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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의 종자(種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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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북정책의 종자(種子)가 없다"

[긴급진단] 위기의 남북관계 (下)

남북관계가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남북장관급회담은 조기종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었고, 이산가족 상봉은 중단됐으며,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하던 인력은 철수를 결정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거부와 미사일 발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통과, 미국과 일본의 경제·군사적 대북 제재 움직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날로 험악해져 가는데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정부는 갈 길을 잃은 듯하다.

문제점과 대책은 무엇인지 상(上) 편에 이어 진단해본다.


#3. 패러독스 : '돈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다져놓은 토대에서 출발한 참여정부가 남북관계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쉽게 생각했다는 문제도 지적되어야 한다.

정부는 햇볕정책을 계승해 남북관계의 정경분리 원칙을 견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주의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정치·군사적 사안들과 연계시키면서 정경분리 원칙을 사실상 포기했다. 철도·도로연결을 위한 군사적 안전보장 조치를 해주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겠다거나, 미사일을 쏘면 쌀·비료 제공이 없다는 등의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상호주의의 변형인 '신(新) 상호주의'라고도 일컫는다.

이런 식의 정책에는 '북한은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연계정책의 성공사례는 그같은 인식을 더 굳혔는데, 비료지원 대가로 10개월간 끊겼던 남북대화를 재개했다거나, 전력 200만kW를 제공하겠다는 '중대제안'으로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복귀시켰던 2005년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 지난 5월 24일 북측의 경의선, 동해선 열차 시범운행 취소 통보로 당초 25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던 경의선 열차가 우두커니 역내에 멈춰서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형성된 과도한 자신감은 북한이 남북간의 문제라고 절대로 생각지 않는 미사일 발사 같은 사안에서도 '경협을 지렛대로 걸면 된다'는 안이한 정책을 낳았다.

이는 또 아슬아슬 유지해 온 남북관계를 철옹성인 양 과신해 남북관계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또다른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남북관계의 자산가치를 과도하게 평가했다"는 말로 이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힘들여 쌓아온 신뢰와 성과를 가지고 우리 생각대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과도하게 평가했다"며 "남북관계를 꾸준히 개선해 독자적인 입지를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영철 현대사연구소 부소장은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사용하면 북한이 무릎을 꿇고 나올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우리만의 기준에 따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한 전직 관리는 "경협이나 인도 지원이 어려운 문제를 풀게 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것은 촉진제 수준에 머물러야지 '조건'이나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4. 부실한 시스템…테크닉 없는 협상술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부 내의 의사결정 구조, 상대국을 대하는 외교술, 대화채널 등 정책의 결정-실행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를 지적하는 이는 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다.

서 교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사무처가 지난 4월 폐지됨으로써 NSC 상임위원회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 거대한 외교·안보 부처를 조정할 능력을 잃었고, 그에 따라 대통령의 정책을 실행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은 또 통일부 장관이 맡고 있는 NSC 상임위원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통일부 자체의 위상도 축소시켜 남북관계에서조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NSC 사무처의 폐지는 사무처장이었던 이종석 현 통일부 장관이 추진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장관은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낮춘 셈이 됐다.

서 교수는 또 이같은 상황에서 외교부가 정보를 독점해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한 부처가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보독점을 견제하고 크로스체크할 시스템이 없어 국정원마저 외교부에 정보를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 정부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추진해온 대북정책이 처한 현주소를 고려해 볼 때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선언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연합뉴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최재천 의원은 정부가 남북간의 막후 채널을 닫아버린 실책을 지적했다.

최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는 박지원 채널, 임동원-림동옥(북한) 채널, 현대 채널 등을 가동하면서 북한에 대화의지를 확인시키고 신뢰를 줬는데 현 정부는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모든 채널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나마 DJ 방북이라는 카드가 있었는데 이종석 장관은 'DJ 방북에 의문이 있다'며 막아버렸다"며 "기존의 공식 채널을 뛰어넘는 통로를 만들지는 못할망정…"이라며 개탄했다.

정부의 협상 수완이 부족함을 지적한 이는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다.

그는 "외교는 '너도 맞고, 쟤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식의 모호함이 있어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도, 미국도, 일본도 모두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어디에서도 환심을 사지 못한다"며 "고위 관리들이 발언을 할 때는 청중이 여럿이 있다는 걸 알고 어느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난관에서 취해야 할 정부의 태도에 대해 박 교수는 "적극적으로 나서면 나설수록 늪에 빠진다"며 "내공을 키우고 상대방이 들고 있는 카드를 보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평화번영정책은 정말로 햇볕정책을 계승했나

이상의 모든 문제는 결국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정체성·리더십 결여로 귀결된다. 한 전문가는 "대북정책의 종자가 없다"는 말로 현재의 난맥상을 표현했다.

대북정책의 '종자'는 툭하면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북한, 그보다 더 강경한 조지 부시 미 행정부, '한미동맹만이 살길'을 외치는 국내 보수 여론이라는 트라이앵글 속에 놓인 한국 정부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해결지향적인 길을 가도록 하는 필수 요소다.

남북관계의 철학과 리더십을 물으면 전문가들은 의례히 김대중 정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그들은 주로 ▲서해교전 발발과 '퍼주기' 논란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 개발과 대북 지원을 계속했던 일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시 미사일을 대북 경제제재 해소 및 북미관계 정상화와 연결하는 '일괄타결안'을 제시하고 북미 대화를 주선했던 일(일각에서는 클린턴행정부 말기 북미관계를 급진전시킨 '페리 프로세스'가 사실은 '임동원 프로세스'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맞춤형 봉쇄'를 하겠다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이 '봉쇄가 성공한 역사는 없다'고 일갈했던 일 등을 예로 햇볕정책의 '진수'를 설명한다.

현 정부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추진해 온 대북정책이 처한 현주소를 고려해 볼 때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선언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민족의 이익과 비전을 볼 때 남북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기보다 임시변통적인 대처에 급급하는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6. 너무 먼 길을 와버렸지만…

얽히고설킨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전문가들도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북 쌀·비료 지원부터 재개하면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긴 하지만, 정부가 이미 '뱉어 놓은 말'을 다시 주워 담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는 게 중론이었다.
▲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거리가 물에 잠긴 원산시의 모습. 정부는 북한의 홍수 피해에 어떻게 대처할까 ⓒEPA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주 한반도를 강타한 홍수 피해를 이용해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면서 남북관계 복원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조심스럽게 내놨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1일 "이번 폭우로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수백 명이 사망 및 행불되고, 수만 명의 살림집과 공공건물이 부분 및 완전파괴, 침수됐으며 수백 개의 소도로와 다리, 철길이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정부나 민간이 긴급 식량과 응급복구 장비를 지원해 줌으로써 중단된 쌀 지원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김근식 교수는 "1984년 북한은 남한의 홍수 피해를 돕겠다며 쌀과 생필품을 지원했다"며 "우리가 이번 홍수 피해를 돕는다면 남북관계를 이어갈 가느다란 끈이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995-96년 엄청난 '큰물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과의 대화를 끊고 있던 김영삼 정부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과감히 실시하라는 목소리를 무시해 동족 간의 원망과 증오심만 키웠다. 노무현 정부는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게 많은 이들의 바람이다.

한편 김 교수는 9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는 부시 대통령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남은 2개월동안 남북관계를 복원시켜 최소한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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