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안보논쟁'이라기보다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정치투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의 선택재량권을 넘어선 문제에 관한 논란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냉전 이후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의 안보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과거의 해묵은 안보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의 주장에 동조 또는 굴복해 미국에 대해 '작통권 문제는 없었던 일로 합시다. 미군이 계속 전시작통권을 보유하시오'라고 제안한다면 미국은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 십중팔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연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합의로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전체를 대상으로 병력을 운용하길 원하며 그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반면 한국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에만 전념하길 바란다. 미국으로서는 한미연합사를 통해 한국군과 하나로 묶여 있는 주한미군의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제는 한국군의 전시작통권을 한국에 돌려주려는 것이다.
미군이 무슨 짓을 하든, 예를 들어 대만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한다 해도 한국군은 미군과 끝까지 행동을 함께 할 것이라는 서약을 하면 모를까, 앞으로 한국 방위는 한국군 주도에 맡기고 주한미군은 보다 광범위한 목적에 동원하려는 미국으로서는 한국군의 작통권이 이제는 거추장스러워진 것이다. 글쎄, 아무리 친미를 자랑하는 한국의 보수파 정치인이라고 해도 미국의 어떤 해외 무력행사에도 한국군이 행동을 같이 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시작통권 논란은 한국의 선택권 바깥에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운용에서 한국의 의사를 존중해 자신의 계획을 변경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1971년 닉슨 대통령에 의한 미 제7보병사단 철수에서 지난 2004년 이라크전쟁을 위해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빼내간 일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철저히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운용해 왔다. 1970년대 후반 카터 당시 대통령이 주한 미 지상군의 완전철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한국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미 군 고위간부와 행정부 관료들의 반발에 의해 좌절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의 여야가 힘을 합해도, 아니 한국 국민 모두가 한목소리로 '제발 미군이 전시작통권을 계속 보유해주시오'라고 애걸을 해도 미국이 전시작통권 이양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주한미군이 한국 방위만 해달라'는 전제조건을 고집하는 한.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왜 그토록 '노무현 대통령 때리기'에 열심인 걸까? 설령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작통권 환수 논의를 중단한다 해도 사정이 바뀔 가능성은 전무한데 말이다. 필자는 한나라당의 저의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흠집내기'에 있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대외정책상의 '실패'를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내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속셈이 아닐까?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지난 2002년 대선 직전인 11월, 미국이 스페인 해군을 시켜 공해상에서 북한의 미사일 수출선 서산호를 나포한 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국제법상 공해상에서 외국 함정을 나포할 권리가 없다는 국제여론 때문에 결국 미국은 서산호를 방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사건은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한국 유권자들의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을 자극해 한국의 보수야당을 도우려는 시도임이 분명했다.
이번 논란의 전개과정(7월 19일 <조선일보>의 '작통권 조기 환수' 단독보도에 이은 미국 <워싱턴타임스>의 추가보도, 그리고 7일 미 국방부 당국자의 조기 이양 방침 확인 및 주한미군 추가 감축 시사 발언 등)도 그러한 혐의를 짙게 풍긴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세력이 '진보'와 '자주'를 표방하는 한국의 집권세력을 흔들려는 시도가 아닐까? 지난번 대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선을 1년 이상이나 남긴 시점에서 이러한 시도가 벌써부터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이나 안보정책이 시종일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대북정책에서 가장 실패한 것은 미국'이라는 등 미국에 대해 막말을 해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FTA 협상 등 국가의 장래와 실리를 통째로 미국에 내주려는 만용을 부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안보정책에서도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현 정부 들어와 실시된 남북한 군사력평가 연구다. 2004년 8월 언론에 일부 공개된 남북한의 종합전쟁수행능력 비교에서 한국군은 아직도 북한군에 열세인 것으로 평가됐다. 육군은 80%, 해군 90%이며 공군만이 103%로 약간의 우세를 보였고, 육ㆍ해ㆍ공군에 2:1:1의 가중평균치를 주어 계산해보면 한국군의 전력은 북한군의 8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 연구결과에 따라 대대적인 군비증강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는 지금 부메랑이 되어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보수세력의 중요한 공격근거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연구결과를 근거로 '북한군의 90%도 안 되는 전력으로 어떻게 주한미군 없이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이냐'고 따져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70년대 중반 이후 압도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30년 이상 '자주국방'을 외쳐 온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를 무엇일까? 아니, 90년 냉전 종식 이후 15년 이상 고립무원에 빠져 수백만 국민이 굶어죽은 북한의 군사력을 한국이 아직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
한반도 안보에 대한 권위 있는 민간전문가인 함택영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와 서재정 교수(미 코넬대)는 지난 6월 발간된 책을 통해 "당국의 기존 남북한 군사력 평가는 적절하지 못"하며 "정책적 의도 때문에 내재적 편항이 있다"면서 한마디로 "북한의 군사우위론은 '잘못된 신화'"라고 단언했다(경남대 북한대학원 엮음, 한울아카데미 발간, <북한군사문제의 재조명> 제5장 북한의 군사력 및 남북한 군사력 균형).
지면 관계상 이들의 연구결과를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으나 이들은 가장 신뢰할 만한 군사력 비교방법으로 '군사투자비 누계'를 들면서 "정부의 주장과 달리 1980년대부터 남한이 군사력, 특히 전쟁수행능력의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고 점차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북한이 우위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핵 및 미사일에 대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해 노리는 것은 한ㆍ미측에 대한 심리적ㆍ정치적 억지력 효과이지 군사력 우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혹시 있을지 모를 한ㆍ미의 북침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즉 "남ㆍ북한 사이에는 남한의 전쟁수행 능력 우위 및 흡수통일 위협 대 북한의 억지력 우위라는 '비대칭적 군사력 균형' 혹은 '위협의 균형'이 존재하고 있"으며 "북한이 비대칭적 군비경쟁에 힘쓰는 이유는 재래식 군비경쟁을 지속할 경제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북의 억지력 우위를 상쇄하고자 하는 남의 군비증강은 비대칭적 군비경쟁이나 북의 모험주의를 유발하여 오히려 한반도의 안정상태를 깨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군의 군비증강을 꾀하는 것은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얘기다.
이들은 특히 "군사력에서 남한이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부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북한 따라잡기'식의 양적 증강에 치우치면서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자주적 의지 또는 '독자적 전략기획 능력의 부재'"라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의 군사력균형 평가나 한국의 무기소요 제기는 이의 상위개념인 전략과 작전계획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 없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역할 축소나 전력감축은 한국군의 전력강화 요구로 자동적으로 귀결되어 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의 안보에 이롭다'는 생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면서 "이러한 생각 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게 되고 결국 한국의 자주국방을 위해 대규모 군비투자를 하고 난 뒤에도 강력한 대미 의존심리를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 역시 자주국방을 한다면서 남북한 군사력 등 객관적 안보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 없이, 또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략기획능력의 배양 없이 무비판적으로 최신무기 도입 등 전력증강에만 매달리면서 애초의 목표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들의 지적을 한낱 민간연구자들의 근거없는 주장으로 간단히 도외시할 수도 있겠다. 또 한국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안보란 곧 북한의 남침 저지이며, 이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은 필수적 존재'라는 6.25전쟁 이래의 전통적인 안보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보수세력들이 이러한 한국의 일반적 국민정서를 끈질기게 악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냉전 이후 한반도의 안보환경 또한 급변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선 북한의 남침 의도와 능력에 대해 살펴보자. 설사 북한이 남침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남한 정복에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한미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냉전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이제 주한미군은 '잉여전력'이 됐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지난 2002년 토마스 슈와르츠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이 공격을 한다면 그 결과 궁극적으로 정권이 파괴될 것이라고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공격 가능성은 낮다"고 증언했을 정도다. 만일 핵 및 미사일 전력을 앞세운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한국에 대한 중대한 안보위협이라면 북한이 대규모 미사일 시험발사로 무력시위를 한 이때,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운운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 것일까?
북한의 남침 의도를 우리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2000년 6월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양측의 정상들이 화해와 공존을 약속했고, 특히 양측 모두에게 주요 공격루트가 될 수 있는 개성에 한국의 기업들이 들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의 남침 가능성만을 최대의 안보위협으로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고루한 생각이 아닐까?
사실 안보위협의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이 우리보다 몇 배나 심각하다. 냉전 종식 직후 북한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가장 우려했고,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미국에 대해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99년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의 윌리엄 페리 특사도 북한의 대미 안보 우려는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볼 때,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안보과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방지하는 것, 남한의 일방적인 군비증강으로 북한을 자극해 북한으로 하여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자포자기적인 모험주의로 치닫지 않게 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포기와 대미, 대일 관계정상화 등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를 성공적으로 중재해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일 등이야말로 우리가 해내야 할 안보과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미일과 중국의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평화세력으로서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조성해내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남침 저지'는 우리 안보과제의 전부가 아니다. 만일 '우리의 안보는 북한의 남침 저지만으로 충분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쳤거나 무지하거나 다른 저의가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6.25전쟁 이래 정권안보를 위해, 또는 안보상업주의를 위해 수없이 북한을 악용해 왔던 저 유구한 전통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남아 있음에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정말로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북한위협론'으로 국민들을 위협하고 정권 획득에만 관심을 보일 것이 아니라 여야를 떠나 한반도 차원에서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대범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논란이 한반도의 안보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된 안보정책을 추구하는 생산적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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