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핵심에는 금년 1월 워싱턴 한미전략대화에서 전격합의된 '전략적 유연성'이 자리한다.
한미 양국은 협상 초기인 2003년경만 하더라도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의제로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얼마 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한반도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미국만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역할변경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는 공문서 상으로도 분명히 증명된다.
또 우리 정부는 2001년 미국 4년주기국방계획(QDR)에 따른 세계전략의 변화로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이 변경되고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GPR)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로 인해 한반도 안보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했다.
필자는 국회 등원 전 당선자 시절 당정협의 때부터 2004년 대정부질의와 국정감사 등에 이르기까지 '용산기지 이전'은 GPR이고, 이는 곧 '전략적 유연성'이라며 수십차례 외쳐 왔다. 정부는 일관되게 부인했다. 미군재배치는 민족 자존심 회복 차원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우리가 전액 부담하는 게 맞다고 했다.
결과는 무척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애매모호한 용어의 사술로 논의의 쟁점을 흐렸고, 한미관계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곧 '반미친북'으로 연결시키는 보수파와 손을 잡고 논의 자체를 차단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무지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고, 이는 곧 국민을 속인 고의였으며, 최소한 알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한 과실범죄였다.
놀랍게도 이런 논리적 모순은 이번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논란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미국의 필요에 의한 반환부분은 철저히 사상되고, 오로지 민족 자존과 주권회복만 강조된다. 그러다보니 보수파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불을 끄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략적 유연성이 근저에 자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하는 고위 관계자의 입을 빌어 슬그머니 흘려댄다. 이미 워싱턴 발 한국 특파원들이 송고한 기사는 미국의 작통권 반환이 전략적 유연성 때문임을 분명히 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 종결될 당시 리처드 롤리스 미측 수석대표는 "기지 이전에는 서로 다른 동기가 있다(there are different priorities and different motivations)"고 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숙 북미국장은 아니라고 했다. 온전히 우리 요구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GPR과 상관 있다는데, 우리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다 부담해야 된다고 강변했다.
비극은 반복된다. 작통권도 똑같은 논리구조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 때문이라지만, 미국은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다.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상관관계
지금까지 50년 동안 주한미군은 오로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존재했다.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이후 현재의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적 대 테러전쟁을 위한 신속기동군으로서 존재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방위는 한국군이, 주한미군은 미국 자체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한 대테러 전쟁 등을 전담하는 방향으로 역할 분담을 전제한다. 한반도 방위에 대한 주된 책임은 이제 한국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개념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주둔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SOFA)의 성격은 변화된 것 아니겠는가? 이 때 행정부는 국회와 국민에 대해서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할까? 당연히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공론에 부친 다음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의 충돌 여부가 중요한 쟁점의 하나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묵살당하고 말았다. 국민의 의견을 묻는 일은 철저히 무시됐다. 국회의 동의는 더더욱 관심 밖이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미국 쪽의 요구임을 눈치채고 애써 본질을 외면했다. 결코 국가기밀일 수 없는 사실을 국가기밀이라며 사태의 본질을 호도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협상팀은 협상 초기 당시 외교장관 간의 '비밀각서' 형태로 이 일을 추진하려 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식화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인가? 정부 일각의 생각이 그렇다. 이 정도만으로도 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국민주권은 어디로 갔는가?
중간결론을 내리자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상에 규정되었던 미국의 자동적 개입을 위한 법적 의무는 전략적 유연성 수용으로 인해 한낱 정치적 선언으로 한 단계 느슨해졌다고까지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을 이야기했다. 보수언론은 '폭로'라고 했다. 갑자기 '강경반미자주파'가 되고 말았다. 필자와 함께 이 문제를 직시하고 끊임없이 청와대 '내부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이종헌 외무관은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이제 사실이 사실로 드러난 이상 이종헌 외무관에 대한 명예회복 의무는 외교안보팀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전략적 유연성과 전시 작전통제권과의 상관관계
전시 작전통제권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가정해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토대 위에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 수용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 결과로 한미연합사의 해체와 작통권 환수에 대한 요청이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을 통해서 대한(對韓) 방위공약의 법적 부담에서 좀 더 자유스러워지기를 원하는 미국의 필요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해서 상징적 자주의 기치를 높일 수 있는 우리의 국내정치적 필요가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2003년 주한미군 2사단 이전에도 똑같은 시행착오 되풀이
이런 혼란은 2003년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을 둘러싸고도 되풀이된 바 있다.
당시 2사단의 오산·평택으로의 이전이 한반도 돌발상황 발생 시 주한미군의 자동적 개입을 보장하던 '인계철선' 개념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한 보수 진영은 '조중동'과 더불어 '안보불안', '안보공백'을 내세우며 참여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런 논란이 잠재워진 것은 당시 '허버드(Hubbard)' 주한 미 대사와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보수 언론사를 찾아가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이전이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한 것임을 납득시킨 이후이었다.
2006년 8월 14일 버시바우 대사가 열린우리당의 당의장과 대표를 만났다. 작통권 환수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시키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확인했다. 보수진영의 반응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공허한 논쟁 되풀이
이런 기본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의 난맥상을 차분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논쟁 역시 지금까지 다른 외교안보 현안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보 측에서는 자주와 주권을, 보수 측에서는 한미동맹의 와해를 이야기 한다.
거시적 분석으로는 둘 다 모두 틀렸다. 그러나 미시적 분석으로는 둘 다 맞다. 진보와 보수진영의 목소리 모두에는 공허한 탁상공론식 논쟁만 있고 현실에 입각한 전략적, 거시적 접근은 완전히 실종됐다. 정치논쟁만 남아 있다. 한미상호방위공약의 완화 또는 주한미군의 '사실상' 또는 '일시적' 철수를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한미동맹의 이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이들이 갑자기 국민투표를 들고 나섰다.
전략적 유연성 수용으로 인해 한미 양측은 각기 전시 작전통제권을 이양하고 환수받을 논리적 필요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다만 미시적으로 누가, 언제 작통권 환수 논의를 제기하느냐는 시기 문제만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공허한 논쟁의 결과 가중되는 한반도 위기상황
작통권 논의의 핵은 첫째 우리의 자체 국방력으로 북한의 도발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제·저지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둘째 작통권 환수 이후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안보공약은 계속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근거한 한미연합방위능력이 역시 북한의 도발행위 저지에 충분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보수세력은 철저히 전자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한국군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세력은 전자의 문제로 볼 때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후자의 문제로 바라보면 더 이상 어떠한 문제도 없음에도 전직 장성과 보수진영이 이를 정쟁화하여 안보불안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후자의 입장이 맞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와 보수진영까지도 포함하는 국민에 대한 이해와 설득 등 정책관리능력의 부족은 역시 참여정부답다.
순서가 뒤바뀐 '작통권' 환수 논쟁
보수진영에서 제기하는 '안보불안', '안보공백' 논의를 근거 없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실제적으로 국민들이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불안심리를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했다. 군사력은 현존상비군의 전력과 함께 잠재적 전투수행능력의 합계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했다.
더군다나 북한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해 놓고 있고 북핵문제가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최악의 안보상황에서 '자주냐 사대냐'의 양자택일식 선택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 또한 위험천만한 일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 국방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공세적 억제 전략'을 '방어적 억제 전략' 개념으로 수정하는 것도 멀지 않은 장래에 검토해볼만하다.
현재의 '공세적 억제 방위' 개념은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를 초래하며 한반도를 끊임없는 군비경쟁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 : 전략적 유연성이 문제다
현재 초래되고 있는 대혼란의 근원에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한다. 고의임은 분명하고, 최소한 중과실이 존재한다. 관료주의와 밀행주의다.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하는 비전략적 태도에 기인한다.
때로는 우리의 대미 협상팀이 미국의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국민과 대통령과 국회를 기망함으로써 혼란은 가중됐다.
용산기지 이전이 아직도 미국의 GPR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외교안보당국자가 한 사례이다. 그래야만 한국이 모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일본 GPR은 미국이 이전비용의 41%를 부담했다. 협상이 잘 안 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작년 가을 방일을 취소하는 강수까지 둔 적도 있다. 그래도 미일동맹은 확고하다.(6월 12일에야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고위예산당정회의에서 필자의 추궁에 GPR과 용산이전이 상관 있음을 공식인정했다.)
처음부터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동맹 성격변화의 핵심임을 예견하고 끊임없이 경고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치권과 언론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부실 속에서 당리당략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강경 자주파'라는 불명예의 낙인을 뒤집어쓰고 오해를 감수하며 불이익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작통권 문제를 만나서야, 한미FTA와의 비교를 통해서야, 뒤늦게 용산기지이전협정이 GPR과 상관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문제의 근원에 전략적 유연성이 존재함이 밝혀지게 되었고, 이제 이들의 누명은 자연스레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이에 반해 참여정부 외교안보책임자들은 용기 있게 자신의 부실과 오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사과를 하기는커녕 정권안보 차원에서 당장의 은폐를 더 중요시한다.
하나의 사례만 제시한다. 한달전 열린 통외통위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필자의 질의에 대해 환경오염치유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8월 9일 대통령은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옛날에 체결한 한미행정협정 때문에 환경문제에 있어 우리가 많이 따지기가 근원적으로 어렵게 돼 있습니다"라고 했다. 2004년부터 정부는 일관되게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환경오염치유비용은 미국 몫이라고 홍보해 왔다.
'용산기지 이전'에는 한국의 민족자존과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른 GPR이 중첩돼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는 한국의 주권과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중첩돼 있다. 참여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에는 민족자존만 있다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는 주권만을 강조한다. 몰이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정략적 발상에 따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문제의 핵심은 전략적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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