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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르카위는 '현대판 홍길동'인가?

<현장 르포> 자르카위를 찾아서 <상>

'오사마 빈 라덴'의 시대는 가고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시대가 온 것일까? 2001년 9.11테러 이후 2003년 이라크 침공 직후까지는 빈 라덴이 서방언론을 도배질하더니 작년부터는 자르카위가 그 지위를 물려받은 듯하다. 서방인 납치 사건이 발생해도, 자살폭탄공격.매복공격이 발생해도 미국과 서방언론은 자르카위를 주범으로 지목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자르카위는 마치 '현대판 홍길동'인 것처럼 보인다.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무장저항을 요르단 출신의 테러리스트 자르카위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미국에게 몇 가지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큰 이점은 이라크 내의 무장저항이 토착세력이 아닌 외국인 테러조직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 앵커리지 출신의 레바논계 미국인 다르 자마일(Dahr Jamail)은 독립언론인으로서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8개월 동안 이라크에 머물면서 이라크인의 저항투쟁 등을 현지 취재했으며 지금은 요르단 암만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다.

호주의 세계적 탐사보도 기자 존 필저로부터 이라크 사태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보도를 하는 언론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자마일은 최근 자르카위의 고향을 방문해 자르카위에 덧씌워진 신화를 벗기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이 현장취재 기사에서 자르카위의 생사 여부 등에 명백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으나 자르카위의 신화화에 의해 누가 이득을 보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르포 기사의 번역문을 3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원문은http://www.commondreams.org/views05/0706-03.htm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자마일의 개인 홈페이지 www.dahrjamailiraq.com에는 그 동안의 이라크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역자>

***자르카위 현상(The Zarqawi Phenomenon)**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사태의 상당 부분이 요르단 출신의 아마드 알-칼레일레(Ahmad al-Khalayleh), 즉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Abu Musab al-Zarqawi)와 그가 이끄는 이라크 알카에다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는 틈만 나면 차량폭탄공격이나 기습공격이 자르카위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부시와 그의 측근들은 그의 테러활동을 거의 신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엔 주류언론의 활약도 한몫 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및 점령이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과 조작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이상, 나로서는 이렇듯 과장되게 알려진 자르카위라는 인물이 과연 실제로 있기는 한 것일까 하고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내가 취재 본거지로 삼은 암만에서 몇몇 요르단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봤지만 그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돼 갔다. 마침 자르카위의 출신지역으로 알려진 자르카(Zarka)라는 곳은 암만에서 택시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르카위의 고향을 둘러봄으로써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로 작정했다.

"자르카위,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 나는 모르겠는데…." 암만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요르단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오사마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그런 인물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그의 투쟁을 나는 지지하오."

요르단 시내의 한 다방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자르카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르카위라는 인물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면서 하지만 자르카위가 그토록 많은 테러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말도 안 돼"라고 말했다.

"미국이 자신의 선전활동을 위해 자르카위를 이용하고 있는 거지, 뭐. 생각해 보쇼. 그토록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능력을 가진 미국이 자르카위 하나 못 잡는단 말이야."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요르단 주변 국가들의 많은 아랍사람들처럼 그도 이라크에서의 무장저항에 대해서는 심정적 지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고 말야, 조국이 침략 당했을 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야.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아랍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구" 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들이 공격하거나 모종의 작전을 펼치려는 지역이 있으면 언제나 그곳에 자르카위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나선 그가 아슬아슬하게 포위망을 탈출했다고 말해 왔다. 지난해 미군이 팔루자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직전에도 미군은 자르카위와 그의 부하들이 그곳에 은신해 있다고 말했다. 한 미군 장교는 자르카위가 팔루자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면서 전화로 자르카위 방어작전을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팔루자 공격이 끝난 뒤에는 자르카위가 전투 도중에 팔루자를 빠져나갔다느니, 미군 공격 직전에 이미 탈출했다느니 온갖 설이 난무했다.

그런 다음 자르카위는 이라크의 라마디와 바그다드, 사마라 등에 나타났고 그 와중에 요르단,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등에도 다녀왔단다. 적어도 미군 정보보고와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렇다. 미군의 전적보고에 따르면 자르카위의 '최측근'들이 버스 한 대 분량은 잡혔는데도 그의 '최측근'은 한도 끝도 없이 출현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5월 영국 BBC는 자르카위를 '이라크내 저항세력의 지도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에 대한 진지한 분석가들은 자르카위의 조직, '유일신과 성전(Jama'at al-Tawhid wal Jihad)'에 대해 전세계적인 연결망을 갖고 있는 무장투쟁조직이기는 하지만 그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어찌됐건 이 조직의 규모를 추정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2003년 2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 내에 있는 자르카위의 '본거지들'에 대한 사진들을 제시하면서 그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진 속의 조그만 오두막들은 그 해 3월 미군 폭격에 의해 완전히 잿더미가 돼버렸다. 이에 따라 한 언론사는 자르카위가 사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르카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파월 발언과는 모순되는 발언이 2004년 10월 나왔다.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자르카위와 알카에다의 연계는 대단히 모호하며, 자르카위는 오사마 빈 라덴의 부하라기보다는 라이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이다. 럼스펠드는 "자르카위는 알카에다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자르카위의 영원한 지하세계**

(이라크가 아닌) 요르단에서 자르카위 현상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는 사람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자르카위의 생애, 개인사, 현재의 활동, 심지어 그의 실존 여부에 관한 요르단 사람들의 증언들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암만의 상인 압둘라 하미즈(29)는 "2년 전에 요르단에서 자르카위를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암만 중심부의 종려나무 아래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서 있던 하잠 유스프는 "자르카위는 미국의 정책결정자 마음 속에만 있을 뿐"이라고 우겼다.

사실 자르카위에 관해 알려진 지극히 적은 정보들에 따르면 그는 자르카 산업지역에서, 약간의 어려움은 겪었으나 평범하게 살아 온 사람처럼 보인다. BBC 보도에 따르면 그의 올해 나이는 38세, 못된 친구들을 만나 반항적 어린이로 자랐고, 길거리 축구를 즐겼으며 17살 때 학교를 중퇴했다. 일부 언론이 그의 친구들 증언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자르카위는 10대부터 술을 많이 마셨으며, 문신을 했고,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도 싸움을 걸었다. 요르단 정보기관이 AP통신 암만 지국에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자르카위는 80년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20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인생의 목표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행을 택했다. 소련 침략군에 대항한 이슬람성전이 막바지에 이른 때였다. 뉴욕타임스 등 일부 언론은 자르카위가 아프간에서 실제 전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요르단에는 그가 실제로 싸웠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1992년 요르단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자신의 집에서 무기가 요르단 당국에 의해 발견되면서 체포됐다. 1999년 석방된 후 다시 요르단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갔다. 파키스탄 비자가 만료되자 요르단으로 돌아갈 경우 테러 음모와 관련해 체포될 것을 두려워 한 그는 본국 대신 아프간으로 들어갔다.

아프간에서 무기캠프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자르카위의 행적이 포착된 것은 2002년 9월 요르단 당국에 의해서였다. 당시 그는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으로 귀환했다. 그가 이라크에 들어간 것은 이때로부터 피랍 미국인 닉 번스를 참수한 2004년 5월 11일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언론매체들은 자르카위의 이라크에서의 목표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내분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4년 9월 BBC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은 "미국 관리들은 자르카위가 추종자들과 함께 저항의 거점인 팔루자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자르카위에 관한 모든 보도의 모든 취재원들이 그러했듯이 이 보도의 취재원들도 대단히 애매모호했다. 지난해 11월 팔루자에 대한 제2차 포위공격 당시 뉴스위크는 "일부 미국 관리들은 자르카위가 실제로는 이라크 내 다른 지역에 머물면서 전화로 팔루자 내의 저항활동을 지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취재원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도 않았고 취재원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으면서 자르카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이라크 치안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있어 그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한편 BBC는 "자르카위의 조직이 이라크 내 납치와 폭탄공격, 그리고 암살 시도의 가장 주요한 원천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구체적 근거가 없는 추측보도의 또 다른 사례다.

결국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에 대한 엄청난 양의 보도는 자르카위 만큼이나 실체가 불분명한 익명의 취재원들에 바탕을 둔 일방적 주장이었던 - 적어도 일반 독자에게는 - 셈이다. 그렇다면 자르카위는 현장취재와 유언비어와 비방이 한데 뒤엉켜 있는 일종의 영원한 지하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자르카위처럼 거의 아무런 구체적 정보 없이 그토록 자주 언론에 보도된 인물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이며, 어디 출신이고, 이라크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를 거쳤는가 등 자르카위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들은 언제나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엄청난 정보의 공백 속에서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자르카위의 신화화'로 이득을 보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번역: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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