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박따쉬 바위그림 수수께끼**
초원의 역사는 대부분 기록이 없기 때문에 수천 년의 역사를 찾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복원하는 데 "돌 위에 그려진 책 - 바위그림"이 큰 도움이 된다. 비록 문자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꾸니즌(V. Kunizyn)이란 학자는 "알타이 고대 바위그림은 현재 남아 있는 '기적'이다.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절하게 설명한 바 있다. 깔박따쉬에 남은 5000개가 넘는 그림은 많은 수수께끼를 던지며, 나아가 그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주는 보물 창고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몇 가지 문제를 간추려 본다(꾸바레프, 『천연 박물관 알타이』, 2002, 『알타이의 암각 예술』, 2003을 참고함).
***① 꼬리 달린 사람**
앞에서 보았듯이 깔박따쉬에 그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꼬리를 달고 있다. 사람이 동물에서 진화하면서 꼬리는 이미 사라졌는데 바위그림에서는 왜 인간들이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정말 다양한 설을 내놓고 있다.
"꼬리다."
"손북이다."
"물건 담는 기구나 가죽가방이다."
"곤봉이다. 방망이다."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대의 샤먼이나 무사들은 동물의 가죽 옷을 입었고 옷 뒤로 (동물의) 꼬리를 드리웠다고 한다. 꼬리가 달린 가죽옷은 남자 무사와 사냥꾼들의 특별한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도 그 꼬리의 끝이 풍선처럼 큰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한 가지 설을 덧붙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확한 대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설을 만들어 내거나 이미 존재한 설에 새로운 해석을 가하느라 열심이지 "모른다"는 정답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것이 학자들의 속성이고, 또 살아남기 위한 존재방법이며, 가장 좋게 말하면 발전하는 과정인 것이다.
***② 무사인가 샤먼인가?**
바위그림을 처음 대할 때 가장 눈을 끄는 것은 정교하게 묘사한 사슴을 비롯한 동물들이다. 특히 수준 높은 뿔이나 몸의 무늬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런 것이 10개도 아니고 100개도 아니고 수 천, 수 만이 되면 약간씩 식상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그런 그림의 차이를 비교하여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더 나아가 천천히 동물이 아닌 그림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바로 인간, 수레 같은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인간의 모습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샤먼과 무사, 그리고 사냥꾼이다. 그림 가운데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이 지팡이인가 아니면 창 같은 무기인가 하는 문제에서 논의가 생긴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지팡이 끝에 돌을 매달아 무기로 사용하는 예가 많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팡이를 든 것은 무사나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동기 때는 이런 것이 권력의 상징으로 바뀌면서 샤먼이나 족장이 갖는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바위그림을 볼 때 이런 지팡이가 무기인지 아니면 상징물인지 알려면 끝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창은 언제나 끝이 세모꼴이고 끝장식이나 깃발이 달려 있다. 전투장면 외에도 무사들은 이런 긴 창의 중간을 잡고 있다. 어떤 것은 끝을 잡고 있는데 이것은 창을 던지는 것이다. 지팡이는 창과 달리 끝이 뿔처럼 벌려져 있고 깃발이 중간보다 조금 아래 부분에 달려 있다.
꾸바레프 교수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바위그림을 자세히 보아도 아주 분명하게 주인공의 직업을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③ 황소인가 사슴인가?**
알타이에서 가장 많은 바위그림은 사슴과 산양이다. 그런데 깔박따쉬에는 많은 사슴과 산양,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황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그림이 있다. 앞에서 본 바위그림 ④-ㄱ 이다. 보통 동물을 구별하는 데는 몸통과 뿔의 생김새가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 그려진 소들은 모두 무언가 특별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우선 가장 크게 그려진 소는 몸에 둥그런 고리무늬가 12개 그려져 있고 나머지 한 마리 소는 기다란 얼굴과 큰 뿔을 가진 전형적인 사슴 모습을 하고 있어 언뜻 보면 황소 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육중한 몸매라든가 끝에 술이 달린 꼬리는 분명히 황소다.
이처럼 토템 동물(황소, 사슴, 산양)들의 특성을 혼합한 존재들은 바위그림에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 꾸바레프 교수는 황소가 초인적 존재에 대한 상징이고 신들의 수식어였으며 그런 신들이 타고 다닌 동물이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런 그림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이것도 정답은 "아직 모른다"가 아니겠는가?
***④ 깔박따쉬의 키메라?**
앞에서 중앙제단의 맨 위에 아주 큰 괴수(66×45㎝)를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동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입, 발, 꼬리, 몸매 아무리 보아도 알타이 바위그림에 수없이 나오는 소, 사슴, 개, 산양 같은 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현지 학자들은 이것을 환상의 동물이라며 알타이의 키메라라고 한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사자·염소·뱀을 합쳐 만든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이런 키메라는 당시 현지에서 유행하던 신화나 전설의 한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내용은 그야말로 "완전히 모른다"라고 할 수 있다.
***깔박따쉬 Ⅱ의 바위그림**
2시간 정도 조사를 마치고 추야도로 길가 절벽 위에 서서 추야강 계곡을 바라보니 시원하게 뚫린 계곡과 평원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치 하늘을 나를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어서 이곳이 고대인들에게는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있는 작품이 지나가던 목동들이 우연히 소일 삼아 그린 그림들이 아니고 전문 화가(동시에 조각가)가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렸을 것이다. 현지 연구자들은 이처럼 바위그림이 모여 있는 곳은 제사터였다고 본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매년 제사 때마다 당시 부족의 최고 화가가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렸던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은 BC 20~10세기 청동기의 초, 중기에서 AD 6`~8세기 뚜르크시대에 걸친 수 천 년 동안의 작품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이다. 몇 ㎞나 되는 넓은 산자락 바위 위에 3000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그린 수 천 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장관을 상상해 보라, 아무런 초청장도 없고 광고도 없는 전시회지만 3000년이나 지난 오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 작품의 수준과 역사성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시 첫 작업을 마치고 잠깐 차 한 잔씩 하고 바로 출발하여 15분 거리에 있는 깔박 따쉬Ⅱ 지점(714km, 해발 782m, N50°24'183", E86°41'417")에서 바위그림 조사를 했다(18:50~19:50). 입구에 아주 흥미로운 유적이 있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 길에 인공으로 돌을 쌓아 막은 시설이 있는데 꾸바레프 교수는 고대의 성벽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5년간 고구려 석성만 연구해 온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로 보아 성을 쌓아야 할 곳이 아니고, 또 지금까지 알타이의 다른 지역에서 이런 성벽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곳에도 제법 많은 바위그림이 남아 있지만 야영장 옆의 그림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약했다. 다만 큰 뿔 사슴, 사슴뿔, 멧돼지, 동심원 같은 바위그림들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30~40분 동안 낮밥을 먹었던 카페 주변의 바위그림을 조사했다. 바로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닥에 깔린 바위들에 그림이 그려졌는데 앞의 두 지역과 비교하여 주제, 양식, 기법들은 같은 것이다.
돌아와 9시 반이 되어서야 저녁밥을 먹었다. 꾸바레프 교수는 차에 대해 아주 신경을 많이 쓴다. 바위그림을 조사할 때 반드시 눈에 띄는 곳에 차를 대고 올라가며, 사람이 없는 곳을 잘 골라서 하며, 잘 때는 반드시 차에서 잔다. 우리 캠프장에 알타이마을 청년 둘이 찾아왔다. 그 가운데 한 청년은 이 지역에서 유명한 음악연주팀의 일원이라고 한다. 자기 사진이 나온 달력을 보여주고 즉석에서 알타이의 전통 악기인 카무스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함께 온 다른 청년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기온은 제법 높고 바로 물가이기 때문에 간단히 목욕을 하려고 했더니 꾸바레프 교수가 깜짝 놀라 말린다. 석회처럼 하얀 것이 섞인 물은 빙하가 녹아서 내려온 물이기 때문에 너무 차서 감기 걸린다는 것이다. 귀의 알레르기가 머리 쪽으로 번지고 턱 있는 곳까지 부어 올라 상당히 괴롭다. 그래도 몸이 고단하니 잠을 자야 한다. 밤 11시가 넘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텐트를 각기 하나씩 차지했다. 어제는 까뚠강의 지류에서 잤는데 오늘은 추야강을 베고 자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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