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내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서방, 특히 미국과 영국의 정치권은 내일이라도 당장 이라크의 안정이 찾아올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미 공화당의 상원 대표인 빌 프리스트 의원은 자르카위의 사망소식이 들려온 8일 "테러와의 전쟁에서 얻은 이런 엄청난 승리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용기와 지혜 때문"이라며 "나는 우리 대통령이 세계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인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뽑힌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찬사를 늘어놨다.
2008년 대선 도전을 고려하고 있는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자르카위 제거는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을 때와 비견할만한 전환점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이라크에서의 양민학살을 대서특필하던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도 9일만은 자르카위의 사망소식을 톱뉴스로 전하며 향후 이라크 정국을 다각도로 전망했다.
알카에다 이름 딴 조직만도 60개
그러나 자르카위의 사망이 이라크의 폭력 사태를 종식시키고 새 정부의 안정적인 정착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게 압도적인 분석이다.
그같은 분석의 핵심 근거는 이라크의 저항공격이 매우 다양한 구심점을 갖고 있어서 자르카위가 있건 없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9일 "이라크에 있는 알카에다 조직은 중앙집중적이지 않은 다양한 테러 단체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각각의 공격 작전은 독립적"이라며 "최소 60개의 단체들이 알카에다의 이름으로 공격을 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저항공격이 모두 알카에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이 신문은 '안사르 알 수나'나 '이라크 이슬람군' 등 수십 개의 저항 조직들은 알카에다와 전혀 연관이 없고 오히려 라이벌이었다며 자르카위의 죽음이 그들의 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보수적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테러 전문가 부르스 호프만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르카위가 죽었더라도 그가 질러놓은 불은 계속 타오를 것"이라며 "그것이 현실이고 자르카위는 이미 자기가 죽었다고 해도 멈추지 않을 저항력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침공 후 3년동안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고위 지도자 376명을 죽이거나 체포했고, 알카에다 중간급 지도자라고 선전된 사망자만도 5997명에 이른다.
그러나 그처럼 수많은 지도자들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공격은 오히려 날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서 자르카위의 사망 역시 수백 명의 사망자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자르카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8일 그의 사망이 이라크 저항공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은 이라크에서 알카에다의 세력 자체가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라고도 분석했다.
미국의 주둔을 지지하고 미 군부 및 정보기관과 긴밀한 연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웹사이트 <스트라트포(Stratfor)>도 8일자 기사에서 "해외에서 이라크로 유입된 저항세력의 수는 800~1000명 정도로 평가되고 있는데 전체 저항세력의 수가 1만5000~2만 명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이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해외에서 유입된 저항세력'이란 요르단 출신인 자르카위 등이 데려온 이들을 가리킨다.
<스트라트포>는 또 자르카위의 조직이 저항세력을 펴는 이라크 국내 민족주의 조직과 심각하게 갈등해왔다고도 전해 그가 사망했다고 해도 국내 저항세력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네이션>은 또 "최근 이라크의 한 정보 관리가 이라크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자르카위나 그의 부하들이 아니라 이라크 정규군과 보안대에 다양한 종족과 세력의 민병대들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군대와 보안대에 침투한 민병대들은 반대파 요인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암살 부대'로 활동하면서 이라크 정정뿐만 아니라 이라크 국민들의 정서마저 불안케 하고 있다는 게 이라크 정보 관리의 분석이었다.
'제2의 후세인' '제2의 자르카위'는 언제 나올까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미군의 전과를 칭송하면서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고 영국의 <가디언>은 9일 전했다.
블레어 총리는 "자르카위의 사망은 알카에다에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그들의 활동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또 미 백악관이 사담 후세인의 체포나 후세인 아들들의 사망 때 '분수령' '전환점' 같은 말들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그 후 이라크 상황이 지지부진해져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면서 "자르카위의 죽음으로 하룻밤에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토니 스노우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소개했다.
자르카위의 사망으로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더라도 부시 행정부의 최악의 지지율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단기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인데, 미 기업연구소(AEI)의 여론 분석가인 카린 바우만은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후 부시의 지지율이 일시 급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시기에 이뤄졌다"며 "그 후 사람들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자르카위는 미군들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자행한 가혹행위가 폭로되어 부시 행정부의 주둔 정책에 대한 비난이 최고조에 달하던 2004년 5월 이후 갑자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판론자들은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자르카위라는 인물을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런 자르카위가 공습으로 사망해 화려하게 '퇴장'한 것도 미군들의 양민학살 사건으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들끓는 시점이었다는 것으로 볼 때 이번에도 역시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주둔을 지속하기 위에 다음에는 또 어떤 '제2의 후세인' '제2의 자르카위'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싱크탱크인 '뉴 아메리카 재단'의 니르 로젠 선임 연구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르카위 신화는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미국은 이라크의 저항공격을 비난할 목적으로 자르카위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왔다"고 설명하고 그가 사망해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위상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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