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비수뚜 강가의 청동기 바위그림**
7월 6일(일) 아침 6시 알타이 산속의 아침이 밝았다. 바깥 6℃, 텐트 안 12℃, 여름 날씨 치고는 제법 쌀쌀한 기온이다. 텐트 안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엊저녁 비바람 때문에 걱정했는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이 시작된다. 텐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약간 차지만 경쾌하게 느껴졌고, 어제 사막에 가까운 건조함이 사라지고 신선한 공기가 허파 속까지 파고들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10시가 조금 못 되어 현장 발굴 팀과 함께 바위그림이 있는 곳(2377m, N49°48'349", E88°10'642")으로 갔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발굴 팀과 함께 바위그림을 조사하고, 오후에는 우코크로 가기로 했다. 현장은 텐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위그림은 수량이 꽤 많았고 주제도 다양했다. 이곳 바위그림은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철기시대 초기에 그려진 것으로 깔박-따쉬에서 보았던 주머니를 찬 사람, 개, 양, 염소, 큰 뿔 사슴, 황소, 뱀 같은 그림들이 학교 운동장만한 나지막한 바위 언덕에 가득 실려 있다. 특히 멋진 큰 뿔 사슴은 정말 압권이었다. 주둥이를 마치 새의 긴 부리처럼 표현하고 뿔을 아주 강조해서 사슴 몸의 길이만큼 여러 번 반복시켜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렸다. 전체적으로 수량은 깔박-따쉬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이들의 예술적 감각은 그에 못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깔박-따쉬처럼 바탕과 그림의 명암이 분명하지 않아 사진으로 잘 표현되지 않아 아쉬웠다. 오전 4시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고 비디오로 담는 데 한 나절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미국ㆍ몽골과 공동으로 조사하는 현장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고 사진까지 마음대로 찍게 하는 파격적인 호의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다만 "우리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이 유일한 부탁이고, 우리 또한 그 약속을 지켰다.
조사팀이 작업을 하는 광경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그림이 그려진 바위 면에 투명한 비닐을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암각화의 생김새를 유성펜으로 그대로 따라 그렸다가 나중에 실내 작업을 통해 종이에 옮겨 내는 식인데 뜻밖에 간단한 작업이어서 한편으로는 조금은 지루한 작업이 될 것도 같았다. 방학 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생활에 빠져 있는 사이에 이런 깊은 산속에서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도 러시아의 저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굴하는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깨끗한 것도 또 다른 하나의 보너스다. 멀리 하얀 눈 고깔을 쓴 남추야산맥을 배경으로 이루비스뚜 강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풍경은 그 자체가 하루 종일 바라보아도 싫지 않는 그림이다. 바위그림이 있는 곳은 옛날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던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모두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바위그림을 찾는 이들에게 두 배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1시가 조금 넘어 캠프로 돌아오는데 너무 흥분해 무리를 했는지 허리가 뻐근하다.
***하늘나라로 가는 입구, 우코크**
2시 반쯤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결국 4시가 다 되어 출발한다. 먼저 어제 힘들게 넘어왔던 돌산을 지나 들판까지 나간 뒤 강을 건너자마자 꾸르간이 나타난다 (2082m, N49°52'284", E88°19'289").
여기서부터 동남쪽으로 계속 달리는데 곳곳에 널려 있는 꾸르간과 제사유적들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꾸르간과 돌로 둥그렇게 고리를 만든 제사유적을 보면 신기했는데 이제 아주 만성이 되어버릴 정도이다. 10㎞쯤 달리자 아주 잘 남아 있는 빠지리끄시대의 꾸르간 떼(2024m, N49°48'677", E88°25'273")가 나오고 얼마 안 가 제사터(2012m, N49°49'091", E88°26'205")가 나온다. 10개의 돌을 세워서 둥그렇게 만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 뼈가 나오지 않아 무덤이 아니고 제사터라고 본다는 것이 꾸바레프 교수의 설명이다.
***"꾸르간이 있는 곳에는 모기가 극성이다"**
이 말은 알타이를 답사하는 동안 여러 번 반복했던 소리다. 정말 무서운 모기들의 공격이다. 2004년에는 낚시용구 파는 데 가서 머리에 쓰는 모기망을 사가지고 갔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날씨가 흐리더니 갑자기 하늘이 시꺼멓게 되고 험악한 추야스텝 날씨로 돌아간다. 이 알타이에서 낙타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서자 많은 낙타들이 모여 있었는데 집단으로 사육하고 있는 곳(1985m, N49°47'947', E88°29'171")으로 보인다. 마침 낙타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라 가까이 가서 촬영하지는 못했다.
출발하여 우코크로 가는 길(2012m, N49°47'639", E88°29'718")에 들어서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길도 아닌 곳을 잘도 달리는 러시아 자동차는 비록 바깥 모습은 별로이지만 막강한 파워만큼은 정말 최초로 인공위성을 달에 쏘아올린 나라다웠다. 중간에 꾸르간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 넓은 고원에서 용케도 찾아내 보여주는 꾸바레프 교수의 감각도 달나라 가는 실력보다 못하지 않았다. 내가 이 글에 가능한 한 좌표와 해발 고도를 표시하는 것은 꾸바레프 교수 말고는 그 아들도 이런 지점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에 기록해 놓으므로 해서 실제 현장을 조사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5시 50분 꼬쉬아카치에서 우코크로 가는 정식 길(27㎞ 지점)로 들어섰다. 포장은 되어 있지 않지만 제법 큰 길이고 60㎞ 지점까지는 거리표지판도 1㎞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큰길에 들어서 5분쯤 가자 국경수비대에서 검문이 있었다. 우리는 여권을 모두 제출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알타이를 여행하는 가운데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경수비대와의 만남이다. 검문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냐고 묻자,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허가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꾸바레프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표정이 거의 없는 총 멘 러시아 군인이 10분 만에 여권을 돌려주고 꽉 닫힌 문을 열어준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초소를 지나자마자 다시 산길이 시작되는데 이제 우코크 고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길은 완만한 편이지만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 깊은 산골에도 길가에 꾸르간들의 행렬이 계속된다. 지나면서 간혹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알타이인들이고 러시아인들은 보기 힘들다. 수 십 마리의 양떼, 염소떼, 말떼, 소떼, 갑자기 땅속에서 뛰어나와 달리는 쑤록, 들다람쥐, 고원의 호수, 산꼭대기의 녹지 않은 얼음, 황량한 사막보다는 훨씬 알타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경치들이 이어진다.
7시 45분, 해발 2600m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백두산에 오른 만큼 높은 곳을 차로 달려 온 것이다. 이제 거리 표지판도 사라져 버렸다. 노란색 두메 양귀비, 자주, 청록, 하얀색, 분홍색의 이름 모를 들꽃들이 참 예쁘게 피어 멀리서 찾아오는 우리들를 반긴다. 1시간을 더 가 8시 50분 제법 큰 광산이 나오고 여기서 길이 나뉜다. 두 길이 모두 우코크로 가는 길이고 결국은 한 군데서 만나는 길인데 길이 좀 더 나은 오른쪽 길로 들어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자마자 깊은 산속에 건물이 나온다. 캠프장을 떠난 지 5시간 만인 9시 라듐 온천에 도착한 것이다. 많은 몽골계 사람들이 휴양을 와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마치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이 모두 몰려든다. 집은 몇 채 없는데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가져온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라듐 온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오랜만에 뜨거운 온천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원래 온천이란 25℃ 이상을 온천수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수온이 고작 17℃밖에 되지 않아 그냥 온천욕을 했다가는 아주 위험한 수준이다.
온천에 도착했으나 우리는 물에 손도 담가보지 못하고 서둘러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온천지역에서 조금 더 올라가 물가에다 자리(2412m, N49°27'407", E88°03'076")를 잡았는데, 어제 잤던 곳보다 고도는 더 높지만 온도는 비슷하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이처럼 높은 고지에도 모기가 있다는 것이다. 매번 먹는 감자국이지만 오늘은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오늘 오후는 진수가 가져온 누룽지 덕분에 배고프지 않았고, 특히 화동이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저녁밥 먹고 나니 벌써 밤 11시, 먹은 것 소화시킬 겨를도 없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림 9) 라듐온천 캠프장에 도착한 답사단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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