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리던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단을 조기 철수시킨 데 이어 19일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금강산 면회소 건설의 중단을 선언하는 등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쌀·비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맞서 남북관계를 중단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해 왔다.
그 후 북한은 21일 금강산 면회소 건설인력을 사실상 추방하는 동시에 개성에 있는 남북경제협력협의 사무소에 있는 북측 당국자 3~4명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또 7월 중 개최 예정인 '자연재해 방지 실무접촉'과 '경제 및 지하자원 개발 분야에서의 제3국 공동진출 실무접촉'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등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완연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서도 모종의 조치를 단행하지 않겠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종석 장관은 지난 14일 "남북대화가 어려울 것은 알고 있지만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측도 대화동력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북측의 장관급회담 조기 철수 직후에 나온 것이었는데, 그 후 북한은 남북교류를 끊는 추가적인 조치를 줄줄이 내놔 이 장관의 이같은 전망은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됐다.
이 장관은 또 금강산 면회소 인력이 남측으로 철수하고 북측이 개성 경협사무소의 축소 운영을 통보해 오던 21일에도 한 모임에서 "대북 화해협력정책, 포용정책은 흔들림없이 가야 한다"며 "통일부는 바람에 휘둘리는 풀이 아니라 소나무로 꿋꿋이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관계는 대화 동력을 유지해 나가면서 출로를 찾기 위해 국제사회와 노력할 것"이라며 "안 된다면 우리 스스로 나서서라도 열 것"이라고 말해 통일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 및 남북관계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냈다.
한국이 취할 최선의 독자노선은 '남북관계'
북한이 남북교류의 창을 하나 둘 닫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남측이 약속했던 '쌀 50만 톤 차관과 비료 10만 톤 지원' 유보 조치를 당장 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사일 발사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관한 '출구'가 보일 때까지 쌀·비료 제공은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한 남북교류의 단절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남측이 쌀·비료 제공이라는 '지렛대'를 아무리 사용한다 하더라도 미사일 문제 해결과 6자회담 복귀를 강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사일 문제는 북미 양자의 이슈로, 6자회담은 6개국의 사안으로 각각 여기고 있는 북한의 인식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장관도 23일 <SBS> TV에 출연해 "남북간에는 미사일이건 핵이건 제대로 대화해서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미사일과 핵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쌀·비료 지원 중단 조치로는 남북관계의 경색만 가져올 뿐이라며, 그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그간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해 온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무의미한 변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미일 공조'와 '남북대화'는 양립 불가능하지 않아
물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끊고 무조건적인 '한미일 공조'로 나아가 대북 압박책만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안보관계장관회의 이후 대화와 협상을 부쩍 강조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을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 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태도가 한국 나름의 '독자노선'을 가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독자노선은 중국과의 공조 같은 '제3의 길'이 아니라 결국 남북간의 교류·협력을 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아무 것도 내놓지 않은 채 '남북대화가 중요하다'는 공허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장관은 안보관계장관회의 이후 변화된 입장을 실현할 세부 대책은 별달리 내놓고 있지 않으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가장 실패했다"는 말로 보수세력의 반발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설령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최근의 사태 악화를 가져온 만큼 일차적인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 해도 쌀·비료 지원 중단으로 사태를 풀겠다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말했다.
대화의 문이 하나 둘 닫히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만 되풀이하는 이 장관의 현실인식에 대해 한 전문가는 "낙선이 뻔한 선거캠프에서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나, 구 소련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자본주의는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붕괴한 것과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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