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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석유, 바닥이 보인다"

[해외 시각] '脫석유시대' 지금부터 준비해야

지난달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미수 사건은 오늘날 세계가 석유공급의 아주 작은 교란에도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만일 사우디 유전에 묻혀 있는 미개발 원유의 양이 사우디 자신이나 서방측이 예상하고 있는 규모보다 작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에서 미래에 확보할 수 있는 석유의 양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제에너지 전문가들의 견해는 두 패로 갈리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석유는 아직도 풍부하며 가까운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반면, 비관론자들은 석유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낙관론자나 비관론자 모두에게 세계 최대의 원유생산국인 사우디는 핵심적 역할을 갖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사우디가 계속해서 원유 공급을 확대해 끊임없이 늘고 있는 세계적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사우디 유전도 곧 바닥을 보일 것이며, 이에 따라 추가 공급의 가능성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원유 공급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우디의 공급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석유수급의 방정식에서 사우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원유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동시에, 위기에 대응해 즉각 생산량을 늘일 수 있는 상당한 정도의 추가 공급능력을 가진 유일한 산유국이다. 이러한 사우디의 중요성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두 나라의 석유가 국제시장에 공급되지 못했을 때였다. 당시 세계가 아랍의 석유 금수조치에 의한 1차 석유위기(1973-74년)나 이란혁명에 의한 2차 석유위기(1979년)와 같은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우디가 즉각 원유공급량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즉각 원유생산을 늘일 수 있는 사우디의 독특한 역량 때문에 워싱턴은 오래전부터 사우디를 미국 에너지안보의 핵심적 일부로 간주해 왔다. 2005년 봄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을 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우디의 압둘라 황태자(현 국왕)를 텍사스 크로포드에 있는 자신의 개인목장으로 초청해 사우디로 하여금 원유 공급을 늘리도록 설득한 것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압둘라 황태자와의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황태자는 국제유가를 적정한 가격으로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담이 끝난 후 부시의 한 측근은 압둘라 황태자가 사우디의 원유 공급 확대를 약속했다고 발표하면서 이같은 사우디의 약속은 "국제유가를 하락시키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의 원유공급량을 늘리겠다는 압둘라의 약속이 아직까지 국제에너지 가격의 하락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워싱턴은 여전히 사우디에 대해 원유 공급을 늘리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석유의 미래**

위기의 순간에 즉각 추가 공급을 할 수 있는 사우디의 역량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석유 공급에서 사우디가 차지하는 역할이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2004년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사우디는 세계적으로 확인된 원유 매장량 중 4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서 예측가능한 장래까지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에너지부가 발표하는 모든 평가자료들은 사우디의 원유 공급이 계속 확대될 것이며, 그리하여 끊임없이 늘고 있는 석유에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에너지부에 따르면 사우디는 2001년부터 2025년 사이 전세계에 추가로 공급되는 원유 중 4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의 결정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미래 세계 석유 수급에 관한 예측자료를 보아야 한다. 2004년 에너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5년 사이 세계적인 석유 수요는 하루 7700만 배럴에서 1억2100만 배럴로 57% 증가한다. 이러한 수요 증가에 대응해서 사우디는 하루 생산량을 120%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됐다. 2001년에는 하루 1020만 배럴에서 2025년에는 2250만 배럴로 무려 1230만 배럴을 추가로 공급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처럼 원유 생산량을 극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나라는 사우디 외에는 없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연안의 구소련 국가들을 합쳐 이들 국가들이 하루 850만 배럴을 추가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이 세 나라의 추가 공급 규모는 760만 배럴로 추정됐다.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 나이지리아는 고작 160만 배럴을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외 다른 지역들은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기껏해야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사우디의 추가 공급능력은 앞으로 예상되는 석유 수요 증가를 충족시키는 데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사우디는 불과 20여 년 사이에 하루 1230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로 생산해 낼 수 있을까? 아니, 이보다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추가 공급 여력이 있기는 한 걸까?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해 세계의 내로라하는 석유 전문가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은 2004년 2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해 촉발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단의 석유 전문가들을 인용해 사우디의 주요 유전들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원유가 남아 있을 뿐이며, 따라서 당시의 생산규모(하루 900만~1000만 배럴) 이상으로 원유를 퍼낼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까지 사우디의 원유 공급은 국제적인 수요 증가에 보조를 맞출 수 있었지만 "이제 사우디의 유전들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 간부와 정부 관리들은 사우디가 장래 세계의 석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와 경각심**

이 기사는 사우디에 분노와 경각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며칠 후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의 고위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아람코는 장래 석유 공급을 추가 확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람코의 탐사 담당 부사장 마흐무드 압둘-바키는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훨씬 큰 추가 공급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앞으로 최소한 70년간 국제시장에 석유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알리 알-나이미 석유부 장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일 세계의 석유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는 즉각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미 에너지부도 맞장구를 쳤다. 향후 세계의 석유공급 능력에 관한 논쟁에서 대체로 에너지부는 낙관론자의 편에 서 왔기 때문이다. 에너지부는 2004년판 '국제에너지전망'에서 "사우디 관리들은 금세기 중반까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생산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으로 논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5월 휴스턴의 금융인 매튜 시몬스가 폭탄선언과도 같은 책을 펴냈다. '사막의 황혼: 다가오는 사우디 석유위기와 세계경제'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시몬스는 대부분의 사우디 유전들은 이미 쇠락해 가고 있으며 기존의 높은 생산능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의 석유공급에 관한 모든 주요한 분석자료들이 추정하고 있는 정도의 석유를 사우디가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작다. 사우디의 생산은 곧 정점에 이를 것이며 (…) 아주 가까운 장래에 감소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4가지 요점**

이 책의 저자 시몬스는 과격한 환경주의자도 아니고 편협한 반(反)석유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세계 유수의 석유 관련 투자전문 은행인 '시몬스 앤 컴퍼니 인터내셔널'의 회장이자 CEO다. 지난 수십 년간 그는 에너지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었으며, 세계 도처의 석유자원 탐사 및 개발에 자금을 대 왔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등 미 정부의 고위인사는 물론 국제 석유업계의 거물급 인사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갖고 있다. 시몬스는 또한 세계 주요 유전의 현황에 관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 분야에 가장 해박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음울한 예측이 그토록 중요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논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우디 석유의 대부분은 4,5개의 거대 유전에서 생산된다. 이 유전들은 40-50년 전에 개발돼 값싸게 추출될 수 있는 석유는 이미 모두 퍼 올린 상태다. 사우디는 유전 내 압력의 저하로 비용이 들지 않는 원유 추출이 어려워지자 물 주입 등 여러 가지 보조수단을 이용해 높은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시간이 경과하면 유전 내 물의 비율이 늘어나, 추가 석유생산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사막의 황혼'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의 대부분은 사우디 석유기술자들의 특정 유전들에 대한 기술적 논문을 바탕으로 사우디의 거대한 석유산업 인프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할애돼 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우디 유전의 노화, 그리고 유전 내 압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 주입과 관련이 있다. 물이 계속 주입되면 유전 내 원유의 질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 연구들을 바탕으로 시몬스는 사우디 최대 유전들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사우디는 시몬스의 지적에 대해 분노와 경각심으로 대응했다. 워싱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나이미 석유장관은 시몬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사우디는 필요한 만큼 공급을 확대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2005년 5월 17일 그는 "오늘 나는 이 자리에서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은 풍부하며, 시장이 원하는 만큼 공급을 확대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음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한다"고 선포했다. 나아가 파리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그는 당시 하루 100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2009년에는 1200만 배럴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만일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면 1500만 배럴까지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전보다 훨씬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많은 분석가들은 사우디가 추가로 퍼 올린 석유에는 유황성분이 너무 많아 상당수 정유공장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이며, 생산량 자체의 확대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부시와 압둘라의 만남에 대해 와코비아은행의 제이슨 쉔커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만남의 결과로 (국제 유가에)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마음을 바꾸다**

사우디의 석유 생산 능력에 대한 전망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지난해 7월 미 에너지부가 펴낸 '국제에너지전망 2005'에서의 새로운 평가였다. 2004년판에서 에너지부는 사우디가 2025년까지 1230만 배럴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반면 2005년판에서는 추가생산량을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610만 배럴로 수정 예측했다. 에너지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는 시몬스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의 분석이 워싱턴의 공식적 입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처럼 대폭 하향된 에너지부의 예측마저도 어쩌면 지나치게 낙관적 평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호언장담을 거듭했던 나이미 장관조차 하루 1500만 배럴 생산을(추가 생산이 아니라) 주장했으며, 나아가 그가 명시적으로 약속한 생산규모는 1200만 배럴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시몬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사우디에서는 하루 1200만 배럴 생산도 어려울지 모른다.

더욱이 이상의 모든 논의들은 '사우디 정정이 석유생산에 미칠 영향'이라는 별도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커다란 국내적 불안, 예컨대 1978~79년 이란의 국왕 축출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사우디의 석유생산은 감소할 것이 거의 분명하며, 이러한 상황이 수 년간 계속될지도 모른다.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강력한 테러 공격(지난 달 발생했던 것과 같은)도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부터 석유에 대한 갈증을 공급이 도저히 해소해 주지 못할 상황에 대한 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원문 보기: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56&ItemID=9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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