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야 돌사람이 지키는 '하늘로 가는 바위'**
7월 4일(금), 어제보다는 덜 추웠으나 귀가 아파 자주 깼다. 7시 기상해서 아침밥 먹고 9시 조금 못 되어 오늘의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더 묵기 때문에 텐트를 걷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하루 종일 좋아 답사하기에 최상 조건이다.
9시 출발하여 25분쯤 가니 태양을 새긴 선돌과 꾸르간(BC 5세기)이 있는 곳(해발 863m, N50°24'807", E86°54'278")에 다다랐다. 추야강이 꾸불꾸불 흐르면서 좌우에 넓은 초원을 만들었는데 그런 넓은 초원에는 대부분 꾸르간이 있고, 아울러 선돌들이 서 있으며, 산기슭 바위에는 바위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곳 선돌과 꾸르간도 바로 그런 널찍한 들판의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선돌은 인야에 있는 선돌과 마찬가지로 원래 넘어져 있던 것을 꾸바레프 교수가 20년 전에 세워놓은 것이라고 한다. 꾸바레프 교수는 사라져 가는 선돌들을 다시 세워 알타이 역사를 복원하는 일을 한 것이다. 너비 3~5m 되는 꾸르간들이 5개가 이어져 있는데 규모가 작은 편이다.
선돌에서 약간 뒤로 돌아와 730/233km(표지판 앞/ 표지판 뒤) 표지판이 서있는 건너편에 너비가 10m가 넘는 대형 꾸르간과 제사터가 남아있다. 청동기시대 아파나시아 스타일의 대형 꾸르간 바로 옆에는 작은 돌 고리가 있는데 제사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10시 아드르-깐(Adyr-Kan, 729km/234km)에 도착하였다. 알타이 말에서'칸'은 왕을 뜻하고 '캄'은 샤먼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이 바로 당시 '아드르'라는 왕과 관계된 유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미 온도가 32℃까지 올랐다.
여기서 우리는 정말 인상적인 돌사람을 만나게 된다(844m, N50°24'506" E86°52'602"). 들판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2m 22㎝(두께 35×27㎝)의 돌사람은 크기에 비해 얼굴 부분이 작은 편이다. 맨 꼭대기에 얼굴을 새겼는데 두 눈 부분을 깊이 파고 약간 얕게 인중까지 파내려 절묘하게 얼굴모습을 만들었다. 입 모습은 분명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얼굴 모습은 아주 온화하면서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철학자의 얼굴이다. 마치 동양화가가 붓을 두 번만 놀려 그려놓은 초상화처럼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원철이가 "꾸바레프 교수와 닮았다"고 했는데 갸름한 얼굴에 눈이 움푹 들어간 분위기가 그렇게도 보였다. 꾸바레프 교수는 "한 유명한 군인의 얼굴을 새긴 것인데 투르크인의 얼굴은 아니다. 대략 기원전 9~8세기 초기 스키타이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선돌의 앞쪽에는 전쟁용 도끼가 새겨져 있고 얼굴이 있는 뒷면에는 칼과 활, 매달아 놓은 말들이 새겨져 있다. 선돌 뒤로는 꾸르간이 있는데 아직 발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답을 줄 수 없지만 분명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돌사람을 "추야 사슴돌(Chuya Olmennyi-Kamen)"이라고 번역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사슴돌이 아니다. 사슴돌은 큰 사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이 새겨진 것인데 이 돌은 분명히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이기 때문에 돌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알타이에서 사슴 그림이 그려진 돌이 이런 선돌들을 대변하면서 쉽게 사슴돌이라고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추야 돌사람"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주변에 꾸르간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BC 9~8세기 초기 스키타이시대의 것들이다.
돌사람에서 북쪽을 보면 제법 높은 바위산 기슭에 범상치 않은 바위를 볼 수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커다란 야외 세트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한 통으로 된 반반하고 미끈한 짜개바위(편암)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바위 중간 부분이 안으로 휘어져 여기서 위로 올려다보면 아무런 바로 하늘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이어져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하늘로 가는 바위'(859m, N50°24'537", E86°52'574")이다. 앞에 서자마자 바로 강한 기운을 느끼며, 그 기운이 '하늘로 가는 바위'를 따라 거침없이 올라가는 것 같아 경외감이 저절로 생기는 곳이다. 알타이에서 이런 곳은 예외 없이 제사터이고, 제사터에는 반드시 바위그림이 남아있다. 밑 부분에는 뿔 달린 사슴, 산양, 소, 토끼 같은 알타이의 동물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모두 당시 알타이인들이 하늘에 바치는 제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그림이 갈색 짜개바위를 정교하게 파내 그렸는데 바탕과 파낸 곳의 색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어 그림이 아주 선명하다.
그림 29) 하늘로 가는 바위
그림 30) 옆면에 그려진 바위 그림
이곳에서 가장 잘 된 그림은 하늘로 가는 바위 왼쪽으로 돌아 바로 옆면에 있다. 아주 반반한 짜개바위에 방금 그린 그림처럼 선명한 그림이 남아 있어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위 아래로 길게 내려 그린 한 폭의 그림에 갈지자 꼴을 한 뱀이 있고, 마차를 비롯하여 산양, 사슴, 토끼, 모자를 쓴 사람, 올가미로 짐승을 잡는 사람들이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후대 뚜르크인들이 그린 사슴, 산양, 말들과 함께 바위 한쪽에 뚜르크의 룬문자가 남아 있다. 내가 꾸바레프 교수에게"왜 뱀에 대가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번개를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곳에는 뱀이 많고, 톰스크대학 보타님 교수(19세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설 속의 영웅 보가띄르(Bogatyr)가 뱀과 싸워 이긴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뱀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늘로 가는 바위 앞에 남아 있는 제사터는 2m(가로)×3.1m(세로)의 네모꼴인데 하늘로 가는 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꾸바레프 교수는 바위 위에서 제단 쪽으로 제물을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하며, 알타이가 소련에 편입되기 이전 알타이 사람들은 이 바위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로 가는 바위를 보고 다시 도로로 걸어 나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돌사람을 만났다.
"2000년이 넘게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아무 말 없이 멀리 있는 '하늘로 가는 바위'와 같은 높이로 포즈를 잡는다.
"이 사진이나 하나 찍어 가시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드르-깐에서 3~4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바위그림을 한 곳 더 보았다. 나지막한 야산을 천천히 오르면서 보물찾기 하던 우리는 찐짜 멋진 바위그림 한 군데(908m, N50°24'011", E86°51'021")를 찾아냈다. 길에서 직선거리로 261m 된 곳에 있는 바위의 깨진 곳 바닥에 그려진 그림은 소를 사냥하는 장면인데 참 장관이다. 큰 소가 한 마리 있고 활과 창을 든 사람은 물론 몰이를 하는듯한 사람들도 여럿 있고, 특히 여러마리의 개들이 몰이에 참가하고 있어 빈틈없는 짜임새이다. 소의 스케치가 아주 사실적이고 뿔 끝에 둥그런 고리가 생겨 특이하다. 개나 사람들은 선을 극히 단순화하여 5~6개의 선으로 그림을 완성하였다. 이 시간에는 해가 머리 위에 있어 바닥처럼 수평인 곳에 있는 그림에 그림자가 생겨 완전한 그림을 담지는 못했다.
그림 31) 맨 앞 테라스 바닥에 그림
그림 32) 개와 함께 소 사냥하는 장면
다시 깔박-따쉬의 야영지로 돌아오니 12시 반이다. 이리나가 미리 준비한 낮밥을 먹었다. 소고기 통조림 넣은 감자국에 오이와 콩을 섞어 만든 샐러드, 그리고 간식으로 초코렛과 복숭아통조림을 먹고 오늘도 역시 낮잠을 잤다. 시원한 버드나무 밑 그늘에 앉아 먹는 낮밥은 최고의 성찬이었다. 문제는 파리떼들이다. 할 수 없이 시원한 그늘을 탈출하여 따끈따끈한 차 안으로 들어가 한숨 잤다.
쉬는 동안 다른 발굴팀의 방문이 있었다. 바로 꾸바레프 교수의 아들이다. 미술을 전공하는 교수와 아들을 위시한 바위그림 조사팀이 현장으로 가는 도중 우리 켐프에 들린 것이다. 30대 초반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좋아보였다.
4시가 되니 꾸바레프 교수 일행은 보급품 조달을 위해 이냐에 다녀온다고 한다. 먹을 물, 배터리 충전, 기름(자동차) 같은 것들 …. 그사이 우리는 어제 급하게 보느라 자세히 보지 못한 중요한 바위그림들을 다시 조사하고 보충촬영을 하기로 하였다. 역시 한낮을 피하니 바람이 불어주어 한결 견디기가 쉽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제단 근처의 바위그림은 이미 그늘이 져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하기에 좋지 않았다.
"레프팅 보트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쳐 추야강을 내려다보니 보트 한 대가 급류를 타고 흘러내려가고 있다. 석회 같은 색깔의 강물에 노랗고 빨간 보트가 아주 대비되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지금은 빙하가 녹으며 빙하 속에 얼어 있던 흙먼지가 함께 내려오기 때문에 강물 색이 그렇지만 가을에는 맑은 하늘색이 된다고 한다. 추야강 래프팅 코스는 "추야 랠리"라는 국제대회가 열릴 정도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가장 어려운 코스 가운데 하나인 6급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5월 1일부터 9일까지 국제대회가 열릴 때는 미국, 영국, 중국 같은 여러 나라에 많은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차 한 잔 마시며 쉬는 시간 트럭을 모는 유리 할아버지가 또 큰 일을 해냈다. 원철이 안경이 다리가 부러져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고친 것이다. 예비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고 안경을 살 수 있는 곳도 없는 실정인데 다리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가 다 부러진 것이다. 이 때 이 위급한 상황을 구제해 준 것이 유리 할아버지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맥가이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유리 할아버지에게 안경다리 만드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속옷 고무줄을 이용해 안경다리를 다시 만들었는데 꼭 수영 안경을 낀 것과 같았다. 유리 할아버지가 답사 동안 해낸 일이 많지만 하나 꼭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 바로 배터리 충전이다. 사진기는 물론 비디오 촬영기용, 디지털 벡업기 같은 다양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배터리를 트럭 배터리에 연결해서 밤새 충전해 놓은 것이다. 물론 전기에 꽂아 하는 것보다 수명이 좀 짧지만 우리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림 35)〉 무엇이든 해내는 맥가이버 할아버지
보급품 조달하러 간 꾸바레프 교수 일행은 7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꾸바레프 교수와 함께 새로운 곳을 조사하였다. 추야돌사람 쪽으로 도로를 따라 가면서 산기슭 바위에 새겨진 바위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꾸바레프 교수가 뱀 조심하라고 특별히 주의를 준다. 뱀이 많다고 한다. 나는 보지 못하고 길가에 죽은 뱀만 보았는데 원철이는 아주 작은 갈색 뱀을 보았다고 한다. 꾸바레프 교수와 2시간 동안 정말 환상적인 그림 감상을 하고 많은 그림을 촬영하였다. 역시 많은 수량과 여인상, 로케트 모양, 샤먼 같은 처음 보는 형태의 기이한 암각화들이 많았다(815m, N50°24'146", E86°49'383").
나는 점점 바위그림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2001년 처음으로 아무르강에서 나나이족이 새긴 바위그림을 보고 관심을 가졌고, 2002년에는 시베리아 전역의 박물관과 현장에서 바위그림을 감상했지만 나를 완전히 바위그림 매니아로 만든 것은 역시 깔박따쉬다. 바위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주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그림들은 따지기 전에 그냥 좋은 것이다.
다른 사이트로 옮기기 위해 도로를 걸어가다 바로 길 옆에 드러나 있는 꾸르간의 석곽을 발견하였다(824m, N50°24'183", E86°49'422"). 작은 것이지만 아주 야무지게 남아있다. 도로 건설로 사라져 가는 꾸르간들이 이처럼 길가에 널려 있는 것이 안타깝다.
"724km" 도로표지판 위쪽에서 다시 대단한 그림을 발견하였다(841m, N50 24.228 E86 49.581). 엄청나게 많은 산양과 사슴떼가 직각으로 세워진 바위 두 조각에 그려져 있는데 그야말로 화려한 벽화다.
오늘 저녁밥은 아주 특별한 메뉴다. 오늘이 화동이 생일이기 때문이다. 아까 이냐 갔을 때 이미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했던 것이다. 언어알을 얹은 빵, 으깬 감자에 꽁치 통조림, 그리고 꾸바레프 교수와 플루스닌 교수가 일도 팽개치고 만들어온 기념메달 …. 기념메달에는 바위그림이 그려져 있고, 깔박따쉬라는 지명이 새겨졌다. 화동이에게는 영원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리나의 초콜렛 선물도 분위기를 한껏 높여 주었다. 어느덧 8명의 답사원 모두가 하나가 된 듯하다. 이번 답사는 내가 주도했던 중국에서의 고구려 산성 답사와 비교해 보니 너무 여유 있고 인간적이다. 중국에서는 항상 쫓기듯 주위의 눈을 두려워하며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마쳐야 했다. 참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답사이다.
10시 반쯤 일찍 자리에 들었다. 사진 찍고 비디오 찍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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