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중에서도 피디에 해당하는 진보신당 쪽 사람들은 성정이 까칠하고 매사에 따지기 좋아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여간해서 넘어가지 못한다. 2008년 분당 전에 민노당 당대회를 열면 보통 낮시간에 시작해도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피디측 대의원들은 회의 결정문을 채택하거나 당규약의 조문을 개정할 때 문구 하나 토씨 하나를 낱낱이 따질 정도로 민감했다. 그래서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피디 출신자들 중에 사시합격자가 많다는 말도 들린다.
피디와 분리되기 이전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1박2일 동안 계속됐다면 엔엘계만 모인 당대회는 네 시간이면 끝난다. 피디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직하고 조직의 결정에 잘 순응한다. 개인적인 의견과 당의 결정이 달라도 일단 결정되면 일사불란하게 따른다.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밀고나가는 뚝심이 보통이 아니다. 이런 특성이 외부사람들에겐 '무대포'로 보이기도 한다. 경제개발시기의 "하면 된다" 정신과 비슷하다. 타 정파와 부딪칠 때 이런 특성이 나타나면 패권주의로 보인다.
지난 일년여 동안 진보정치 진영이 시도한 진보통합 실험은 지난주에 유시민, 심상정 등을 수뇌로 하는 두 정파가 탈당함으로써 파탄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현장상황이 종료됐으므로 이제부터는 연구자들이 투입돼 분석에 들어가야 할 때다.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여러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는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한 가지 부면을 지적한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정답이다. 통합진보당의 파탄은 '통합' 그 자체에 원인이 있었다.
진보라는 말이 꽃뱀처럼 사람들을 홀려
앞에서 살펴봤듯이 엔엘, 피디 등 좌파와 리버럴은 아주 다른 사람들이다. 이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도 행동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모두 진보로 불린다. 그래서 통합에 찬성했던 각 당의 당원들은 같은 진보끼리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착각이 통합에 나서게 한 동력 중 하나였다. 진보라는 용어의 사술에 말려든 셈이다. 진보라는 용어가 꽃뱀처럼 사람들을 홀리게 했다.
다 같은 진보인데 뭐가 문제냐는 무모한 생각에는 이념에 대한 경시가 배경에 깔려 있다. 진보진영의 총선, 대선 승리에 비해서는 이념의 차이는 사소한 문제이며 단지 입장의 차이 정도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극복할 대상이지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만나서 함께 책을 내고 활짝 웃는 모습도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민주화운동을 같이해온 동료들이고 한나라당에 맞서서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뜻이 일치했다. 그래서 한 지붕 세 가족을 꾸렸다. 그러나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파탄을 맞고 말았다. 이 때문에 차이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채 서로 비난하는 악성적인 싸움에 돌입했다. 그들 간의 차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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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에 가정법은 부질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만일 엔엘이 아니라 피디의 본진과 리버럴이 결합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실제상황에서는 진보신당 대의원들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거론되자 민노당과의 재결합마저 부결시켜버렸다. 이들은 적어도 마르크스 원전 몇 권은 읽었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지적이고 날카롭다. 협상을 하다가도 수틀리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린다.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구별한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리버럴과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면 지금처럼 떠들썩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조용하고 냉정하게 준비해서 이혼도장을 찍고 깨끗이 돌아서지 않았을까. 이미 2008년 2월 민주노동당 분당시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에 비하면 이번 파동에 임했던 엔엘은 냉철하지도 전략적이지도 못했다. 파탄의 굉음이 이처럼 크게 난 이유는 엔엘 특유의 밀어붙이는 성향과 수틀리면 끝까지 가는 리버럴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뚝심과 오기의 정면충돌이었다.
리버럴과 좌파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념 스펙트럼이 필요하다. 서구의 정치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다수파이며 이들이 정권을 주고받는 구도이다. 그 양쪽에 소수파인 극좌와 극우가 있다. 이런 구분을 통해서 보면 구당권파의 이념인 엔엘은 극좌에 가까우며 유시민 그룹인 리버럴은 중도우파이다. 이들 사이에는 중도좌파라는 커다란 공간이 놓여 있다. 달리 말하면 중도좌파의 왼쪽에 엔엘이, 오른쪽에 리버럴이 있다. 둘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엔엘과 리버럴의 결합은 좌파와 우파의 결합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국공합작을 제외하고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변희재가 이상규에게 대변인 제안해
이번 파동의 특징 중 하나는 구당권파가 일방적으로 비난여론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눈높이라는 기준에 비춰봤을 때 그럴 만하다. 진보언론도 진보진영의 대선승리라는 큰 프레임에서 보기 때문에 한 정파의 억울한 점까지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 구당권파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한 책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를 펴냈지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구당권파의 한심한 수준의 언론대응 능력도 지적해야겠다. 유시민은 신문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뿐 아니라 이석기에 대한 평가까지 그의 언어로 설명한다. 결정적인 국면마다 우리 사회의 빅마우스인 진중권에게 조롱을 받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이 나오지 않는다.
오죽하면 보수논객 변희재가 한 달만 대변인 시켜달라고 요구했을까. 그는 이상규 의원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유시민 일파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면서 그렇게 제안했다. 민망하고 딱한 일이다. 구당권파는 지난 10년간 언론이 자신들 편에서 보도해 준 적이 없다면서 지레 체념한 것 같다. 지하에 너무 오래 있다가 갑자기 지상으로 나왔을 때처럼 햇빛에 눈이 부셔서 그런 것일까.
구당권파가 죽을 쑤는 중에 나온 통합진보당 평당원의 지적 하나가 눈에 띈다. 그리피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당원은 지난달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비례대표 부정선거의 해법인 일괄 사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뭔 줄 아십니까? 부실과 부정?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구당권파는 몇 석 먹었지만 국참계는 자체 분열되어 오옥만과 노항래로 표가 분산되었죠. 남자표 다 합쳐도 이석기 한 명 못 당해내며 2위 윤금순과 3위 오옥만의 표를 합쳐도 이석기의 득표수를 넘지 못하죠... 결국 선거 끝나고 보니 억울한 것이지요.. 못 먹었으니 막말로 깽판치는 겁니다... 부정과 부실? 네... 저는 결코 구당권파를 변호할 맘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해법으로 내어놓은 비례순위 사퇴의 방법에는 동의 못합니다. 저 방법은 다(같이) 책임지는 방법이 아니라 의석수 있는 구당권파만 책임지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만약 참여계가 오옥만과 노항래의 단일화로 1석이라도 얻었다면 저런 해법을 내놓았을까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회찬 심상정은 진보신당으로 돌아가야
노회찬 심상정 의원은 통합진보당 탈당 이후 그들의 친정인 진보신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시민 그룹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대중정치인으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당을 떠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념 정체성을 따라가지 않고 상황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신뢰도가 높은 정치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비록 진보신당을 탈당할 때 당원들과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해도 그런 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노회찬 심상정은 평생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정통좌파 정당을 바로세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 유시민 그룹이나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 등과 함께 대선 연대를 도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념이 다른 정파와 함께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뼈저리게 겪고 나서도 왜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진보신당으로 돌아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필자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다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같은 사람들끼리는 통합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대하는 통합과 연대의 방정식이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가? 리버럴과 피디 엔엘은 이념이 다르므로 세계관이 다르고 행동양식도 다르다. 이들의 성정의 차이는 오기, 까칠함, 뚝심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한 집에 모아놓으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각기 자기들의 집에 살면서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공동대응하면 되지 않은가. 이게 정치뿐 아니라 세상살이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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