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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카스트로 체제' 길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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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카스트로 체제' 길지 않을 듯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84> 카스트로 없는 쿠바, 어디로 (하)

중남미 좌파지도자들은 카스트로의 입원과 각종 루머에 대해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카스트로의 쾌차와 정치복귀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임시대행체제를 맡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와 관계가 껄끄러운 차베스와 룰라 등 중남미 좌파지도자들은 카스트로 이후의 대응책 마련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참모들도 "카스트로 이후에 올 여러 가지 상황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쿠바의 정계동향에 안테나를 고정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3일이면 80회 생일을 맞는 고령의 카스트로가 건강을 회복하여 권좌에 복귀한다 해도 쿠바 내의 권력구조는 상당부분 변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쿠바 현지언론들과 당원들은 라울 카스트로 체제의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형국이지만 중남미 좌파지도자들과 쿠바출신 정치평론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라울이 형인 피델의 뒤를 이을 지도자라기보다는 그야말로 과도기적인 지도자 역할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라울 역시 고령(75세)인데다 항상 형인 피델의 그늘 아래서 2인자로서의 직무에만 충실해 왔기 때문에 그의 역할은 새로운 지도체제의 출범 때까지 한시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 쿠바를 이끌어가기에는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 ⓒ일간 <그란마>, 쿠바

라울 카스트로를 가까이서 대해 본 쿠바출신 학계인사들은 "라울은 쿠바라는 특별한 상황에 처한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갖추지 못했다"고 단언하고 "본인 스스로도 형을 이어 쿠바를 이끌어갈 인물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1931년 6월 3일생인 라울 카스트로는 스페인계 이민자 후손가문의 막내로 태어나 대학생시절 쿠바 내의 청년당원들을 이끌었다. 1953년에는 쿠바혁명의 산실이 된 몬카다 전투에 참가했으나 무참하게 패해 도주하던 중 불심검문에 걸려 산티아고 감옥에 투옥된다.

2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라울은 멕시코로 망명을 떠나게 되고 거기에서 체 게바라를 알게 된다. 라울은 그때부터 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혁명사상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게릴라전에 대한 전투개념을 가지게 됐다. 라울은 게릴라전술에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체를 형인 피델에게 소개했고 평생 동지로서 우의를 다지게 된다. 그 뒤 카스트로는 라울을 게릴라전에 투입하기보다는 참모 역할이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 그를 구소련을 순방하면서 공산주의체제를 견학하도록 조치했고 이를 통해 라울은 KGB 간부들과 안면을 넓히며 정보와 조직관리를 몸에 익히고 유럽식 공산주의 체제를 배웠다.

멕시코에서 쿠바 혁명군의 참모로서 잔 업무와 대외관계를 도맡아 오던 라울의 군 지휘관 경력은 지난 1958년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전투에서 처음으로 혁명군을 지휘한 게 전부다. 그 이후 라울은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가평의회 부의장을 거처 국방장관 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지언론들은 라울 카스트로보다는 오히려 실질적으로 쿠바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 온 그의 부인 빌로마 에스핀 여사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라울의 부인인 에스핀 여사는 지난 50여 년간 쿠바의 여성연맹을 이끌어 왔으나 최근 자신의 건강을 챙기면서 8명에 이르는 손주들을 돌보는 일에 재미를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정치적인 활동을 접고 은퇴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평소 자신의 부인을 끔찍이 아꼈던 라울은 형인 카스트로에 비해 강한 투쟁의지나 권력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 과도기적인 임무를 무사히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대두하고 있다. 다만 카스트로 이후의 체제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평생을 다독여 온 군부의 수장 자리를 끝까지 유지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카스트로 이후 쿠바는 어디로 갈까

현지 학계는 "지난 50여 년간 이어져 온 쿠바식 사회주의체제가 카스트로 이후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카스트로 우상화 스타일의 정치행태가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느 정도 변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이어 쿠바의 지도체제가 젊은 세대로 소폭 물갈이가 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면서 카스트로 후계구도는 1인 체제보다는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카스트로 체제의 급격한 자체 붕괴나 외부세력에 의한 체제의 몰락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현지학계의 중론이다.

북한과 함께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개방을 거부하며 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쿠바는 북한과는 달리 카스트로의 아들들에게 정권을 물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현지의 분위기다. 카스트로는 7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정치나 혁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성장하여 의사가 되거나 컴퓨터공학자들이 돼 정치와는 인연을 끊었다. 일부는 아버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싫다며 미국 등으로 망명을 가기도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쿠바의 권력후계구도는 가족체제를 떠나 능력과 지도력을 겸비한 인물 위주로 선택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반세기 동안 당과 정부, 군을 장악하여 실질적으로 쿠바를 통치해온 카스트로 형제, ⓒ일간 <그란마>, 쿠바.

결국 카스트로가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권좌에 복귀한다면 카스트로의 의지대로 시간을 두고 후계구도를 설정하겠지만 만에 하나 카스트로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국가평의회가 라울 카스트로가 아닌 제3의 깜짝 인물을 의장으로 추천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카스트로 체제 이후 쿠바와 미국의 관계는 미국 정부의 대쿠바 제스처에 달려 있겠지만 쿠바로서도 현재와 같은 날카로운 대립의 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상호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 체제의 정치행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서서히 좌파 형식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거라는 얘기다.

쿠바의 경제체제는 현행 고립체제보다는 개방형인 중국식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카스트로의 주장대로 쿠바가 의술과 교육 부문에서는 중남미 최고수준임에 이견이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중남미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쿠바 경제를 움직이는 건 스페인 국적 기업들과 베네수엘라의 경제지원이다. 여기에 중국이 원자재 확보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쿠바 정부는 현재 대규모 유전 가능성이 높은 멕시코 걸프만 해저유전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만일 쿠바해안에서 원유가 쏟아져 나온다면 쿠바의 고질적인 가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편 쿠바의 권력 이동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일 만큼 가까운 친분관계를 떠나 '볼리바리안 혁명'을 외치며 중남미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차베스에게는 쿠바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를 위한 대안(ALBA)'을 위해서도 쿠바의 의료진과 문맹퇴치를 목표로 한 교육자들의 지원이 필요하며 실질적으로 이 운동의 지주 역할을 담당했던 카스트로의 부재는 차베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베네수엘라와 쿠바, 볼리비아가 추진하고 있는 인민무역협정의 진로도 문제 거리다.

하지만 카스트로 향후 누가 쿠바의 정권을 장악하든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경제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우선 베네수엘라가 특별할인가격을 적용해서 외상으로 공급해주고 있는 원유는 쿠바로서는 어떤 명분으로든 거절하기 힘든 특혜 중 하나다. 또한 남미공동시장과의 관계도 생필품과 식량부족 사태를 메우기 위해선 누가 최고권력자가 되든지 현 상태의 유지가 최선책이라는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쿠바는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다 해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리기보다는 오히려 베네수엘라와 스페인, 중국 등 좌파 정부들과의 관계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카스트로 체제 이후의 쿠바는 이제 반세기 동안 굳건히 지켜 왔던 고립된 사회주의체제에서 개방된 좌파형 민주국가로 서서히 그 방향을 틀 것이라는 것이 남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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