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장차 E.T의 자발적 수하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장차 E.T의 자발적 수하들'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문동만 '수십 년 된 그들의 선동논리'

일제 36년을 되돌아보면 저항과 변절의 역사가 양면에 겹쳐져 있다. 나는 과민하게도 평택 황새울에서 그런 씁쓰레한 역사를 반추하게 된다. 33인의 민족대표조차 만해 선생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투항했던 사례를 보노라면 그 친일의 시원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강제와 억압이 있었을 테고, 회유와 돈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는 굴복의 내면화일 것이다. 저 일장기 속의 태양처럼 지지 않고 팽창하는 해이기에 아무도 그들을 물리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서정주처럼 종천순일(從天順日), 즉 하늘의 뜻을 좇아 일본에 순응한 것이라는 궤변을 뇌까리며 자발적 친일로 돌아섰을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종천순일이 종천순미로 변종되었을 따름이다.

미국 영국 원수들을 타도하고 대동아 공영의 깃발을 세우자던 자들이 친미주의자가 되었다. 혹시나 외계인이 있어 세계를 장악한다면 저들은 그들의 자발적 수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땐 뭐라 해야 하나? 從天順E.T?

"평택 미군기지 반대단체 지도부 땅 보상금 최고 27억…평균 19억"
▲ <중앙일보> 2006년 5월 4일자 1면 ⓒ 프레시안

나는 중앙일보의 1면 제목을 읽다가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제목만 보자면 주민대책위 간부들이 벌써 돈을 받아먹고도 더 달라고 떼를 쓴다는 것인지, 농민들 말고도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간부들에게도 돈을 줬다는 것인지, 주겠다는 것인지, 나 같은 사람도 간부만 맡으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것인지…. 하지만 악의적인 복선이 깔린 제목뽑기라는 걸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단, 주민들은 '알박기로 버텨서 한 건 챙기려는 돈에 환장한 사람들로 분칠하기'로 몰아간 다음, 외부 저항자들은 '이념 주입을 목적으로 주민을 포섭한 불순세력으로 매장시키기'였다. 여기저기 인터넷 댓글을 읽노라니 이미 위 제목은 기정사실인 양 유포되고 있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사실상 백만장자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으로 참여 정부와 보수언론 간의 몇 안 되는 동맹 사례를 남겼다.

비약하자면 나치도 한 수 배울만한 선동이다. 그들은 돈을 바라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기자인 그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바닷물 들이치는 소금땅을 일궈 오늘의 기름진 논으로 만들었던 그들에게 논은 단순히 소유물이 아니라, 자식 같은 살붙이였으므로. 소유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존투쟁이었으므로, 또한 강제수용되었던 과거의 사례가 어떤 삶의 고통을 안겼는지 체감했기에, 본능적인 소유본능이었을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리라. 미군기지 같은 혐오시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장례식장 하나가 들어와도 들끓는 님비현상을 보라. 의정부 동두천 주민들에게 물어보라. 미군주둔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이미지화된 도시가 어떤 상징적 혹은 실체적 손실을 입는지를. 물론 국방부는 시가를 계산해서 보상 수용한다고 했다. 남은 농민들보다, 수용금을 받고 고향을 뜬 사람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떠난 주민들이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앞날이 든든해서 이삿짐을 꾸렸던 건 아니다. 미국과 한국정부를 상대로 버텨봤자 이길 수 없겠다는 열패감이 컸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당국의 말대로 '개기는' 주민들이 남아 있다. 군홧발 소리와 더불어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방적으로 빼앗긴 땅에 포로처럼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있다. 자발적 수용을 거부하고 이미 체험적으로 의식화된 주민들이, 돈도 대체지도 싫다는 주민들이 있다. 눈엣가시인 주민들과 외부의 불순한 세력들만 없으면 일사천리로 평온한 나라가 될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나는 저들에게 자발적으로 의식화 당했다

나도 대추리에 여러 번 가봤지만 내가 주민들을 선동할 일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김지태 이장이 강제침탈 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냈던 장문의 편지를 보며 내가 의식화되고 말았다. 그들의 주름살과 굳은 살 박힌 손을 보며, 눈물을 보며, 측은함과 연대감이 절로 들었다. 나는 그렇게 물들었을 뿐이다. 무엇이 저들을 이 자리에 머물게 하는가. 어쭙잖은 내 문장은 그의 체험적 진정이 배어 있는 감동적인 문장 앞에선 부끄럽기 그지없었고 어설픈 내 노동은 맨손으로, 가래질로 바닷물을 막아 논을 만들었던 저이의 거친 손을 쉬이 잡지 못한다.

하여 나는 대통령과 사이비 개혁주의자들과 보수도 못 되는 친미 어용세력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야말로 이젠 자발적 굴종이 내면화된, 몇 십 년 뒤의 박정희요. 최남선이요, 모윤숙이요, 서정주가 아닌가를 자문해보시라고, 핵과 첨단무기를 소유한 미군은 맘만 먹자면 위성으로도 항모로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데, 전쟁은 민족공멸이고 (전쟁이 나면 어디로 피난가야 한단 말인가. 미국에 의해서 전쟁이 나면 미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 온전할까. 저런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은 출근해서 기사를 쓰고, 가족과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까) 그 화약고가 평택으로 옮겨진다는데. 중국과 북한을 표적 삼아 건설하는 첨단 전진기지에 혈세를 퍼붓는데, 그것이야말로 현실론인데, 왜 내가 참아야 하나.

아, 씁쓸한 대중적 부화뇌동이여.

제 나라 주권자의 30%만 지지하는 부시와 30% 지지율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그 30점짜리들이 잘해봤자 뭘 잘 하겠는가. 왜 의심하지 않을까. 유독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는 그 둘이 배수의 시너지 효과를 획득하는 것일까. 아 경이로운 동맹이여여! 아 경이로운 대중적 부화뇌동이여!
▲ ⓒ 노순택

주한미군에게 해마다 들어가는 직간접적 지출비용 수조 원이면 나는 실업자가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에 그네들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한다.

이방인들을 단순히 힘이 세다는 이유로,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이유로 (이건 60만 국군과 예비군들에 대한 모독이다 )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고 국민은 정부에 굴종하는 이 자연스런 순종의 쳇바퀴가 멈추길 희망하며, 집회와 결사의 자유조차 엄단하는 이 사회가 과연 개인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나라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

그깟 죽봉을 쪼개 못자리판이나 만들고

영원한 힘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래 전에 그걸 알았기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전두환에게 살인말라며, 국회의원 명패를 집어던졌다. 나는 지금 명함이라도 집어던지고 싶다. 화려한 봄꽃이 열흘을 못 버티고 저버렸다. 돈질과 주먹질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단지 대추리 도두리의 희망을 넘어 인류의 희망이다. 비겁하게도 당신들은 동맹하여 깜깜절벽으로 희망을 몰아 부친다.

당하고 있는 그들은 소수이고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왜 양심을 팔지 않느냐고. 왜 주겠다는 돈도 받지 않느냐고. 왜 미국에 굴종하지 않느냐고. 무슨 꿍꿍이가 있어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느냐고. 왜 자꾸 탈법을 일삼느냐고. 왜 대막대기 따위를 들고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군경에게 대 드느냐고, 그것은 불순한 폭력이다, 라는 그 선동논리로. 아시는가? 몇 군데 고유명사만 바꾸면 수십 년 된 레코드판의 리바이벌이다.

일제 때는 총독과 순사와 변절자들이 뇌까렸고 군부독재에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관제언론을 앞세워 상용했던 선동이다. 아무래도 도용이 너무 노골적이고 컨셉이 낡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이 모든 책임의 8할을 사이비 개혁정부와 3류 보수우익에게 온전히 돌리고 싶다. 외부세력에도 못 미치는 나는, 2할쯤의 책임감을 무리지어 느끼며 평택으로 갈 작정이다. 무기도 못 되는 죽봉은 쪼개 못자리용으로나 쓰든지, 정월 대보름에 가오리연 살대로나 쓰든지 하고. 심장에 분노의 대나무 심어.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