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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남미공동시장도 새 판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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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차베스 "남미공동시장도 새 판 짜자"

김영길의 '남미리포트'〈152〉 미국과의 FTA로 요동치는 중남미 (하)

남미통합을 목표로 지난 1991년 파라과이에서 태동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 역시 일부 역내 국가들이 미국과의 FTA체결 조짐을 보이고 있어 지난 1995년 '데킬라 파동' 이후 다시금 와해될 위기를 맞고 있다.

아르헨과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를 정회원으로, 칠레와 볼리비아를 준회원으로 둔 남미공동시장은 친미 성향의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가 남미공동시장보다는 미국과의 교역에 관심을 가지고 곁눈질을 하고 있어 불협화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남미공동시장의 본부가 위치한 우루과이가 스페인과 핀란드 국적기업들이 투자한 대규모 펄프 및 제지공장을 유치해 공사를 서두르던 중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공사가 중단되면서 양국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도 남미공동시장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평소 남미공동시장 무용론을 외치며 미국과 아시아시장을 노크하던 우루과이 정부는 차제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서방기업들의 현지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경제적인 실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최근 파라과이에서 회동한 볼리비아,베네수엘라,파라과이,우루과이 정상들(왼쪽부터).차베스와 단합을 과시했으나 생각은 다른데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베네수엘라

이에 대한 아르헨 정부측은 "우루과이의 펄프공장지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민들의 상수도원을 오염시키고 자연환경을 해치는 등 심각한 환경피해가 예상되고 있어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루과이의 해외투자와 경제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국가인 아르헨으로서는 환경 및 식수 오염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 와중에 오는 4일 따바레 바스께스 우루과이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중미의 페루와 콜롬비아, 에콰도르에 이어 남미의 우루과이와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은밀히 체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우루과이 정부의 레이날도 가르가노 외무장관은 이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는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고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우리 정부의 입장은 미국과 자유무역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우루과이 바스께스 정부는 이미 지난 3월 산업부장관을 대표로 한 통상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 FTA에 대한 상호 실무협상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해 오는 4일 바스께스와 부시의 회담은 사실상 FTA 협정을 위한 마지막 수순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남미의 정치평론가들은 "만일 우루과이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면 파라과이 역시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중미의 안데스공동체에 이어 남미의 MERCOSUR도 연쇄적으로 탈퇴 사태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다.

'남미공동시장 미국이냐 차베스냐, 선택 놓고 고민 중'

한편 최근 아르헨과 브라질 정상들을 제외한 여타 남미 정상들과의 파라과이 회동에서 우루과이와 파라과이 정부가 남미공동시장 무용론을 제기하자 차베스는 "MERCOSUR가 사장된다면 새롭고 진정한 통합공동체를 출범시켜 새 판을 짜면 된다" 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기존의 남미공동시장을 해체하고 인민자유무역협정이라는 새로운 지역공동체 구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현지의 보수언론들이 "차베스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는 주장을 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긴급 회동한 아르헨, 브라질, 베네수엘라 3개국 정상은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단합을 과시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차베스의 최근 발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향후 행보에 대해 일종의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12월 정회원으로 가입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쿠바와 볼리비아를 축으로 하는 인민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아르헨과 브라질 정상들을 자극한 것이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남미공동시장 정회원국은 타 지역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 "우리 삼총사가 굳게 뭉쳐 새 판을 짭시다."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회동한 3국 정상들. ⓒ아르헨티나 까사로사다 대통령궁

또한 차베스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기정사실화하고 아르헨과 브라질이 반미 대응행보에 공동보조를 취해줄 것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 역시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였다고 알려졌다. 아르헨과 브라질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극한 대립구도로 가는 위태로운 외줄타기식 외교는 피하고 싶다는 의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르헨과 브라질 양국 정상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차베스를 향해 마냥 싫은 소리를 드러내놓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둔 룰라로서는 전통적으로 좌파 색채가 짙은 브라질 극빈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차베스의 측면지원과 천연가스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 등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고, 차베스 덕분에 IMF의 간섭에서 벗어난 키르츠네르 아르헨 대통령도 차베스의 오일달러와 경제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에너지 운송역사를 바꿀 1만Km에 이르는 가스관건설공사를 앞둔 아르헨과 브라질 정상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안정된 에너지자원 확보 차원에서라도 차베스의의 협력을 거부하기에는 경제파급 효과가 너무 크다는 평가다.

더욱이 가스관을 통한 에너지수송이 3000Km가 넘으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이 프로젝트에 비관적이던 아르헨 정부는 국내 에너지자원 매장량의 자급률이 향후 1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내부보고에 당황, 차베스의 가스관 프로젝트 참여로 급선회하는 등 남미상황은 차베스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따라서 남미에서도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가 남미공동시장에서 탈퇴하고 미국과 FTA를 체결한다면 유명무실한 남미공동시장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차베스의 주장대로 중미에서 남미를 관통하는 에너지벨트를 축으로 새 판을 짜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지언론들은 이에 대해 중미에 이어 남미에서도 미국과 차베스의 대결구도가 친미와 반미를 놓고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그동안 강대국들에 밀려 소외된 감이 없지 않았던 중남미의 약소국들이 국가별로 상호 경제와 외교적인 이익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저울질하며 양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과 차베스의 극한 대결구도에서 결코 손해 볼 게 없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차베스가 제시하는 저렴한 에너지자원과 빈민들의 위한 각종 무상지원을 챙기면서 동시에 FTA를 매개로 한 미국의 투자나 경제적인 지원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 남미공동시장 내 약소국들의 정치적인 계산이라는 얘기다.

남미 현지의 정치평론가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맹주를 자처하는 차베스와 세계경찰임을 내세우는 초대강국 미국의 편가르기 식 대결 양상이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적인 지형구도와 경제적인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차베스가 내세운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이 남미공동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재편시킬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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