적·체제적 우위에 있지만 여전히 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붕괴 내지 변용으로 북한 체제도 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시대적 대세이다. 셋째로 남이 북에 비해 누리고 있는 국제적 우위에도 남한 보수층의 의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남한은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해 경제 관계를 확대시키고 있으나, 북한은 미국, 일본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극도의 고립감과 피해의식에 젖어 있어 있다.

위와 같은 측면에서 북한이 남한에 대해 느끼는 안보위협을 남한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안보위협과 관련시켜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취한 미사일 시험발사 및 6자회담 불참은 북이 남에 대해 처해 있는 열세나 대미·대일관계에서 오는 국제적 고립감으로 인한 안보불안감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남북의 대치 상태가 완화되지 못하고 남북의 역량 차이가 계속 벌어진다면 시간이 갈수록 북의 위협 인식이 남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 불균형이 절망적으로 벌어질 경우 거꾸로 남한의 안보 위협으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이 합의되지 못했고 평화체제 구축은 아직 궤도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 일방적이고 적대적인 안보개념을 '협력안보' 내지 '공통의 안보'로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지만, 그 준비작업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 중간단계로서 적어도 대북 열등감에 의거한 '수동적 안보' 개념은 대북 자신감에 의거한 '능동적 안보'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북한에 대한 현재의 '공격적 억제전략'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방어적 억제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나아가 남한의 북한에 대한 안보위협 인식에 대비하는 '일면적 안보'에서 북한의 대남 안보 위협 인식도 동시에 냉정하게 계산하는 '양면적 안보', '복안적 안보'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노무현 정부의 '포괄적 안보' 개념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군사뿐 아니라 경제, 환경, 인간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당초 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추세로 되어 있는 흐름에 따르는 것일 뿐 아니라 지나치게 군사안보에만 치우쳐 있는 남한의 경직된 안보현실을 완화시켜 보자는 의도에서 채택된 것이다.

실제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국민의 경제적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문제, 중국의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상황, 남한에서도 날로 늘어가는 탈북자나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은 일국 차원에서만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당장 군사 분야에서 다자적, 협력적 해결을 기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러한 분야를 매개로 한 탈냉전적 시도는 협력안보, 다자간 안보로 가는 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협력 차원에서 우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간, 환경 등 분야에서도 포괄안보는 구호로 그치고 별다른 시도가 되고 있지 못하다. 대북 인프라 건설 지원은 북한의 파괴된 환경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할 수 있고, 식량·비료 등 대북 인도주의 지원은 '인간 안보' 차원에서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근거로 남북 간의 군사회담,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에서 남한이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데 불가결한 조건임을 들었다. 다만 여기에는 적대적 안보개념을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남북 군사회담의 의제로서 서해해상경계선 획정문제가 걸려 있다. 북측은 자신들이 김대중 정부 이래 금강산특구, 개성공단 등 군사적으로 치명적인 지역을 개방하고 나서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도 이를 철회하거나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남측도 서해군사경계선 획정을 위한 협상에 응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포괄적인 군사회담에 응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북측 제안을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방침이었지만, 북측은 이를 우선 의제로 삼기를 주장하면서 남북군사실무회담은 결렬되었다. 아직 남측의 군 내부에서는 북방한계선은 불가침의 영토문제로 인식하는 견해가 완강하다.

이는 국민 일반에게는 물론이고 군 내부에서조차 안보개념의 변화 등과 관련된 홍보나 논리 개발 등 정지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사력 정책이나 마찬가지로 남북군사회담의 성사도 안보개념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에 따른 안보불안 문제를 해소해 가기 위한 방법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안보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협력안보를 지향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에 대해서도 한미동맹을 견지하되 중, 일, 러 등에 대한 다자적 협력안보를 지향해 가는 데 있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평화의 추진자, 갈등의 중재자로서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는 정책이야말로 21세기 한국 안보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결론 : 국민참여형 안보를 향하여

앞에서 언급한 남북군사력 평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안보개념에 따른 문제점은 이제 국가안보를 군대에게만 맡겨두는 시대가 종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정희 독재시대에는 '총력안보'라는 구호 하에서 국민과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안보개념이 존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군대의 성역인 안보에 국민은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권력의 요구였다. 또한 엄혹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보는 국민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적 기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수반하지 않는 군사안보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군사비에는 막대한 국민세금 부담이 들고 가뜩이나 부족한 복지부문의 희생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미 한국경제는 98년 이래 국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힘겨운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양극화의 고통은 국민 다수가 안게 된 부담이다. 이것이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유지되어 온 정치경제체제를 개혁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국방개혁이란 냉전분단체제 하에서 군사독재에 의해 비대화된 낡은 군사체제를 개혁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작업도 군 주도 하에 국민 참여는 배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국민들이 국가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할 때, 과연 군이 뼈를 깎는 자기 노력을 보였는가 하는 점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도 과거 냉전적 군사체제의 핵심적 측면을 개혁한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둘러싼 진통은 그동안 안보문제가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 되지 못한 데서 빚어진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대안안보 구상의 전제는 성숙하고 균형 있는 국민의 안보인식을 토대로 한 '국민참여형'(civil security) 안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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